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르족

 

1. 개요
2. 역사
3.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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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르족은 주로 남수단에티오피아 감벨라 지역에 거주하는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누에르어(Thok Naath)를 사용하는 나일로트 계열의 민족이다. 남수단 내 주요 민족 중 하나로 딩카족과 마찬가지로 소를 치고 조, 수수, 기장을 재배하는 반농반목 생활을 영위한다. 유라시아 유목민이나 아랍계 유목민과 다르게 말을 키우지는 않는다. 남수단에는 180만여 명 이상, 에티오피아에는 28만여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2. 역사


누에르족과 딩카족은 원래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여러 부족 집단에서 출발하였으며 두 부족이 분화한 것은 수백년 전 무렵으로 추산되나 이들에 대한 자세한 문자 기록이 없는 관계로 아직 추정에 불과하다. 12세기 무렵부터 북수단이 아랍화하면서 아랍화한 기마 유목민들이 남수단을 계속 침략하는 와중에 이들의 거주 반경은 점점 남쪽으로 밀려났다. 19세기 초 무함마드 알리가 이끄는 이집트군이 상아와 노예 무역을 노리고 수단 남부 지역까지 병합하면서 상당수의 누에르족은 케디브 왕조 이집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나머지 역시 19세기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의 정복 활동 와중에 에티오피아에 병합당하였다.
이후 남수단의 누에르족과 딩카족의 역사는 상당 부분 겹친다.
알바니아계 오스만 튀르크인 출신이었던 무함마드 알리는 자신의 동향인 알바니아 출신 군인들을 보내 누에르인과 딩카인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고 군인을 징집하였다. 이들은 이집트인 징집병들과 마찬가지로 전열보병으로 훈련받았다. 동아프리카 다른 지역 흑인들이 백인을 파랑기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게 이들은 백인들을 튀르키(터키인)라고 불렀다. 수단에서 일어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무장저항인 마흐디 운동 당시 많은 누에르족들이 마흐디국 측과 이집트-영국 연합군 양쪽 모두에 징집되었는데, 영국군의 기록을 보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누에르족들이 마흐디 군 측에 참전했다 전사한 누에르족 병사들의 주검에서 아버지나 아들, 혹은 형제의 시신을 발견하고 직접 매장해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마흐디 운동이 진압된 이후 이 지역에는 서구인 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지며 토속 신앙이 기독교로 대체되었다. 남녀노소 나체로 살던 누에르족들은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마사이족 비슷한 의복을 갖추어입게 되었다.
수단 공화국의 독립 이후 북부의 아랍인들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독교인이거나 토속 신앙을 믿는 누에르족들에게도 강요하고 남수단 내 석유 채굴로 인한 이득을 아랍인들이 독점하자 누에르족들은 딩카족 및 다른 남수단 부족들과 힘을 합쳐 투쟁하고 이는 수단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수단 내전 와중에 북수단 측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여론이 악화되고 결국 누에르족과 딩카족은 남수단 공화국을 세우며 독립을 쟁취한다.
남수단 독립 이후에는 부족 간의 갈등 및 부족 내 종파 갈등 등으로 다시 내전이 일어난 상황이다. 누에르족은 남수단 내 다른 부족들과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누에르족 내부에서도 씨족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남수단이 안정되고 누에르족 생활이 안정화되는 데에는 많은 시일과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여담


딩카족과 누에르족은 얼굴에 일부러 곰보 자국 비슷한 흉터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는데, 누에르족은 보통 뺨 부위에 대각선으로 흉터를 만들고 딩카족은 주로 이마에 수평으로 흉터를 만들어 서로를 구분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