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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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老狐精
여우 요괴 중 하나.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고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으로, 보통 승려의 모습과 비슷하나 머리를 기른 행색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늙은 여우의 기운이 피어올린 것이다. 사람과 모든 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다만 누런 개나 흰 매를 보면 사냥 당할까 두려워 갑자기 놀란다. 고려 때 신돈이 노호정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2. 전승
2.1. 용재총화에 기록된 이야기
신돈(辛旽)이 국정(國政)을 잡은 처음에 기현(奇顯)의 집에 기숙하면서 기현의 처와 사통하였는데, 기현 부처13는 늙은 노비처럼 시종하였다. 신돈의 권위가 점차 성해져서 백성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 죽을 지경에 두고자 한다면 뜻대로 안 됨이 없었다. 만약 자색14이 아름다운 사대부의 처첩이 있다고 들으면, 그 남편을 조그마한 죄라 할지라도 순군옥(巡軍獄)15에 보내고는 기현 등을 시켜서, “만약 주부(主婦)16가 친히 가서 부탁하면 억울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하게 하였다. 그 부인이 신돈 집에 와서 대문을 들어서면 말과 따르는 사람을 돌려보내고, 중문을 들어서면 비복17들까지 보내게 하였으며, 신돈 집안 사람이 데리고 안문으로 들어오면 신돈은 서당(書堂 서재)에 혼자 앉아 있었다. 옆에 마련된 이부자리에서 마음대로 간음하는데, 사랑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수일 동안 머물게 하였다가 보내고서는 그녀의 남편을 놓아 주었다. 만약 불손한 자가 있으면 벌을 주기도 하고 혹은 귀양보내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죽게 된 자도 있었으므로, 부녀자들은 그 남편이 잡혔다고 들으면 반드시 단장을 하고 먼저 신돈의 집에 가는데, 하루도 빠진 날이 없었다. 신돈은 양도(陽道)가 쇄할까 염려하여 흰 말의 음경을 자르거나 지렁이를 회(膾)쳐 먹는데, 만약 누런 개(黃狗)나 흰 매를 보면 소스라쳐 놀라고 두려워하니, 그 당시 사람들은 늙은 여우의 정령이라 하였다.
2.2.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이야기
고려사절요 29권 공민왕 20년(1371년) 7월 기록中
신돈을 처형하다
양부(兩府)3·대간(臺諫)4·이부(理部)5에서 상서하여 이르기를,
“대역(大逆)은 천하 만세에 용납되지 않는 바입니다. 신돈(辛旽)은 원래 일개 미천한 승려였는데, 외람되게 상(上)6의 알아주심을 만나 지위가 신하로서 최고에 이르러 백관을 나아가게 하고 물러나게 하였으며, 턱으로 가리키고 기색으로 부려서 그가 자기에게 아부하는지 아닌지를 보고 관직을 주거나 빼앗았습니다. 흉한 무리들을 널리 심어두고 분수에 맞지 않은 것을 엿보기까지 하였으나, 다행히 조종(祖宗)7의 영령과 전하의 선견지명에 힘입어 비밀스런 모의가 발각되었는데, 관대한 형벌을 쓰시어서 유배를 하는 데에 그치셨으니 삼한(三韓)이 불만스러워 원망하고 있습니다. 또 신돈의 당여(黨與)8가 어찌 최사원(崔思遠)·기현(奇顯) 등 7인 뿐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시어 신돈을 극형에 처하시고 가산을 적몰하시며, 아울러 그 무리들을 죽이시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왕이 이를 따라 대사성(大司成)9 임박(林樸)과 판사(判事)10 김두(金斗)를 보내어 수원(水原)11에서 신돈(辛旽)의 목을 베고 사지를 찢어서 조리돌렸으며, 경성 동문(東門)에 목을 매달았다. 과거에 왕은 신돈·이춘부(李春富) 등과 함께 맹서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박에게 맹서문을 주어 신돈에게 보여주고 죄를 일일이 열거하게 하였다. 임박이 수원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서 왕명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거짓 보고를 하니, 신돈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오늘 소환하시는 것은 대개 아지(阿只)를 위하여 나를 생각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지는 방언으로 어린 아이의 존칭이다. 신돈은 처형을 당하면서 묶인 손으로 임박에게 애걸하여 말하기를, “원하건대 아지를 보아 내 목숨을 살려주시오.”라고 하였다.
신돈은 성품이 사냥개를 두려워하고 활로 쏘아서 하는 사냥을 싫어하였다. 또 방자하고 음란하여 항상 오골계[烏雞]와 백마를 죽여서 양도(陽道)12를 도왔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신돈을 일러 늙은 여우의 정기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