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메리아누스

 


1. 개요
2. 생애
2.1. 황제가 되기 전
2.2. 황제 즉위
2.3. 의문의 죽음
3. 인물됨


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황제. 공식 이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Marcus Aurelius Numerius Numerianus Augustus,?~ AD 284). 로마 황제 카루스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83년부터 284년까지이며, 형인 카리누스와 공동 황제였다.

2. 생애



2.1. 황제가 되기 전


아버지는 프로부스 황제의 근위대장이자 후임 황제인 카루스이다. 형인 카리누스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연도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일리리아계인 아버지가 판노니아 남부의 시르미움 근처에서 배수로 공사 중, 폭동이 일어나 황제로 선포되고 난 이후에 즉위하면서 282년 카이사르에 임명되었다. 이때 카루스는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의 국방을 장남인 카리누스에게 맡겼고, 그는 라인 주둔 군대로 파견되었다. 동시에 누메리아누스는 아버지와 함께 남아 동방원정 준비를 했다.

2.2. 황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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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달리, 누메리아누스는 아버지와 함께 동방 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도나우 강을 넘어온 콰이족사르마티아족을 283년에 굴복시킨 뒤, 후방을 안정화시킨 상황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를 향해 나아갔다. 이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셀레우키아를 점령하였고, 티그리스 강을 건너 크테시폰마저 장악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83년 여름인 8월, 아버지가 베일에 싸인 사건으로 죽자[1], 원정군은 당황하였고 로마군은 혼란에 빠졌다. 이후, 형인 카리누스는 로마 서부지역의 황제가, 누메리아누스는 동부지역의 황제가 되었다.

2.3. 의문의 죽음


다시 283년 여름으로 넘어가서, 로마와 사산 왕조 사이의 전쟁이 한창일 무렵 아버지 카루스가 갑자기 사망하자, 갑작스럽게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누메리아누스는 망연자실했다. 거기에다 새 황제는 원정길에서 최고사령관으로 맡아야 할 의무나, 다른 어떤 조치를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의욕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결국, 로마군은 철수를 결정했다.
군대를 이끌고 귀국하던 중, 눈병까지 걸린 누메리아누스였다. 이들 원정군은 그가 탄 마차를 에워싸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때 친위대장이자 장인인 아리우스 아페르(Arius Aper)는 새 황제가 병에 걸려 있으니 마차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284년 군대가 보스포루스 해협에 이르기 직전, 숙박 예정지에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누메리아누스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병사들과 경호대장 디오클레스(Diocles)[2]는 황제가 탄 마차 안을 열었다. 이때 마차 안에서는 시체가 부패한 냄새가 났고, 커튼이 외부에서 마차를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다. 이어 침상 위에 칼에 찔린 뒤 죽은 채로 누워 있는 황제가 발견되었다.
경호대장 디오클레스는 즉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주둔지를 수색해 황제의 장인이자 친위대장 아페르를 황제 살해죄로 체포했다. 그는 아픈 황제를 대신해서 당시 군대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철수 중이어서 더욱 급박했기에 그는 즉시 체포되었다. 디오클레스와 로마 장군들은 아페르의 행적과 그가 이동 중 보여준 정황 등을 토대로 그를 체포한 것이다. 이유는 먼저 아페르 만이 황제의 마차에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도 황제의 마차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거기에다 그는 누메리아누스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증언도 나왔다[3].
군사회의를 통해 로마 동방원정군은 만장일치로 38세의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 디오클레스를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한 뒤 제위에 올렸다. 새 황제는 보라색 망토[4]를 입은 뒤, 누메리아누스 암살범과 자신이 무관함을 다시 선언했다. 이어 자신의 칼을 태양에 비추어 맹세를 한 뒤, 아페르를 황제 암살죄로 단칼에 베어 죽였다.[5]

3. 인물됨


악습에 빠져 있었고 인망이 두텁지 않은 형 카리누스와 달랐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우 상냥하고 뛰어난 웅변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상당한 문학적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황실 친위대장인 아리우스 아페르의 딸이었다.
[1] 사료들에 의하면 그가 머물던 막사에 번개가 떨어져 그곳에 머물던 카루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위대장이자 사돈인 아리우스 아페르(Arius Aper)의 손에 의해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 훗날 황제가 되어 디오클레티아누스로 개명했다.[3] 디오클레스(디오클레티아누스)가 누메리아누스 암살과 무관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정황상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누메리아누스를 암살한 증거도 없고 행적도 암살과 무관했다.[4] 황제의 상징.[5] 혹은 전 군대에게 연설을 한 뒤, 아페르에게 자결을 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