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메카
1. 역사
인천기계공고의 초창기 배틀로봇이었던 메카를 리뉴얼한 것이 바로 이 네오메카로 등장한지 얼마 안되어 배틀제왕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상대는 4연승을 준비중이었던 RATS하이킥으로 이미 전 로봇들을 다 단시간만에 골로 보냈을 뿐더러 네오메카의 초기 형태가 영 불리했기에 말그대로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졌고 그당시 전복되면 아무것도 못하는 낙담한 모습으로 그저 뚜벅이처럼 이동하다가 RATS하이킥의 급습으로 결국 함정에 빠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이후 차체를 변경했고 그결과 백러쉬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네오메카가 탄생했다.
네오메카의 타격은 그당시 암흑기 로봇과 그닥 차이는 없었지만 전복시에도 어태커로서의 운용이 가능하다는 메리트로 배틀제왕전까지 진출했다.
상대는 스피드로 기동성이 출중했던 배틀로봇이었지만 역으로 기동성을 발휘하여 스피드를 마당쇠쪽으로 밀어냈고 그결과 마당쇠의 타격에 스피드는 그대로 작동불가, 고등학교 소속 최초로 배틀제왕에 입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흑역사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세한 건 후에 서술하며 잠시 중략한다.'''
이후, 네오메카는 제1회 고교 로봇대전에서 뉴가디언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3연승때 맞이했던 도전자 사방불패2와의 배틀제왕전에서 경기가 진행될때마다 애매한 타격으로는 사방불패2를 압도하지 못했고 이리저리 타격을 입으며 뒤집히다가 한쪽 바퀴가 빠져버렸고 나머지 바퀴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빠져[1] 결국 판정패로 배틀제왕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2]
이후 제1회 배틀로봇 최강자전에서 트라이던트2에게 패배,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후다닥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제 26대 배틀제왕을 가리는 날 컴백했지만 스피드스피드 2위 등극 후 그 당시 신생 로봇이었던 짱가를 지목하는 대실수를 범했고[3] , 짱가에게 그야말로 완패를 당하면서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1. 차체 변경 논란
네오메카는 2연승 도전때 RATS토네이도의 도전을 받았는데, 이 때 기존 회전 디스크 어태커 형태가 아닌 T자형 빗면을 가졌던 디펜더 형식으로 출전했다. 이는 엄청난 논란이 되었는데 이건 사실상 다른 로봇을 같은 이름으로 출전시킨 행동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많은 관중들에게 야유를 들었고 이를 토대로 배틀로봇 규정이 개편되어 대대적인 차체 수정을 금지시켜 버렸다.[4][5]
2. 기타
네오메카의 디스크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배틀로봇 중량 제한이 33kg이었기에 중량을 줄이고자 했던 것이었다.
후속작인 네오메카2는 타점을 3개로 늘리고 디스크의 크기를 줄여 좀더 기동성을 빠르게 한 로봇이었으나 그 결과 디스크의 위력이 약해졌고 배틀로봇 환경도 크게 바뀌면서 네오메카1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후 디스크가 아닌 수직회전 블레이드를 가진 네오메카3를 내놓았지만 역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하고 네오메카 시리즈는 끝나게 되었다.
2007년부터는 네오메카2 역시도 많이 나오지않았는데, 파일럿이었던 양광현 선수가 2007년 고3이 되면서 학업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도 컸었던듯하다.[6]
제작팀인 인천기계공고는 대학팀에 비해 성적이 떨어졌던 고교팀들 중 경기기계공고와 함께 몇 안되는 대학이나 성인팀과도 대등한 성적을 보인 팀이었다. 특히 인천기계공고는 경기기공과의 전적에서도 우위를 차지했고 2008 고교 로봇대전에서 우승하고 배틀제왕에도 무려 4개의 로봇을 등극시킬 정도로 고교팀 중 최고의 성적을 보여줬다. 2006년까지는 양광현 파일럿이,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후배인 채지병 파일럿이 간판급 역할을 했다.
[1] 그 당시 네오메카의 바퀴는 에어바퀴였다. 스피드와 접지력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문제는 바퀴의 내구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기에 이 부분이 네오메카의 아킬레스건이었다.[2] 두 로봇의 점수차이가 19점이나 났었다.[3] 물론 짱가가 사상 최초로 등장한 걸기형이었기에 잠재력을 몰랐을 것이고, 그냥 흔한 신생팀 정도로만 생각하고 만만히 보았을 것이다.[4] 경기는 네오메카의 승리로 2연승.[5] 2연승때 사용되었던 차체는 결국 T메카로 개명되었다.[6] 그래서 2007년부터 후속작인 수평디스크형 로봇인 뮤턴트도 후배들이 대신 파일럿으로 출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