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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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뉘게세(Charles Nungesser)[1]의 그림 <창공의 지배자(Master of Skies)>.
1. 성능
1.1. Nieuport 11
1.2. Nieuport 17
1.3. Nieuport 27
1.4. Nieuport 28
2. 개발
2.1. 뉴포르사의 항공기 개발과 이런 저런 이야기.
2.2. 뉴포르 전투기의 시작
2.2.1. 뉴포르 10
2.2.2. 뉴포르 11(Nieuport 11)
2.2.3. 뉴포르 17(Nieuport 17)
2.2.4. 뉴포르 24(Nieuport 24)와 뉴포르 27(Nieuport 27)
2.2.5. 뉴포르 28(Nieuport 28)
3. 전장에선?
4. 알려진 에이스 파일럿들


1. 성능



1.1. Nieuport 11


최고 속도 : 97 mph (156km/h)
비행 반경 : 205 miles (330km)
실용 상승 한도 : 15,090 ft (4,600 m)
상승률 : 고도 3,000m 까지 상승하는데 15분

1.2. Nieuport 17


최고 속도 : 110 mph (177km/h) 고도 2000m 기준
비행 시간 : 1.75 시간
실용 상승 한도 : 17,390 ft (5,300 m)
상승률 : 고도 3,000m 까지 상승하는데 11.5분

1.3. Nieuport 27


최고 속도 : 116 mph (187km/h)
실용 상승 한도 : 18,200 ft (5,550 m)
상승률 : 고도 5,000m 까지 상승하는데 22분

1.4. Nieuport 28


최고 속도 : 122 mph (196km/h)
비행 반경 : 180 miles (288km)
실용 상승 한도 : 17,390 ft (5,300 m)
상승률 : 고도 3,000m 까지 상승하는데 11.5분

2. 개발



2.1. 뉴포르사의 항공기 개발과 이런 저런 이야기.


1902년 프랑스의 뉴포르-뒤플레(Nieport-duplex) 사는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지만 1909년에 회사명을 Société Générale d'Aéro-locomotion로 바꾸면서 항공 산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항공 산업에 뛰어 들면서 야심차게 만든 첫 번째 항공기는 홍수 때문에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곧 두 번째 항공기를 개발한다.
두 번째로 개발한 항공기는 현대 항공기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항공기의 꼬리 부분이 양력에 의해 떠오르지 않게하는 방식의 꼬리 날개를 설계해서 수평 비행능력을 안정시켰고 프로펠러 후류로 부터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해 동체가 파일럿 주변을 애워싸는 형태의 동체 디자인을 사용하는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Société Générale d'Aéro-locomotion사는 1911년이 되자 회사 명을 Nieuport et Deplante로 바꾸면서 아예 항공기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로 변했다. 그러나 뉴포르의 형제들 중 에두아르(Edouard)가 비행중 사고로 죽는 사건이 생기면서 항공 개발의 유명한 후원자였던 앙리 도이치 드라뫼르테(Henri Deutsch de la Meurthe)가 회사를 맡아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회사명이 또 Société Anonyme des Établissements Nieuport로 바뀌는 등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기존에 개발하던 항공기는 계속 개발되었다.
이듬해인 1912년 수석 디자이너이자 둘째였던 샤를(Charles)도 항공 사고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의 빈자리는 스위스 출신 기술자인 프란츠 슈나이더(Franz Schneider)가 수석 디자이너로 뉴포르사에 들어와 항공기 개발을 지속했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1913년 말에 뉴포르 보다 더 유명했던 독일의 L.V.G.사[2]로 회사를 옮겼다.
슈나이더가 퇴사하고 나서 1914년 1월에 귀스타브 들라주(Gustave Delage)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는데 들라주는 경주용 일엽반기[3]의 개발을 시작했으며 들라주가 만든 이 경주용 비행기가 공중전사의 한켠을 당당히 차지하게될줄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2.2. 뉴포르 전투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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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를 보면 엔진 카울링이 말굽 모양처럼 아랫부분이 개방되어있는데 냉각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에 엔진의 열을 식히고자 사용했던 방법이다.[4]

2.2.1. 뉴포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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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들라주가 첫 번째로 개발한 비행기인 뉴포르 10 복엽기. 이 비행기를 계기로 뉴포르사는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14년 1월 Société Anonyme des Etablissements Nieuport사의 들라주는 1914년 고든 베넷 경기(Gordon Bennett trophy race)에 사용할 경주용 비행기를 야심차게 개발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고든 베넷 경기는 취소되어 버린다. 때문에 들라주는 레이싱 용으로 개발하던 항공기를 군용으로 사용할 2인승 비행기로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이 항공기가 바로 뉴포르 전투기의 전신인 뉴포르 10 정찰기였다.
뉴포르 10 정찰기와 이후에 만들어지는 뉴포르 시리즈의 전투기들은 아랫 날개가 윗 날개 보다 훨씬 작은 일엽반기 형태로 제작된 덕분에 기동성은 꽤 좋았지만, 날개를 지탱하는 지지대의 모양이 V자 모양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날개의 내구성이 빈약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때문에 들라쥬는 날개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 추가로 날개 사이를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시켜서 내구력을 향상시켰는데, 가느다란 와이어를 사용한 덕분에 무게가 많이 증가하지 않았고, 조종사의 시야도 방해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 이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레이싱용으로 개발되던 비행기를 2인승 항공기로 변경하다 보니 크기가 커진것은 물론이고 기체의 총 중량도 함께 증가했기 때문에 기존에 사용되던 엔진이 제출력을 못내는 문제점이 생겼다. 때문에 뉴포르 10 정찰기를 운용한 비행대대의 정비공들은 무게를 줄이고자 조종석의 앞 부분을 덮어버리는 간단한 개조를 가하여 1인승 복엽기로 운용하곤 했는데 간혹가다 윗 날개의 중앙에 한 정의 루이스 경기관총을 장착해서 전투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군용 정찰기로 개발되어서 임무를 수행한 뉴포르 10 정찰기는 2인승 정찰기의 역할 이외에도 1인승 전투기로서도 활약할 가능성을 보여준 덕분에 이후에 개발되는 후계기들도 두 가지 계열로 나눠져서 개발되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2인승 정찰기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뉴포르 12 정찰기는 기체 크기를 좀 더 키우면서 엔진 출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반대로 뉴포르 11 전투기는 뉴포르 10의 사이즈를 작게 줄여서 무게를 줄이고, 기동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된다.
뉴포르 10과 12는 영국 육군 항공대(Royal Flying Corps)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2.2.2. 뉴포르 11(Nieupor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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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DH.2 전투기와 함께 포커의 징벌을 끝낸 전투기. 기체에 그려진 붉은 수탉은 프랑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뉴포르 11 전투기는 뉴포르 10의 디자인에서 크기만 줄였기 때문에 외형상의 차이는 별로없고 이런 이유 때문에 뉴포르 10의 아기(Bébé)라고 불리기도 했다. 무장 또한 뉴포르 10에서 그랬듯이 날개 위에 루이스 기관총을 장착했다.
날개 위에 장착된 기관총은 복잡하게 구동되는 싱크로나이즈 기어가 없어도 비행기의 전방으로 사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만약 총알이 걸리거나 탄창을 갈아 끼워야 하는 상황에선 굉장히 불편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문제는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의 포스터 병장이 개발한 포스터 마운팅(Foster mounting)이란 장치로 위와 같은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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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마운팅의 사진. 기관총이 특수한 레일에 장착되어있기 때문에 조종사가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 기관총이 레일을 따라 내려왔다. 영국의 유명한 에이스 파일럿인 앨버트 볼은 이 장치로 적기를 많이 격추 시켰는데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적기가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적기의 배면 아래로 몰래 날아간다. 그리고 기관총을 잡아당기면 기관총이 하늘을 향하게 되는데 이 때 발포해서 적기의 배면을 벌집으로 만든것 적 조종사는 자기가 왜 격추당했는지도 몰랐다.
뉴포르 11 전투기는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는데 프랑스 공군과 영국 해군 항공대, 네덜란드 공군, 벨기에, 러시아, 이탈리아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마키(Macchi)사는 646대의 뉴포르 11을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했다.
1916년에는 뉴포르 11의 기체에 110 마력(92 kW)의 Le Rhône 9J 로터리 엔진을 장착하여 출력을 강화시킨 뉴포르 16이 등장했는데 외관상의 주 차이점은 말굽 모양의 카울링이 커졌으며 간혹 조종석의 머리 받침대가 유선형으로 바뀐것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연합군도 싱크로나이즈 기어를 개발하면서 싱크로나이즈로 작동되는 빅커스 기관총이 기수에 장착되었지만 무거운 빅커스 기관총이 장착되자 안그래도 무거웠던 9J엔진이 더 무거워 지는 결과가 생겼고 기수가 너무 무거워짐으로 인해 뉴포르 16의 기동력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2.2.3. 뉴포르 17(Nieuport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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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뉘게세의 뉴포르 17 전투기. 싱크로 나이즈 기어를 사용한 빅커스 기관총이 윗날개 아래에 배치된 걸 확인할 수 있다. 뉘게세의 마스코트에는 검은색 하트안에 해적 문양과 두 개의 초 사이에 있는 관이 그려져있는데 이를 "죽음의 기병"이라고 불렀다.
뉴포르 11보다 가벼워지고 크기가 커진 뉴포르 17전투기는 처음에 110 마력의 (82 kW) Le Rhône 9J 로터리 엔진을 사용했지만 나중에 130 마력으로 더 강력해진 엔진이 사용되면서 기동력과 상승율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엔진 카울링의 모양도 바뀌었는데 예전의 말굽 모양의 카울링 대신 엔진을 완전히 덮는 형태의 카울링으로 바뀌었다. 강화된 엔진 덕택에 예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생겨났는데 고속으로 하강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면서 아랫 날개가 견디질 못하고 부러져 버리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독일의 명 전투기인 알바트로스 전투기도 많이 겪었던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뉴포르 전투기 처럼 기동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일엽반기 날개의 형태와 V자 모양의 날개 지지대를 사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아래 날개가 고속에서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견디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랫 날개가 부러지는 상황은 일엽반기 날개 형태를 선택한이상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뉴포르 전투기를 조종한 조종사들과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조종한 조종사들은 급강하 비행을 피해야했다.
뉴포르 17 전투기의 초기 무장은 날개 위에 설치된 한 정의 루이스 기관총이었지만 싱크로나이즈 기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 정의 빅커스 기관총이 날개 아래로 재배치 되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사용한 대부분의 뉴포르 전투기들은 싱크로나이즈 기어로 작동하는 빅커스 기관총 대신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인 날개 위에 루이스 기관총을 장착한 무장을 주로 사용했다고 하며 이외의 몇몇 조종사들은 자신의 뉴포르 17 전투기의 무장을 두 정의 기관총으로 개조하기도 했는데, 화력이 좋아진 대신 기체 중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기동성이 엄청나게 떨어졌다고 한다.
강력해진 엔진 덕분에 속도가 빨라지고 기동성이 더 좋아진 뉴포르 17 전투기였지만 독일에서 새로 개발한 알바트로스 전투기가 등장하는 바람에 성능적으로 우세를 가지기가 힘들어졌으며 새롭게 개발되는 스패드 S.7 전투기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한다.

2.2.4. 뉴포르 24(Nieuport 24)와 뉴포르 27(Nieuport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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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페예트 비행단[7]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윌리엄 웰먼(William Wellman) 상등병의 뉴포르 24 전투기. 가장 큰 변경점은 동체 디자인이 유선형으로 변경되었다. 동체에 그려진 검은 고양이는 N.87 비행대대의 상징이다.
독일군의 신형 전투기인 알바트로스 전투기에 의해서 삽시간에 구식이 되어버린 뉴포르 17 전투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뉴포르 24는 이전 시리즈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각진 모양이었던 날개와 동체는 공기역학적으로 알맞게 유선형의 형태로 바뀌었으며 수직 꼬리날개는 예전처럼 전부 가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분만 가동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꼬리부분을 지지하는 Tailskid의 내부에는 스프링이 장착되어서 외형적으로 깔끔해 졌다고도 한다.
새롭게 디자인된 신형 뉴포르 전투기는 곧 양산에 들어갔지만 해당 전투기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비행에서 새롭게 디자인된 수직 꼬리 날개가 구조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키는걸 발견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뒤늦게 발견한 뉴포르사는 임시방편으로 뉴포르 17에서 사용되었던 테일스키드와 꼬리날개, 방향타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해결했고 하며 이 수정된 버전을 Nieuport 24bis라고 불렀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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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부분이 수정된 뉴포르 24bis. 이전 시리즈에서 사용되었던 형태로 돌아갔다. 24bis는 영국 해군 항공대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기체의 외형도 크게 개선되었지만 정작 전투기의 심장과도 같은 엔진은 여전히 뉴포르17에서 사용된 130마력의 르 론 로터리 엔진이 사용되었는데 이 때문인지 뉴포르 24와 24bis는 뉴포르 17에 비해서 성능이 약간 좋아지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뉴포르 24와 24bis의 무장은 사용한 나라에 따라서 틀렸다. 프랑스는 싱크로나이즈 기어로 작동하는 한 정의 빅커스 기관총을 사용했고 영국은 포스터 마운팅을 이용한 루이스 기관총을 대부분 사용했다.
1917년의 다른 비행기들에 비해 그저 그런 성능을 가진 뉴포르 24 전투기였지만 전선에는 막대한 양의 뉴포르 17 전투기가 교체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고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던 프랑스 공군은 어쩔 수 없이 뉴포르 24와 24bis를 주력 전투기로 채용하게 된다. 1917년 여름이 되자 SPAD사의 SPAD S.7 전투기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뉴포르 24 전투기를 대체해 나갔고 대체된 뉴포르 24 전투기들은 훈련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무장을 제거한 다음에 후방으로 돌려졌으며 생산도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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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부분의 문제를 해결한 뉴포르 27 전투기. 싱크로나이즈 대신 포스터 마운팅으로 무장된 버전이다.
뉴포르 24에서 문제되었던 꼬리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생산된 버전. 그외에는 성능에서나 외형에서나 큰 차이가 없었기에 대부분 고급 비행 훈련 용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엔진 출력이 낮은 110마력이나 120마력의 엔진으로 교체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2.2.5. 뉴포르 28(Nieuport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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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뉴포르 28 전투기. 동체에 그려진 모자는 미국에서 최초로 창설된 94 비행대대의 좌우명인 Hat in the ring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9]
1917년 중반이 되자 뉴포르 17 전투기는 새롭게 등장하는 독일군의 신형 전투기들을 상대하는게 점점 버거워졌다. 이렇게 도태되어가는 17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뉴포르 24는 신형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뉴포르사와 들라쥬는 프랑스의 주력 전투기로 납품된 뉴포르 전투기들이 스패드사에서 만든 신형기인 스패드 S.7로 대체되는 걸 지켜 봐야했다.
그저 높은 기동력을 지녔었던 예전의 공중전 개념과 달리 점점 빨라지고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항공기의 기술 변화에 맞춰 개발 컨셉을 바꾸게 된다. 뉴포르 28은 가볍게 설계되었으며 더 강력해진 엔진을 장착했다. 그리고 예전에 사용되었던 V자 모양의 날개 지지대를 변경하였으며 아랫 날개가 예전보다 커져서 더 이상 일엽반기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또 보조 날개를 아랫 날개에만 설치하는 변경점이 있었으며 이런 변경사항들 덕분에 이전 시리즈들과는 달리 외관상으로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래도 꼬리 날개는 큰 변화 없이 뉴포르 24에서 사용하던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
엔진 성능이 강화되면서 뉴포르 28의 무장도 강화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늘어진 동체 디자인 덕분에 두 정의 기관총을 나란히 배치할 공간이 부족했는데 동체 왼쪽에 비스듬히 장착함으로써 해결했고 뉴포르 전투기는 드디어 두 정의 빅커스 기관총을 표준 무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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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리켄베커의 뉴포르 28 전투기. 두 정의 빅커스 기관총이 기수 왼쪽에 설치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시리즈들과 달리 혁신적인 변화를 거친 뉴포르 28은 조종하기 쉬웠으며 뉴포르 시리즈 답게 기동성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성능은 썩 좋지 않았고 엔진의 신뢰성이 매우 낮았다고 한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동체의 겉 부분을 감싼 혼합 합판이 골치거리였는데 뒷 날개에 사용된 혼합 합판이 부풀어 오르면서 합판의 접합부가 떨어져 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재빠르게 해결되었지만 스패드사의 스패드 전투기로 교체되어 버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1918년 7월 뉴포르 28 전투기는 모두 스패드 전투기로 대체되면서 퇴역하게 된다.
뉴포르 28은 미국에서 최초로 창설된 미육군 비행단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스패드 전투기로 대체 되기 전까지 미국 소속으로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으며 그리스와 스위스에서 소수의 뉴포르 28을 운영하기도 했다.

3. 전장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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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월에 90대의 뉴포르 11 전투기가 프랑스 전선에 배치되었다. 영국의 신형 전투기였던 에어코 DH.2 보다 늦게 배치되었지만 작고 날렵하게 설계된 뉴포르 11 전투기는 포커 아인데커 전투기를 압도하는 성능으로 연합군의 주목을 받았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싱크로나이즈 기어가 없었던 연합군은 뉴포르 11 전투기의 윗 날개에 기관총을 작동하면서 포커 아인데커 전투기와 거의 동등한 무장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으며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뉴포르 11 전투기를 주력전투기로 채용하여 제공권을 장악해 나갔다.
또한 미국인 자원자로 이루어졌던 프랑스의 라파예트 비행단에서 뉴포르 11 전투기를 사용해서 많은 활약을 했으며 이 때 활약했던 미국인들은 훗날 미공군의 초석이 되었다. 전장에 배치되었던 소수의 뉴포르 11 전투기는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임무 외에도 정찰 기구와 비행선을 효과적으로 격추시키기 위해서 공대공 로켓인 르프리외 로켓(Le Prieur rocket)을 운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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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프리외 로켓은 일반적으로 100~150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45도 각도로 하강하며 발사되었는데 비행기의 강하각이 급격할수록 정확도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각 로켓의 점화와 발사가 즉각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기에 조종사들은 로켓이 다 발사될 때까지 경로를 유지해야하는 단점도 있기도 했다. 이런 공대공 로켓의 사용으로 뉴포르 11 전투기는 많은 정찰 기구도 격추시켰지만 제펠린과 같은 비행선을 격추시키지는 못했다고 하며 후에 르프리외 로켓은 기관총의 예광탄과 소이탄이 발전하면서 1918년에는 점점 사용율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1916년 3월에는 뉴포르 17전투기로 빠르게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영국 육군 항공대와 영국 해군 항공대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의 모든 전투 비행대대에도 뉴포르 17 전투기가 배치되면서 명실공히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포커 아인데커 전투기로 제공권을 장악했었던 독일군은 연합군의 새로운 전투기를 상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추락한 뉴포르 17 전투기를 가져가서 Siemens-Schuckert D.I란 전투기를 개발하기도 했다.[10]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뉴포르 17 전투기를 사용하면서 에이스 파일럿이 되는 영광을 얻었는데 뉴포르 17을 타고 유명해진 에이스 파일럿으로는 캐나다인 조종사였던 빌리 비숍과 영국의 앨버트 볼 그리고 프랑스의 샤를 뉘게세가 있었다.
하지만 1917년 독일의 신형 전투기인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가 전선에 나타나자 뉴포르 17은 더이상 독일 전투기들로 부터 우위를 점할 수 없게되었다. 신형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들을 필두로 독일 공군은 1917년 4월 한달 동안 245대의 영국군 항공기를 격추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보여준다. 뉴포르 전투기가 끝냈던 '포커의 징벌'이 알바트로스 전투기로 다시 재현된 순간이었고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이 시기를 빗대어 피의 4월이라고 불렀다.
뉴포르사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기체의 외형을 공기역학적으로 설계하여 성능을 향상시킨 뉴포르 24 전투기와 뉴포르 27 전투기를 내놓았고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새로받은 뉴포르 24전투기를 타고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에게 대적했지만 엔진 출력이 부족하고 화력이 약했던 관계로 대부분의 전투 결과는 뉴포르 전투기들이 일방적으로 격추 당하면서 끝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뉴포르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여전히 이 뉴포르 전투기들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계속 전과를 세워 나갔고 특히 샤를 뉘게세의 경우에는 뉴포르 24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뉴포르의 신형 전투기가 신통치 않은 성능을 보여주었기에 연합군은 뉴포르24 보다 뛰어나고 알바트로스 전투기들과 호각을 다투는 성능을 가진 스패드 S.7 전투기와 솝위드 펍, 솝위드 삼엽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이 전투기들은 수량이 굉장히 적었기에 어쩔 수 없이 뉴포르 24 전투기를 계속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SPAD사의 스패드 S.7전투기의 엔진인 히스파노 수이자 엔진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뉴포르 24 전투기들은 스패드 전투기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영국에서도 S.E.5a 전투기와 솝위드 카멜과 같은 고성능의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뉴포르 전투기들은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비록 전선에서 물러난 뉴포르 24 전투기와 27 전투기들이었지만 무장을 제거한 뒤에 새로운 파일럿들을 훈련시키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전쟁에 뒤늦게 참전한 미국의 조종사들을 훈련시키는데에 많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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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뉴포르사에서는 새롭게 디자인된 '''뉴포르 28''' 전투기를 만들었지만 이미 전선에서는 뛰어난 성능의 스패드 V.13 전투기가 배치된 상황이었고 영국 공군도 SE5a와 같은 고성능의 전투기들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유럽의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뉴포르 28 전투기도 전선에 배치되어 활약할 기회를 얻게된다. 당시 비행기는 서부전선의 전장에서 최초로 군사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외의 국가들은 이렇다할 비행기 조차 없던 실정이었다. 미국 또한 서부전선과는 동떨어져있었기에 당연히 공군이 없었고 전투기 또한 없었기에 전투기를 연합군인 프랑스로 부터 구입해야할 처지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창설된 미육군 항공대는 당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스패드 전투기를 요구 하지만 스패드에 사용된 히스파노 수이자 엔진이 부족한 상태였던 프랑스는 마침 새롭게 개발된 뉴포르 28 전투기를 제시하게 된다. 미육군 항공대는 별수없이 뉴포르28 전투기를 구입해서 미육군 항공대의 추적기[11]로 운영했고 뉴포르28 전투기는 24나 27과 달리 전장에서 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활약할 수 있었다.
미육군 항공대는 뉴포르 28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면서 독일군을 격파해 나가기 시작했고 1차대전 미국 최고의 격추왕이었던 에디 리켄베커와 같은 많은 에이스 파일럿들을 배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뉴포르 28 전투기는 여전히 아쉬운 성능을 보여주었고 이외에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하면서 신뢰성을 잃어갔다. 결국 미육군 항공대는 뉴포르28 대신 스패드 전투기를 주력으로 삼기위해 점차적으로 뉴포르28 전투기를 대체해 나갔고 1918년 7월에는 스패드 전투기로 완전 무장하게 되면서 1차대전의 마지막 뉴포르 전투기는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비록 전쟁 중후반기 부터는 신형기들과의 성능 격차를 줄이지 못해 사라져갔지만 뉴포르 전투기는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는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하는 등 진정한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로 널리 사용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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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8일 아침 1차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파리의 퍼레이드에서 샤를 고드프루아(Charles Godefroy)가 조종하는 뉴포르 전투기가 파리 개선문 사이를 통과하는 멋진 쇼를 끝으로 뉴포르 전투기는 1차대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4. 알려진 에이스 파일럿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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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코잘코프(Kozakov (Kazakoff), Alexander Alexandrovich) : 러시아 제국 공군 소속. 총 20대 격추.
-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로이코(Ivan Alexandrovich Loiko) : 러시아 제국 공군 소속. 총 6대 격추.
-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스트리셰스키(Vladimir Ivanovich Strizhesky) : 러시아 제국 공군 소속. 총 7대 격추.
- 다시 파울리스 힐턴(D'Arcy Fowlis Hilton)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8대 격추. (캐나다인)
- 앨런 덩컨 벨어빙(Alan Duncan Bell-Irving)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7대 격추. (캐나다인)
- 아치볼드 윌리엄 뷰캐넌 밀러(Archibald William Buchanan Miller)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6대 격추. (스코틀랜드인)
- 윌리엄 찰스 캠벨(William Charles Campbell)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23대 격추. (스코틀랜드인)
- 앨버트 볼(Albert Ball)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44대 격추.
- 필립 플레처 풀러드(Philip Fletcher Fullard) :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총 40대 격추.
- 더글러스 캠벨(Douglas Campbell) :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총 6대 격추.
- 에드워드 "에디" 버넌 리컨배커(Edward "Eddie" Vernon Rickenbacker) :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총 26대 격추 기록중 19대는 스패드 전투기로 달성.

[1] 프랑스 파일럿이었으며 격추기록 43대로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격추수가 많다.[2] 이 회사가 개발한 항공기 중 하나가 런던에 위치한 빅토리아 역에 폭탄을 떨구었다.[3] sesquiplane : 복엽 비행기의 일종으로, 아랫날개가 윗 날개의 절반 이하의 면적을 가진 것.[4] 당시 독일 전투기였던 포커 아인데커포커 Dr.1도 이 방식을 사용하였다. 뉴포르의 경우 뉴포르 17 부터는 완전히 덮는 방식으로 변경[5] 체계적인 항공관제도 없던 시절, 어디 불시착이라도 할 경우 정비 인력을 구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당장 어린왕자의 화자인 비행사도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우편배달기 조종사이다. 비행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정비 기술을 쌓을 필요가 차고 넘쳤다.[6] 아직 최신 기술이었던 자동차 운전사 또한 어느 정도의 정비 지식을 쌓는 것이 요구되었다. 어느 들판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춰설지 모르기 때문에...[7] 전쟁에 자원입대한 미국인들을 모아서 만든 프랑스 비행단[8] 24에서 새로 채택 되었던 꼬리 날개 디자인은 뉴포르 27에서야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한다.[9] Throw your hat in the ring : 대회나 경기에 참가하겠다는 뜻의 관용어이다. 1차대전을 지켜 보기만 했던 미국이 참전했다는 뜻. [10] 그러나 복잡한 엔진 구동방식 때문에 너무 늦게 개발되었고 전장에는 이미 뛰어난 성능을 지닌 새로운 전투기들이 날아다녔기 때문에 소수만 생산되었다.[11] 미국은 2차대전 때까지 전투기(fighter)라는 단어 대신에 추적기(pursui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미공군이 창설되면서 부터 전투기라는 단어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