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학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남지학'''
'''南志學'''

[image]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덕초(德初)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915년 5월 18일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 구미동
(현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4리 구미마을)[2]
'''사망'''
1943년 10월 2일[3]
강원도 울진군 울진면 읍내리 울진경찰서
(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남복이는 그의 7촌 재종숙(再從叔)이다.

2. 생애


남지학은 1915년 5월 18일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 구미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4리 구미마을)에서 아버지 남용복(南容復)과 어머니 신안 주씨 주진조(朱縉朝)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4]
그는 1941년 남원수, 남정성, 임시헌, 노하순, 주영석, 전원강 등 울진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창유계(暢幽契)에 가입해 다섯 차례에 걸쳐 정기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결속 강화와 반일선전활동의 확대에 주력했다. 그러나 1943년 3월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고, 그는 102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울진경찰서에서 취조받다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43년 10월 2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남지학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송정공파(松亭公派)-울진 토일(吐日) 문중 17대손 지(志) 항렬. 영양 남씨 25세.[2] 인근의 노음리와 함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3] 음력 9월 4일.[4] 어머니 신안 주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며, 첫째 부인 순흥 안씨 안술선(安述善)의 딸은 1879년에 태어나 아들 없이 1903년 7월 21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