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1.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주인공
1.1. 면모
1.2. 홍길동의 초능력
1.3. 주변 조력자
1.4. 홍길동전 관련 매체
1.4.1. 만화
1.4.2. 영화
1.4.3. 애니메이션
1.4.4.1. SBS 드라마
1.4.4.2. KBS 드라마
1.4.4.3. MBC 드라마
1.4.5. 게임
2. 조선 초의 실존인물 홍길동(洪吉同)
2.1. 활약과 체포
2.2. 최후
2.3. 이후
3.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견본용 이름
4. 같이보기


1.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주인공


洪吉童 / Hong Gil-dong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으로 초능력을 부리는 인물이다. 승상 홍문과 몸종 춘섬 사이에서 태어난[1] 얼자이며 작가 허균이 동기로 삼은, 연산군 통치기에 활동한 도적인 홍길동과는 발음이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이것은 저자인 허균이 두 사람을 분리하기 위한 장치인 듯 하다.
물론 실재했던 홍길동도 실제 행적 여부와 무관하게 후대에는 의적 비슷하게 일부 반가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소설을 지은 허균은 이러한 평판을 빌려서 조선 시대의 계급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다크 히어로로서 의적 캐릭터 홍길동을 창조했다.[2] 실제 홍길동은 연산군 통치기에 때 활동했으나 홍길동전은 문종 통치기를 배경으로 삼는다.[3]
하지만 실재한 홍길동은 오히려 높으신 분들의 인맥을 활용했던 지능형 범죄자에 가까워서 소설의 주인공과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소설의 평가는 당대 양반들도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즉, 실재한 홍길동도 '''얼자'''라는 한계 때문에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도적행보를 보인 것을 안타깝게 여긴 듯 하다.
'홍길동이 도술을 부릴 수 있다'라는 설정도 유명한데, 이는 실존했던 홍길동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생겨난 전설들을 차용한 것이다. 홍길동이 역경을 만나고 고뇌할 때마다 보이는 배경 묘사가 명장면이라서 소설다운 가치도 높다. 현재까지 수많은 창작자에 의해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대표 '''히어로'''라고 하면, 의적으로 각색된 홍길동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하다.

1.1. 면모


도적이면서도 '''무술, 학문, 점술, 용병술, 초능력'''에 두루 능한 '''천재형''' 사람이다. 이는 실존했던 홍길동도 권력층의 서자로서 제법 훌륭한 '''지략'''을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설이나 소설에서나 '''지략파 의적'''으로서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홍길동의 활약은 마을, 군대,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외국의 전설에 나오는 도적들과 비교해도 스케일이 큰 편이다.[4]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물론이고 지략 면에서는 웬만한 영웅들보다도 훌륭하지만 마지막에 왕을 세우고 첩을 만들었다는 언급 때문에 개혁을 이룬 사람이 아닌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사람이라는 평도 있는데 아나키즘 같은 사상조차 무턱대고 왕을 없애서 이상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없애서 사회를 발전하게 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홍길동의 행적을 겉으로만 착한 체한다고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5]
단순히 탐관오리들을 조롱하는데 그치지 않고 벼슬에 진출해 '''나라를 침략하는 오랑캐를 토벌하거나''' 새로운 이상국을 세우는 행보만 봐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당장에 홍길동이 상대하는 단위는 대부분 군대인데 살상 행위는 갈수록 준다는 점만 봐도, 의외의 깊이를 부여한 캐릭터이다.
전설 대다수에서 홍길동은 '''초능력만으로도 최강이라서''' 스토리 대다수가 '''자신의 정체성 탐구 및 세상과의 싸움'''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외 여타 도적 설화와 크게 차이 난다. RPG에 비유하면 고레벨 시프+메이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바꾸려는 스토리에 가깝다. 중세 소설인데도 괜히 고평가받는 게 아니다.
소설에서도 홍길동은 상황이 꼬인 끝에 사람을 몇 명 죽이고 괴로워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겸손하고 선량한 의적으로 바뀐다. 현대 홍길동의 이미지를 창조한 화백 신동우의 명작 만화 <풍운아 홍길동>부터는 아예 사람을 죽이지 않는 '''불살'''을 지키는 의적이 되었다.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홍길동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또한 아버지와 형 등 가족에 대한 애정 자체는 진심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호부호형'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본인 또한 가족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물론 아버지 홍상직과 형 홍인형은 홍길동을 차별하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의 아들이자 동생으로 대했지만, 그럼에도 홍길동은 공식적으론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등 서얼로서 차별을 받아야 했다. 즉 홍길동은 단순히 가족들에게 받은 차별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식적인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저항하였던 것.

1.2. 홍길동의 초능력


  • 괴력: 천근(600kg)이나 되는 초부석이라는 바위를 들어 수십걸음을 걸을 정도.
  • 분신술: 홍길동의 초능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능력. 허수아비를 매개로 만들며, 분신들이 제각기 사고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번에 8명[6][7]의 홍길동이 전국 팔도에서 활약하다가 단체로 잡혀와서 대신들을 조롱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여기 참석한 홍길동의 아버지 홍문 승상이 홍길동의 왼편 다리에 붉은 점이 일곱개있다는 신체 특징을 이용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했지만 다 똑같이 왼편 다리에 붉은점이 일곱개있어서 실패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홍문 승상은 졸도해버리고 여덟 홍길동이 약을 먹여 겨우 살려낸다.[8] 참고로 홍문이 홍길동 다리의 점을 확인하는 장면은 완판본에 나오는 장면으로 경판본에서는 더 나중에 병조판서 자리를 줄때 홍길동의 형이 확인한다.
  • 바람 술법: 바람을 만들어내고, 국소적으로 날씨까지 조종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바람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악행을 일삼는 관리들에게 경고를 보낼 때도 돌풍을 사용한다. 심지어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묘사도 있다. 종이에 비 우(雨)자를 3장 써서 공중에 날리더니 비를 내려 화약을 젖게 만들어 총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비행능력은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 소환술: 황건역사 같은 신장(神將)들을 소환해 부릴 수 있다.
  • 환술: 환상을 보여주거나,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정신을 억압하는 해석도 있다. 의외지만, 홍길동이 상당히 자주 사용하는 능력이다. 일부 판본에서는 사이코메트리(독파술)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보거나, 심지어 독심술이나 예언능력을 가지기도 한다.
  • 인형 술법: 분신술에도 사용하는 인형을 저주용으로 사용하는 능력. 이걸로 사람의 육체를 강제로 움직이거나 멀리서도 고통을 주거나 손을 대지 않고 죽여 버리기도 한다. 본래 소설에 등장하는 성격과는 다르지만, 후대의 각색 중 하나로 추가되었다. 그 대표가 개그 영화 <슈퍼 홍길동>.
  • 퇴마술: 후반부에 율도국을 세울 때 대결한 상대. 한국 요괴 문서에 나오는 거대 이무기, 혹은 지하국대적(오우거와 비슷한 괴물)을 무찌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귀신, 요괴와 엮일 때는 주문을 외워서 쫓아버리는 언급도 있다.
  • 변신술: 일부 판본이나 현대 각색에서 등장하는 능력. 사람, 동물, 무생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일본의 모 거대로봇으로 변신하는 황당무계한 개그 만화도 있었다. 단순히 다른 사람처럼 변장을 하는 능력을 의미할 때도 있다. 은근히 여장 속성이 있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소설에서 나오는 묘사만 해도 '''초능력자 혹은 완벽초인 수준'''이다. 마치 손오공의 조선 버전과도 같다. 소설 홍길동전의 백미는, 이러한 '''슈퍼 파워'''를 가진 의적이 세상을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뇌하는 과정에 있지만 결국 고국을 떠나서 무인도에다 이상국을 건설하는 모습을 보면, '''강력한 영웅 한 명의 힘으로도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교훈까지 보인다. 정말로, 현대의 슈퍼 히어로들의 스토리와 똑같다!
화백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 이후에는, 파란색 쾌자를 입고 초립을 쓴 보부상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이것은 '''백성답게''' 흔히 생각되는 복식이기 때문에 창포검과 함께 홍길동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머리에도 조선 시대 백성이 흔히 사용하던 고름 달린 흰색 두건을 맨다. 현실에 알맞게 묘사하려는 매체에서는 살구색, 붉은색 외투를 입히기도 하지만, 역시나 홍길동하면 푸른 계통의 외투를 입혀야 알아본다.

1.3. 주변 조력자


소설 원전에 등장하는 사람 뿐 아니라, 현대 매체에서 중요하게 각색되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여기에 정리.
  • 홍상직 - 아버지. 홍징은 할아버지 성명이다. 소설 이후로는 홍정승 혹은 홍판서이라는 성명으로 각색된다. 홍길동을 얻기 전 꿈을 꾸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은 황룡인데 젊은 청룡이 자기를 해치려 하니 홍 판서가 활을 쏴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꿈에서 깬 후 활을 챙겨 하늘을 보니 정말로 구름 속에 용의 꼬리가 보였고 활을 쏴서 청룡을 해치우자 황룡의 노인이 다시 꿈에 나타나 고맙다며 좋은 아들을 점지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본부인이 잠자리를 거부했고 대신 첩과 동침했는데 그렇게 얻은 게 홍길동. 홍길동도 그렇지만 양반이자 고관인 본인도 사회의 굴레 때문에 마음에 걸렸는지 길동이 호부호형을 허락해 달라자 언제는 내가 네 아버지가 아니었더냐하며 선선히 허락한다.
  • 홍인형 - 소설에서 형으로 등장하는 사람. 적자로, 소설 이본에 따라서는 홍길현이란 성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따뜻하고 강직한 성품으로서 어른스러운 사람이다. 그 덕분에 도적이 되어 버린 홍길동의 일탈성 면모를 더 느끼게 하는 사람. 주인공에 대비되는 사람을 무조건 찌질이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길동전의 소설다운 가치를 잘 보이는 인물인 덕분에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라서 실재한 사람의 성명이라고 믿는 사람이 꽤 많은 만큼 바람직한 을 대표하는 캐릭터. 모티브는 실재한 도적 홍길동의 둘째 형인 홍일동.[9]
  • 백운도사 - 사람을 죽이고 쓸모없는 사람이 된 홍길동에게 도술을 가르쳐 준 선인. 원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홍길동에게 스승 자체가 없으나 왜인지 매체에서 자주 나온다.
  • 마숙 - 홍길동의 부하로 율도국을 정복할 때 후군장으로 공을 세운다. 홍길동이 왕이 되는데 1등 공신 격이지만, 매체에서는 삭제되거나 악역으로 나오는 등 취급이 좋지 않다.
  • 차돌바위 - 현대 홍길동의 이미지를 창조한 화백 신동우의 명작 <풍운아 홍길동>에서 나오는 사람. 방자 스타일의 전형인 동료.
  • 덥석부리 장군 - 마찬가지로, <풍운아 홍길동>에서 나오는 수하. 이쪽은 신동우 화백의 개성이 강한 사람인지라 변주곡으로 등장하는 때가 적은 편이지만, 홍길동 자체가 현대로 들어서 가볍고 친숙한 이미지로 변하는지라 주인공 대신 무게감을 잡아 주는 무뚝뚝한 산적이 한 명씩 나오는 편이다.
  • 곱단이 - <풍운아 홍길동>의 여자 주인공. 청초한 여자의 전형으로서 홍길동에게 구출되어서 도적단의 가사를 돕게 된다. 후대의 현대 매체도 이렇게 청초하지만 도적단을 돕는 여자 이미지를 답습하게 된다.
  • 돌순이 - 홍길동의 첩을 재해석한 캐릭터. 방자의 여성 버전인 향단이의 변주곡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조선 왕조 시절에 나온 <홍길동전>의 여러 판본 중에서도 활극에 어울리게 무예에도 능한 첩들이 있다. 현대에 가장 유명한 것은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돌아온 홍길동'에서 나온 히로인 2호. 오타쿠 세대에게는 유일하게 건질 캐릭터라고 평가받는다. [출처필요] 전형적인 츤데레 미소녀지만, 당연히 홍길동에게 퐁 빠진다. 그리고 가슴을 만지는 장면이 있다. 흠좀무.

1.4. 홍길동전 관련 매체


외국의 유명한 도적과 비교해도 세상의 형태에 의구심을 가지고 '''정체성을 찾아서 고뇌하는''' 의적으로서 인물됨이 남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대중매체에서는 예전만큼 등장하진 않는 편이다. 돌풍, 환술, 분신술에 능숙한 도적이란 개념은 재미있지만, 다른 대체 캐릭터들도 많아져서인지 예전만큼의 인기를 끌진 못하고 있다. 성명이 촌스럽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심지어 요즘 어린이들은 홍길동이란 이름조차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10]
허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다보니, 오히려 이것 때문에 여러 드립에 활용되긴 한다.(...) 보통 XX를 XX라 부르지 못하고...하는 식.
그 외에 한국도로공사의 마스코트 길통이도 모티브는 홍길동이다.

1.4.1. 만화


[image]
  • 풍운아 홍길동 - 전쟁 세대 신동우 화백의 명작 만화. 현대 홍길동의 이미지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출처는 여기
  • 홍길동과 헤딩박
  • 코미디 홍길동 - 길창덕 화백 작 어린이용 코미디물. 배경이 연산군 시절이며 길창덕 특유의 개그센스가 듬뿍 담겨있는 제법 볼만한 작품. 홍길동의 활빈당이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연산군을 왕좌에서 몰아낸 뒤 홍길동은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는 것으로 스토리를 마무리짓는다.
  • 김봉곤의 홍길동전 - 만화를 읽으면서 들어갈 한자를 보고 배울 수 있으며 개그성이 들어가 있다.
  • 사신소년 - 63화에서 영혼으로 등장한다.
  • 도를 아십니까(웹툰) - 한국 도사협회의 회장으로 등장한다.
  • 헬로도사 - 5대 신선왕으로 나오며 길홍이라는 이름을 쓴다.

1.4.2. 영화


대부분 아동용, 개그 장르이다.

1.4.3. 애니메이션




1.4.4. 드라마



1.4.4.1. SBS 드라마


1.4.4.2. KBS 드라마

2008년 방영. 사실 퓨전 트렌드 드라마에 가깝다. 쾌도 홍길동 항목 참조.

1.4.4.3. MBC 드라마

2017년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배우 윤균상이 주연을 맡았다. 처음 기획의도는 소설 속의 도인 홍길동이 아닌 연산군 시절의 실존했던 인간 홍길동을 그린다고 되어있었지만 실제 내용은 소설 속 홍길동에 가깝다.(...) 시대 배경만 연산군 시절일뿐 홍길동의 캐릭터는 소설 속 이미지를 차용한 퓨전 사극이다. 대놓고 분신술 같은 도술을 쓰지는 않지만 입으로 바람을 불어 사람을 쓰러뜨리고 바위를 손으로 부수는 등 초능력자인 것은 틀림없다. 심지어 쾌걸 조로의 마스크를 쓰고 하늘을 날아 다니기도 한다.

1.4.5. 게임


  • 1991년 MSX 복제팩의 대부중 하나인 크로바소프트에서 MSX/세가 마스터 시스템용에 자체제작한 게임으로 '홍길동'이 있었다. 강제 스크롤이 되는 액션 슈팅게임인데, 조작성은 개떡같았을것으로 사료된다. 흥미롭게도 타이틀 BGM은 아리랑이고 메인 BGM은 뭔가 민요를 당시 게임기 음원으로 조악하게 흉내낸듯한게 묘하게 중독성있다.
  • 로스트사가 - 홍길동(로스트사가)

2. 조선 초의 실존인물 홍길동(洪吉同)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때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시오소서"'''

조선왕조실록 1500년(연산군 6년. 경신년) 10월 22일(계묘) 기사


의금부의 위관(委官) 한치형(韓致亨)이 아뢰기를, "강도 홍길동(洪吉同)이 옥정자(玉頂子)와 홍대(紅帶) 차림으로 첨지(僉知)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官府)에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그 권농(勸農)이나 이정(里正)들과 유향소(留鄕所)의 품관(品官)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체포하여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변방으로 옮기는 것이 어떠하리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39권, 연산 6년 12월 29일 (기유) 기사

본래는 실재했던 전국구 단위 도적.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편에 기록되어 있다. 정승 또는 판서를 지낸 위의 소설과는 달리, 실존인물 홍길동의 아버지 홍상직은 조정의 고위직과는 거리가 있는 종성절제사(鍾城節制使)를 지낸 무관이었다.[12] 홍길동의 가문이 실세가 된 것은 형들의 대에 이르러서인데 홍길동 위로는 적자 출신인 형 홍귀동과 홍일동(1412?~1464)이 있었다. 홍일동은 계유정난에 참여해 원종공신 2등훈에 책록됐고 실제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유명한 대식가이기도 했다.[13] 또 홍길동의 조카딸 숙의 홍씨는 성종의 총애받는 후궁으로 7남 3녀를 생산했다. 조선전기 경향사족 서얼은 경향사족의 돈벌이 등을 대신 처리하던 위치에다가 또한 조카가 숙의 홍씨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홍길동을 건드릴 수조차 없었으니 밑에 나오듯이 조정관리가 괜히 홍길동을 비호한게 아닌, 빽이 굉장히 든든한 인물이었던 것.
고로 역사상의 홍길동은 의적이라기보다는 정계의 빽이 매우 강력한, 오늘날로 치면 관과 결탁한 조직폭력배, 야쿠자, 마약 카르텔, 마피아, 정치깡패, 집창촌 포주 연합회 등의 두목 같은 성격이 매우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홍길동이 갑자기 기록이 사라진 것도 숙의 홍씨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배경을 가진 홍길동은 전국구 도적패를 이끌었는데, 평범한 도적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부하 중에서 일부가 벼슬아치와 결탁하거나 가끔씩 당상관으로 행세했다는 기록[14]을 봐서는, 높으신 분들과의 친목 관계를 잘 이용했던 인텔리 범죄자이면서 검계의 폭력배들을 이끄는 무력까지 겸비한 능력자(?)였다.[15] 덤으로, 부친이 1424년 사망한 것을 고려할 때 활동 시기인 성종 말~연산군 조의 나이는 위의 의적과는 다르게 '''70대 노인'''으로 추정된다. 부친이 죽은 후 유복자로 태어났다 해도 1425년생이니 잡혔을 때 만 75세이다.

2.1. 활약과 체포


실존한 홍길동은 극악하고 냉혹해서 자신의 정체를 알릴까봐 자신을 숨겨준 가족을 죽이거나, 얼굴 가죽을 벗겨서 매달아 놓기도 했다. 당시에는 홍길동의 성명이 욕설로 쓰일 정도였다. 특히, 충청도의 피해가 극심해서[16] 유민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세수가 안 걷힌다는 내용이 실록에 나온다.[17] 당연히 조선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잡으려고 혈안이 됐지만 머리가 좋아서 관군들을 농락하면서 도망한 데다가 상술했듯이 조선 조정의 관리들을 포섭해 비호받았는데 그 대표로 당상관을 지낸 무관 엄귀손이 있다. 엄귀손은 정3품 절충장군으로 탐관오리로도 유명했는데 홍길동과 결탁해 갖은 부를 축적했다. 홍길동은 엄귀손의 비호하에 조선 조정의 관리를 사칭하는 등 범죄의 판을 더 키우다가 결국 1500년에 체포됐다.
실록에는 홍길동을 체포하고서 홍길동을 도운 사람을 처벌한 내용이 나온다. 체포된 홍길동을 처벌하는 논의도 있지만, 정확히 처벌 기록은 없다. 다만 그 죄질이 매우 극악무도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사형을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18]
결국 실재했던 홍길동의 생몰년은 의견이 분분한데 체포된 해에 사형됐다면 1500년에 죽은 것이 되지만 1501년에도 기록이 있고 그 후에도 처벌된 기록이 없어서 갇혀있다가 탈옥했다면, 그보다 한참 후가 홍길동의 몰년이 된다. 생년은 밝혀진 바가 없지만, 홍길동의 형인 홍일동이 1412년 출생이므로 그 후라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장성군에서 전해지는 얘기에는 1443년경에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이 경우 잡혔을 때 57세로 막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의 나이로 보인다. 하지만 1443년생이라면 1424년 사망한 홍상직의 아들이 될 수 없다.[19] 유복자로 가정해 1425년생으로 가장 적게 잡아도 75세에 잡힌 것이 된다.
홍길동이 탈옥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홍길동은 포도청이 아니라 의금부에서 추국했고 훗날 중종 18년에 도적 60명의 탈옥을 방지하려는 논의에서 남곤과 이유청이 "지난번 경신·신서 연간에 있었던 홍길동의 옥사를 거울삼을 만합니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아 홍길동의 옥사에서 탈옥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사했다는 기록이 나옴에도 여러가지 설이 나오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이 매우 자세한 기록물이기 때문인데, 자세해야 할 대도적 홍길동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다. 보통 산적등이 발생하면 관군 출동, 사살, 체포, 문초, 처형 등등 숫자까지 아주 세세하게 기록이 된다. 하지만 홍길동에 대한 기록은 체포 했다는게 전부고 문초한 기록마저 엄귀손에 대한 것만 나오고 홍길동에 대한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연산군일기가 다른 실록들에 비해 다소 부실하거나 중간에 비는 부분이 많은 편이긴 하다.
이런 사정 탓에 홍길동 사건이 정부 고관까지 이어지는[20] 수준이었다는 주장[21]도 있고 그밖에 탈옥설, 가짜 바꿔치기설 등등... 다음 항목에 나오는 오키나와 이주설에 끼워 맞추기 위한 근거없는 추측이 무성하다. 탈옥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심지어 위에 나오는 중종 대의 논의도 '홍길동이 탈옥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탈옥을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거울삼을 만 하다고 한것'이라고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홍길동의 나이를 생각하고,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말그대로 옥사, 옥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어쨌든 기록이 미비한 것은 사실이라 확실하게 답을 내리기는 힘든 상황.

2.2. 최후


홍길동이 탈옥해서 오키나와에 갔으며 후일 그 후손들이 '홍가와라'라는 성명으로 오키나와에서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500년에 류큐 남부 이시가키 섬에서 반란했던 호족 오야케 아카하치(オヤケアカハチ)와 홍길동을 같은 사람으로 추정하는 설인데 확실한 증거는 그다지 없다. 시기상의 일치, 한반도 도자기와 동전 출토 등을 제외하면, 홍길동과 오키나와를 연결하게 하는 인터넷 자료들은 확실한 출처가 부족한 데다가 전부 한국에서 나온 자료 뿐으로 일본 측의 자료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홍길동은 1500년 10월 22일에 잡혔는데 오야케아카하치는 같은 해 2월 13일 류큐 왕국에서 파견된 관군 3000명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죽었다. '''즉, 아카하치는 홍길동이 체포되기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다'''.
오야케 아카하치를 언급하면, 오야케는 호족과 같은 뜻이고 아카하치는 성명으로, 오야케 아카하치는 '호족 아카하치'라는 경어에 해당한다. 전설로는, 그 사람은 출생이 불명확한 사생아로서 묘사가 되어 있어[22] 타지에서 왔다거나 조선 반도에서 온 홍길동이라는 전설이 붙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홍가와라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는 '오야케 아카하치=홍가와라'라는 설은 책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던 표기가 후대에 전해지면서 생긴 차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 류큐의 역사서 <구양>(球陽)에서는 같은 사람으로 본다.
사서와 같이 다른 사서 등에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채록되어 있을 뿐이다. 오키나와의 현재 역사 교과서에도 다른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가와라와 아카하치와 다른 사람이라는 설을 좇으면, 이 사람들은 아들이나 형제나 외지에서 온 사람로 거론하는데 당시 아카하치가 있던 거점인 이시가키 섬은 원래 여러 세력이 다투는 중이었고, 아카하치도 그중 하나의 세력이었는데 아카하치는 이시가키 섬에서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라 하테루마 섬에서 이주한 사람이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 받아서 그곳에 정착하지 않았냐는 이야기가 거론되지만 비슷한 시기에 살았고 아카하치가 외지인의 자식인 데다가, 거점으로 삼았던 이시가키 섬이 아닌 하테루마 출신의 이주한 사람이라는 점과 홍가와라라는 별칭이 붙었던 점에 의해 국내 일부 사학자가 여러가지를 엮지만 증거 등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정조 시기 황윤석이 쓴 <증보 해동이적>을 보면, 홍길동이 조선에서 탈출해 타국으로 가서 왕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곳이 오키나와라는 말은 없고 그냥 당대에 떠돌던 소문 기록한 내용에 불과하다.

2.3. 이후


실재한 홍길동은 위처럼 잔혹했으나 몇 세대가 지나자 '폭군의 시대를 엿먹인 도적'이란 명성만 남게 되었다. 결국, 홍길동은 지배층을 까고 싶은 욕구와 맞아떨어져 아름답게 꾸며지기 시작한다. 이는 일본의 이시카와 고에몽과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홍길동이 의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던 이유는 홍길동이 살아 있던 시기의 왕이 하필이면 바로 '''연산군'''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연산군을 혐오했던 반가에서도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홍길동이 한창 활동하던 당시의 연산군은 대신들과 적절히 타협하며 국정 업무를 잘 봤다. 연산군이 본격적으로 망가지는 것은 갑자사화 이후다. 즉, 그런 이야기도 후대의 추억보정내지 왜곡.
그 후 소설 <홍길동전>이 나오면서, 아예 뜻이 뒤집혀 소년들이 홍길동의 성명을 걸고 맹서하는 의적 캐릭터로 유명해졌다. 덤으로 후대에는 김옥균을 쏜 '''홍'''종우, '''길'''영수, 이기'''동'''이 개혁을 함께 이끌었는데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큰 활약했다고 해서 성명 중 한 자씩을 따 ‘홍길동’으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일명 아치실 마을 측과 강원도 강릉시 측에서 서로 홍길동의 고향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장성군수 모 씨는 증보해동이적에서 홍길동은 장성 아차곡 출신이라고 나오므로 홍길동의 고향이라고 주장했고, 강릉시장 모 씨는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고향이라서 각자 홍길동의 고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결국 장성군 측이 승리하여 홍길동의 캐릭터권을 독점하게 되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데, 상표등록 취소심판에서 장성군이 이긴 것은 맞지만, 그 심판이유는 장성군에 캐릭터권이 있는지 여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강릉시가 상표권을 해 놓고 안 썼기 때문에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등록만 해 놓고 쓰지 않는 이른바 저장상표를 막기 위해서 등록 후 3년 동안 안 쓰면 취소심판을 제기할 수 있고, 이 사유로 제기된 취소심판에서는 상표등록자가 사용을 했는지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며, 누구에게 실질적인 권리가 있는지 여부는 심판대상이 아니므로, 장성군이 강릉시에 이긴 것은 그냥 강릉시가 상표 사용을 안 했다는 사유 때문인 것. 일단 선출원이 우선되는 상표권 특허심판에서 실존인물 고향이라고 손을 들어 줄 리가 없기도 하다. 다만 취소심판 이후에는 강릉시에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23] 장성군이 사실상 캐릭터 독점에 가까워진 것은 맞는 듯. 그런데 위 내용을 보면 실존인물 홍길동의 고향이라는 것이 과연 캐릭터사업을 할 정도로 자랑스런 일이 맞는지 의문이긴 한다.

3.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견본용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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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용 이름으로 사용된 홍길동
한자는 洪吉童이고 아무개와는 동일인. 공문서, 서류 작성 예시에 많이 언급된다. 그냥 '''여기에 성명 입력'''이라는 것.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가족 사항으로는 부친 성명은 홍판서고 그 직업은 공무원.
왜 문서양식 이름은 다 홍길동일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알고, 후손 등이 항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허구성이 더해진 고전소설 속 인물이며, 이미지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한 것으로는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하는 John Doe / Jane Doe 나 John Smith. 또 미국에서는 핸콕이라는 말도 비슷하게 쓰이는데 그 이유는 미국을 건국한 초대 정치인 중 한명인 존 핸콕이 독립선언문에 크게 서명해서 핸콕이라는 말이 '자필 서명'을 의미하게 됐기 때문이다.[24] 영국에선 대영제국 시대 영국군에서 흔한 이름이었던 Tommy Atkins가 영국군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고 일본에서의 비슷한 예시로는 야마다 타로[山田太郎]/야마다 하나코[山田花子]가 있다.
'홍길동'이라는 견본용 이름은 일본에서조차 한국인의 견본용 이름이 되어버렸다. 법무성 출입국재류관리청에서 특별영주자증명서 샘플을 게재했는데, 거기에 쓰여진 이름이 洪吉童이다.
공공기관 외에 은행이나 증권사 등에서는 다른 인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전국민, 김신한, 김신용, 김뱅크 등. 대학 논술에서도 성균이, 균관이라든가 김동국 같은 명칭이 나오기도 한다.
일부 지역의 관공서에서 '홍길동' 대신 배우 '박보검'을 예시에 쓰기도 했다.#
  • 한글판 Windows에서도 홍길동이 등장한다. 참고로 영문판에서는 'Mary's Computer'라고 나온다.

4. 같이보기




[1] 고전 소설 주인공답게 태몽부터 비범한데, 홍문이 대낮에 청룡이 나오는 꿈을 꾸고 귀한 아들이 태어날 태몽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에 꿈이 달아날까봐 얘기는 못하겠고 바로 동침하려고 했지만 '어찌 대낮에 아녀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렵니까? 재상은 체면도 없소?'라며 부인이 거부하여 몸종과 동침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난것. 이 동침 부분은 대부분의 아동용 판본에서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이는지라 삭제되기 일쑤다.[2]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홍길동이 다크 히어로라는 말이 어색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실재한 사람부터가 도적이고 소설 내부에서도 홍길동은 초반에 온갖 소동을 일으키면서 노비의 자식이라는 혈통에도 율도국을 세우면서 계급 사상을 완전히 비트는 결말을 보이는 주인공이다. 참고로, 당시 오락 소설들은 주인공들의 핏줄이 죄다 입신양명을 부르짖는 유교다운 선비의 혈통을 강조할 정도로 유교 사상에 찌들어 있는 상태였다.[3] 소설 도입부는 조선조 세종 16년(1434년)에 태어났다는 내용이지만, 홍길동이 청년이 돼서 활동한 시대를 계산하면 문종 시기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실제 역사와는 무관한 소설 속의 설정이다.[4]대륙의 기상수호전과는 물량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수호전은 두령만 108명이고 졸개는 만 단위로 헤아리니... 중국은 자국 내 다툼조차 웬만한 국가 간의 전투 규모라서 그럴 수 밖에 없다.[5] 당초 이상향이라는 것도 그 상상력이 발휘된 시대의 한계에 종속되는 것인데, 이를 현대의 정치관-윤리관에 따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노예제가 있고 전쟁하기도 하고 식민지도 만들고 억압된 사회이기까지 한데...[6] 완판본은 허수아비 분신 7, 본체1. 경판본도 허수아비 7, 본체1이지만 임금 앞에서 사라질때 8명의 홍길동 모두가 허수아비였던걸로 나온다.[7] 조선이 팔도인 까닭으로 8명인 것으로 보인다.[8] 몇몇 판본에선 신체 특징을 확인하는게 아니라 신체 특징을 말하고 나서 홍길동을 꾸짖다가 피를 토하며 졸도해 여덟 홍길동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한방울씩 먹여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으로 나온다.[9] 일부 판본에서는 조정의 보복성 인사로 홍인형에게 홍길동을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려서 홍인형은 동생을 잡지도 어명을 거역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쇠약해져가자 홍길동은 형님 죽는 거 볼 수 없다고 자수하고, 홍인형도 그런 동생 보고 내가 어찌 널 죽게 잡아가냐고 울부짖는 등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게 나온다.[10] 다만 학교 교과서나 가정통신문에서 이름 기입하는 란이 있을때 예시로 홍길동을 드는일이 잦다.[11] '미리내 소프트'에서 발매한 PC게임[12] 홍상직의 아버지 홍징은 고려 말 권신이였던 염제신의 사위였다. 염제신의 아들이면서 이인임의 수족이였던 염흥방과는 처남 매부 관계라서 염흥방 일파로 몰려 아버지 홍징과 다른 형제들은 처형됐고 홍상직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전라도 장성으로 은둔해 터를 잡았다. 사족으로 홍상직의 외손자는, 연산군 시기에 영의정을 지내고 후일 반정에 가담하는 유순이다. 염제신의 사위로는 홍징, 이송 등이 있는데 이송의 아들이 세종 대 과학자 이천이다. 즉 홍상직과 이천은, 같은 염제신의 외손자인 것이다[13] 동시대 사람 서거정이 지은 <필원잡기>를 보면, 그 사람은 진관사에서 생활할 때 떡 한 그릇, 국수 세 주발, 밥 세 바릿대, 두부국 아홉 주발을 먹었다. 그 사람이 산 아래 왔을 때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홍일동은 찐 닭 두 마리, 물고기국 세 주발, 생선회 한 쟁반, 술 마흔 잔을 먹었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홍일동은 사실임을 아뢰었고 세조는 장사(壯士)라고 말했으나 평상시에는 미숫가루를 먹고 맑은 술만 마셨다. 밥을 먹지 않았다. 1464년에 그 사람이 명 사신을 접대하다가 홍주에서 폭음으로 죽었을 때 사람들은 배가 터져 죽었다고 생각했다.[14] 자기 형인 홍일동이 진짜로 당상관이었으니 형이 입던 옷 갖다 입으면 될 정도로 당상관 행세하기도 매우 쉬웠다.[15] 단, 검계라는 명칭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홍길동 시대보다 훨씬 뒤인 약 200년 후 숙종 통치기 때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명칭으로 불리지는 않았지만 사서에 기록된 홍길동의 행적은 보면 이후 검계와 큰 차이가 없긴 하다. 오히려 더한 점도 있는 걸 보면 검계의 전신격.[16]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에 유독 홍길동 관련 구전이 많이 전해진다. 심지어 이 마을에 있는 금계산에는 '홍길동묘'라고 불리우는 장소까지 있다.[17] "(전략)충청도는 홍길동(洪吉同)이 도둑질한 뒤로 유망(流亡)이 또한 회복되지 못하여 양전을 오래도록 하지 않았으므로 세(稅)를 거두기가 실로 어려우니..." -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8월 29일 갑자 1번째기사[18] 픽션이지만 신봉승의 조선왕조 오백년 원작에는 늪에 몰려서 생포되고서 모진 고문 끝에 능지처참에 처해지고 '''뼈가 분쇄돼 바람에 날아가는'''것으로 처리하지만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홍길동을 도운 엄귀손이 고문받고 옥중에서 장독으로 죽었다는 기록은 있다.[19] 이 때문에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홍아모개의 아들로 나온 듯 하다.[20] 가능성이 낮지만 정말로 홍상직의 아들이라면 성종까지 이어지게된다[21] 실록 편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연루되었기 때문에 축소 은폐 되었다는[22] 신성한 지역에 조난당해 온 포르투칼 사람과 신녀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아카하치라고 한다.[23] 사실 사용하지 않아서 취소당한 걸 보면 그 전부터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24]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핸콕〉의 주인공 성명이 핸콕인 것도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자필로 서명하라는 말을 듣고 자기 이름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