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드 켈리

 


1. 개요
2. 생애
2.1.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다
2.2.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다
2.3. 그레타 도적단을 창설하다
2.4. Kelly's country
2.5. 마지막 전투, 그리고 최후
3. 영화화


1. 개요


Ned Kelly
1854~1880
19세기 후반 호주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은행강도이다.
안타까운 사연과 그 만의 독특한 신조로 인해 호주에서는 홍길동, 임꺽정 만큼이나 유명하다.
불우한 가정사와 가난한 자는 털지 않는 규칙으로 인해 의적 취급을 받았고, 그 지역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강도질 중에도 인질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보상까지 한 덕분에 사형 선고를 받을 당시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2. 생애



2.1.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다


네드 켈리는 1854년,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출신인 아버지 존 켈리와 어머니 앨런 켈리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켈리 가족은 빅토리아 주 베버리지에서 소작농 일을 하며 근근히 먹고 살았는데, 그 지역 유지들의 갖은 괴롭힘때문에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할 정도로 궁핍했다. 지주들은 황무지 개척이라는 구실로 주인없는 빈땅을 무단으로 선점했고 주변에 정착하는 농민들에게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곤 했다.
네드 켈리는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비교적 올곧게 자랐다. 하루는 물에 빠져 죽어갈 위기에 놓인 친구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고, 친구의 부모님에게서 금색 술이 달린 초록색 목도리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의 가족도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존 켈리가 죽으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뀐다. 악덕한 지주들이 켈리 가족의 땅을 빼앗기 위해 허위 신고를 하였고 아버지는 절도죄의 누명을 써 노동교화 형에 시달리다 건강이 악화되어 죽고 만 것이다
그의 가족은 가세가 크게 기울어 집값이 더 싼 그레타의 오두막으로 이사하게 된다. 방황하던 그는 아버지의 친구 해리 파워[1]를 만나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둘은 지역 유지의 말과 소를 털며 한동안 그 일대에서 유명한 무법자로 활동한다. 하지만 켈리의 삼촌이 해리를 밀고하면서 해리는 경찰에 체포당했고, 사람들은 켈리를 배신자라고 생각하여 온갖 비난을 하였다. 그는 범죄에서 손을 털기로 마음먹고 이를 감내한다.

2.2.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다


어느 날, 켈리는 부모님의 친구로부터 밤색 말을 선물받는다. 그는 말이 마음에 쏙들어 애지중지 키웠고, 말을 몰고 시내에 나간다. 그러나 그는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경찰의 심문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알고보니 그 말은 훔친 말이었고 켈리는 절도죄와 경찰 폭행죄 명목으로 3년간 수감된다. [2] [3]
켈리는 석방되고 나서도 올바른 삶을 살아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전과자를 고용하는 곳은 아무도 없었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시비와 무시로 얼마 못 버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이를 버텨내었고, 마침내 3번째 해가 지나자 그는 마침내 동네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14살 동생은 젖소를 훔치다 감옥에 갇히고,[4] 경찰이 항상 따라붙어 그의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주변에 절도사건이 일어날때마다 경찰들은 항상 켈리 가족의 집부터 수색했으며, 별것도 아닌 일로 경찰서에 소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편, 지주들은 여전히 켈리 가족을 경제적으로 압박했고, 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그의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켈리에게도 누명을 씌우기 시작한다. 소를 일부러 풀어놓고 켈리를 소도둑으로 신고하던 것이 수차례, 켈리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는 세상 모두가 자신을 달갑지 않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가 영원히 자신의 미래를 옭아맬거라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그는 지쳤고, 결국 다락방에 먼지쌓인채로 놓여있던 낡은 권총을 꺼내들었다.

2.3. 그레타 도적단을 창설하다


네드 켈리는 댄 켈리[5], 존 번, 스티브 하트를 동료로 삼아 그레타 도적단(Greta Mob)을 결성한다. 그들은 부자들의 우마를 탈취한 뒤, 멀리 떨어진 다른 농장에 데려갔다. 그리고 다른 부자들에게 되팔아서 이윤을 남겼다. 아직 통신 장비가 미비하던 시절이라 정보의 전달이 느렸기 때문에, 상인들은 켈리가 범죄자인지도 모르고 매각 증서를 써주었다. 모든 증서가 협박이나 공갈 없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레타 도적단을 어찌할 수 없었다.
피해가 막심해지자,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레타 도적단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고 그해 토벌대가 조직된다.
4명의 무장경찰로 이뤄진 첫번째 추격대는 매우 자신만만하게출발했다. 그들은 전리품을 어떻게 나눌지 떠들며 호기롭게 전진해 나아갔다. 자신들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추적대가 스트링이바크에서 야영하는걸 확인한 도적단은 추적대 중 두 명이 외출한 틈을 타 기습을 가한다. 조잡한 사냥총과 콜트 리볼버 1정이 전부였지만 야음과 타이밍을 활용해 교전에서 승리한다. 항복한 매킨타이어 순사를 제외하고, 저항했던 3명은 바로 사살된다.
그리고 도적단은 이날 이후로 "그레타 갱단"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게 된다.

2.4. Kelly's country


추적대를 성공적으로 따돌린 그레타 갱은 본격적으로 주변의 은행가를 접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들을 "Outlaw" 상태[6]로 선포한다.

2.5. 마지막 전투, 그리고 최후



3. 영화화


호주 영화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인데, 호주 최초의 장편 영화가 네드 켈리 전기 영화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의 탄생보다도 먼저 나온 '''세계 최초의 장편 극영화'''라는 타이틀이 있을 정도. 그러나 필름이 유실되어 16분 정도만 볼 수 있다.
그의 전기가 히스 레저, 올랜도 블룸 주연으로 2003년 영화화 되었다.
롤링 스톤즈믹 재거가 네드 켈리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1] 실제로 성이 Power이다. [2] 후에 진범이 잡혔지만 그는 석방되지 못했다.[3] 사실 경관은 절도당한 말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냥 켈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러세웠는데, 우연히 얻어걸린것 뿐이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이를 공적으로 치하하고 그 경관은 승진까지 한다. 이 사건은 켈리가 공권력을 혐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4] 그의 동생은 당시 유소년에게 부과되던 법정 최고형인 5년을 선고받았다. [5] 그의 동생이다. [6] 무법자. 법적인 보호 자격이 없어 사살해도 무방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