깨달음
1. 개요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알게 되는 것. 동사형은 "깨달다."가 아니라 "깨닫다."이다.
"깨닳음"이 아니다. 이건 참깨나 들깨 같은게 "닳는다."는 뜻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깨도"라는 말도 같은 뜻인데 이쪽은 잘 안 쓰인다.
지식적 또는 학문적으로 어떤 것의 원리나 비법 등등을 알았다고 할 때도 깨달음이란 말을 쓰지만 (ex : 유레카는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가 지른 함성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주로 마음의 평화니 번뇌에서의 해방이니 하는 동양종교 특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깨달음이라고 많이 부른다. 실은 앞에서 말한 학문적인 깨달음도, 궁금증 때문에 번뇌가 일었다가 일순간에 깨달음이 와서 번뇌가 풀리는 '''감정적 상태'''를 의미하는 감이좀 있다.
2. 서브컬쳐
"깨달음"이란, 무협소설이나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 소설에서 무공의 오의를 깨닫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로 흔히 쓰인다. 깨달음을 얻으면 무공의 수준이 일취월장하여 이전과는 격이 다르게 세진다. 조금이라도 격이 높은 무공을 깊게 익히려면 단순히 단련만 해가지곤 안 되며, 거의 대부분 이 깨달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은 무협소설에서 파워 인플레가 계속 벌어지면서 무협소설의 무공대결 묘사가 내공에 바탕을 둔 힘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에 반발하여 생겨난 움직임이다. 그런데 사실 깨달음이 있어야 내공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60년 수련해야 1갑자 운운하는 건, 대부분 기본심법으로 무식하게 노가다 뛰었을 때의 일인 듯.
물론 현실에서는 그딴거 없고, 뭐 하나 깨달은 게 있더라도 그 후에 죽어라 반복 숙달하고 매도우 해보고 스파링 해보고 실전을 거치며 써먹어봐야 비로소 자기 기술이 된다. 대문에 사실상 깨달음 그깢 뇌내망상보다 닥치고 단련! 경험축적!이 킹왕짱. 무협소설에서 무공은 몸에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철학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정신의 성장에 몸이 알아서 따라오면서 성장했다는 정도로 넘어가자.
깨달음은 얻으려면 그 얻으려는 의도자체도 버려야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며 덕분에 각종 인물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절치부심하다가 우연히 누군가가 던진 화두 혹은 어떤 상황에 의해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게 장면도 많이 나온다. 주인공의 경우는 이런경우도 있지만 중반부에 졸라 킹왕짱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다가 조연들의 방해로 다시 무의식 저편에 묻히는 클리셰도 있다.
무협소설 용어 가운데서는 참 드물게도 순우리말이다. 사실 본래 중국무술 용어에서는 내공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3. 동양철학의 깨달음
불교에서도 쓰이며 여기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특히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자아관념이나 절대적 진리를 알려는 욕심 등의 전도된 몽상에서 벗어나서 번뇌의 불길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더 나아가 번뇌의 불길을 완전히 꺼트려서 다시는 불씨가 타오르게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1] 아니 이 쪽이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돈오돈수도 이 깨달음과 관련된 개념.
3.1. 비판
기존 깨달음의 관념에 대한 비판이 재가 수행자나, 불교 소장 스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종곡스님은 '견성이란 어떤 상태인가'에서 이를 비판하였다. 김영식이라는 귀농인은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이라는 책과 블로그에서 본인이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김영식은 깨달음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과 신화를 뇌과학과 유물론점 관점에서 해체하고 있다. 설지 스님은 '무력한 깨달음'과 '묵조선에 대한 변명'에서 깨달음 자체로는 라면하나도 끓여먹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깨달음에서 도덕이나 여타의 것들을 기대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설지 블로그
크리스 나이바우어에 따르면, 불교를 위시한 동양의 영적 전통에서 깨달음의 의미는 자아에 대한 집착, 범주화 등 분별적 사고 등 '좌뇌의 독재'를 인식하고 이에 속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좌뇌를 사용한 언어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의 좌뇌는 또다시 그것을 하나의 '성과'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관념화를 시도하므로 다시 있지도 않은 에고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영적 성취와 계발의 개념은 자가당착으로 허구에 가깝다. 깨달음은 '무엇'이 아닌 '어떻게'이며 명사가 아닌 동사,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도 분명하게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