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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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의 행잉록에서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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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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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문제를 다루는 워윅 손튼의 스위트 컨트리
Cinema of Australia
1. 개요
호주의 영화 산업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
2. 역사
호주에 처음 영화가 들어온 것은 1896년 10월이며 호주 최초의 장편 영화 《켈리 갱 이야기》(영어: The Story of the Kelly Gang)은 1906년에 나왔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기록상 세계 최초의 장편 영화인데, 딱히 예술적인 목적이 있었기 보다는 장편 영화를 상영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엄청난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었다고. 그러나 필름이 유실되면서 16분 정도만 볼 수 있는 상태다.
1910년대에는 영화 붐이 처음 일어나기도 했지만 1차 대전 일어나고 나서 크게 쇠퇴했다. 붐이 일어나다가 훅 쇠퇴한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더불어 미국 영화수입보다 호주 영화 제작이 비쌌기 때문이다.
1923년에는 호주 상영 영화중 94%를 미국 영화가 차지했다.
1970년대부터 호주 정부가 영화 산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한 호주 뉴 웨이브가 등장한 시기라서 영화 시장도 같이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피터 위어가 감독하여 매드 맥스에 지대한 영향을 준 영화 <파리를 삼켜버린 자동차>, 여학생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실화를 토대로 만든 <행잉록에서의 소풍>, 어보리진 문화에서 비롯된 아포칼립스적 불안함을 드러낸 <잃어버린 시간>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은 호주 영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면서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람보로 유명해진 테드 코체프의 원초적이고 기이한 스릴러 웨이크 인 프라이트[1] , 영국인이 호주로 넘어와 찍은 니콜라스 뢰그의 워크어바웃같은 영화들이 개봉되면서 호주 영화계는 주목받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호주 어보리진 문화와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불안함이 깔려있는게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초 영화 매드 맥스(감독 조지 밀러)에 이어 1986년 크로커다일 던디도 배출하면서 80년대부터 호주 영화가 더욱 주목받았다.
이때를 기점으로 호주 출신 배우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했으며 호주와 미국 영화 제작사들이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아카데미 시상식 등으로 성과가 드러나는 동시에 호주의 모습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한편, 호주 원주민 차별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원주민 차별과 어두운 현실을 다룬 영화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필립 노이스의 토끼 울타리, 니콜라스 뢰그의 워크어바웃, 워윅 손튼의 삼손과 데릴라, 스위트 컨트리, 제니퍼 켄트의 나이팅게일(영화)가 있다. 데이빗 걸필리는 이런 어보리진에 대한 호주 영화계의 주목과 더불어 유명해진 어보리진 배우다.
북미지역 다음으로 서부극의 영향력이 강하고 인기가 많다. 아무래도 서부 개척사와 비슷한 시기에 호주에서도 내륙 개척사가 이뤄졌기에 동질감을 느끼는듯.
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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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AA(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호주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 한국 영화, 영국 영화, 프랑스 영화, 인도 영화, 독일 영화, 멕시코 영화, 러시아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11위'''로 나타났다.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
영화 시장은 2016년 기준으로 9위로 인구수를 감안했을때 인구 대비로 친다면 영화시장이 큰 편으로 인구가 10배에 달하는 인도네시아보다 순위가 높지만,[2] 영국 영화와 같이 인력과 자본이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큰 문제이다.[3]
4. 시상식
대표적으로 미국,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만큼 큰 주목 받지 못하지만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AACTA 시상식'''(오스트레일리아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상)'''이 있다. 여기서 작품, 감독, 배우들이 상을 타게 되면 할리우드에서도 주목받는 시상식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