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상서사
錄尙書事
한나라 때 설치된 가관(加官)의 명칭으로 비상설직으로, 관직명 그대로 상서대의 일을 검토하는 권한을 가졌다. 성상서사(省尙書事), 평상서사(平尙書事), 영상서사(領尙書事)와도 글자만 다르지 권한 등은 거의 동일하다.
한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한 무제 말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무제가 사망하기 전에 곽광 등에게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된 소제의 보필을 부탁하면서 대사마 대장군 녹상서사로 임명한 데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이른바 외척보정이 등장하면서, 곽광을 시작으로 대사마 대장군 녹상서사로 임명되어 정권을 장악하는 단초가 되었다.
후한 화제 대부터는 황제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는 경우가 많아 황태후가 섭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황태후의 일족의 수장격인 자가[1] 대장군의 직을 맡음과 동시에 녹상서사를 더하여서 정권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다.
외척보정 이외에도 황태후 섭정 하에서 태부나 삼공 등으로 임명된 자가 외척보정인 대장군과 함께 녹상서사를 가관받아 일을 함께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나라 때 설치된 가관(加官)의 명칭으로 비상설직으로, 관직명 그대로 상서대의 일을 검토하는 권한을 가졌다. 성상서사(省尙書事), 평상서사(平尙書事), 영상서사(領尙書事)와도 글자만 다르지 권한 등은 거의 동일하다.
한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한 무제 말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무제가 사망하기 전에 곽광 등에게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된 소제의 보필을 부탁하면서 대사마 대장군 녹상서사로 임명한 데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이른바 외척보정이 등장하면서, 곽광을 시작으로 대사마 대장군 녹상서사로 임명되어 정권을 장악하는 단초가 되었다.
후한 화제 대부터는 황제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는 경우가 많아 황태후가 섭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황태후의 일족의 수장격인 자가[1] 대장군의 직을 맡음과 동시에 녹상서사를 더하여서 정권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다.
외척보정 이외에도 황태후 섭정 하에서 태부나 삼공 등으로 임명된 자가 외척보정인 대장군과 함께 녹상서사를 가관받아 일을 함께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1] 대체로 그 아비나 오라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