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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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능(Albatros D.V 기준)
Die Albatros D.I.
- 최고 속도 : 186 km/h (116 mph)
- 비행 시간 : 2 시간
- 실용 상승 한도 : 5,700 m (18,701 ft)
- 상승률 : 고도 1,000 m (3,281 ft) 까지 약 4분.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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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리히트호펜의 Albatros D.III 전투기를 배경으로 협상군의 에어코 DH.2 전투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프랑스의 신형 전투기였던 뉴포르 전투기의 성능에 충격을 받은 독일 제국군이 서부전선의 제공권을 되찾고자 만들어낸 복엽 전투기로, 알바트로스 새의 이름을 따왔다. 1차대전이 끝날 때 까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날렵한 외형에서 보듯이 속도가 빨랐으며 두 정의 MG08 스팬다우 기관총이 표준으로 장착되었던 덕분에 당시 최강의 화력을 가졌었다. 게다가 이전에 개발된 전투기들은 단순 비행을 하기 위한 용도나 레이싱용으로 만들어졌던 항공기에 무장을 달아서 전투기로 사용했었던 반면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적기를 제압하는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었기에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성능으로 협상군 전투기들을 도륙했었다.
이 전투기 때문에 영국 공군은 1917년 4월 한 달동안 245대의 항공기를 잃었으며, 이중 211명의 조종사는 죽거나 행방 불명되었고, 108명의 조종사들은 포로로 잡혔다. 이에 반해서 독일군의 손실은 66대의 항공기 뿐으로 알바트로스 전투기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협상국의 추락한 전투기는 금방 다시 보급 받을 수 있었지만 죽거나 부상당한 조종사들을 보충할 인력은 고갈되다 시피했기에 협상군 조종사들은 이 무시무시한 살육의 기간을 '''피의 4월'''(Bloody April)이라고 불렀다.
3.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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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포스의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
1916년 가을,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포커 아인데커 전투기는 협상국의 신형 전투기인 에어코 DH.2 전투기와 뉴포르 11 전투기에게 무차별적으로 격추당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독일 공군은 협상군의 전투기들을 능가하는 새로운 전투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독일 공군은 아인데커 전투기를 대체할 만한 전투기를 찾아다녔는데 할버스타트 항공사나 포커 항공사 그리고 L.F.G사와 알바트로스 항공사 등등 수많은 항공사에서 만들어낸 전투기들이 있었지만 모두 같은 시간에 개발이 완료된 것도 아니었고 신뢰성 문제로 선뜻 대량으로 주문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각 항공사가 만들어낸 전투기들을 소수만 구입한 후, 전장에 배치시켜서 임무도 수행하고 성능 테스트도 하는 1석 2조의 방식을 사용했다. 알바트로스 항공사의 Robert Thelen과 R. Schubert 그리고 Gnädig가 공동으로 개발한 '''알바트로스 D.I''' 전투기 또한 이런 식으로 실전 데뷔를 했는데 독일군이 요청한 지 두 달 후인 1916년 8월에 소수의 알바트로스 D.I전투기들이 처음으로 전방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알바트로스 D.I 전투기는 당시에 보편적으로 제작되던 항공기 제작 방식과 꽤 달랐는데 당시에 보편적으로 제작되던 항공기들은 주로 박스 모양으로 만들어진 뼈대를 얇은 천으로 감싸는 방식인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구성이 약하며 유선형으로 제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반면에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동체의 뼈대를 여러개의 얇은 합판들로 뒤덮어 동체의 외피와 내부 뼈대가 같이 하중을 견디는 세미 모노코크 방식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튼튼하고 기체의 외형을 매끄럽게 만들 수 있었기에 공기역학적으로 알맞은 외형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동체 겉부분의 외피로만 기체의 하중을 견디는 모노코크 방식보다 제작 비용이 적은 이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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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포르 전투기에서 채택된 트러스 구조 방식의 동체. 설계와 제작이 단순하지만 유선형으로 만들기가 힘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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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전투기에서 채택된 세미 모노코크 방식의 동체.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진 외피와 내부 골격이 기체 하중을 견디기 때문에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진 항공기 보다 튼튼하며, 동체의 모양을 유선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현대에 만들어지는 항공기들은 대부분 세미 모노코크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동체의 겉 부분이 나무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무거워져서 속도가 느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합판의 무게가 그리 무거운것도 아니었으며 110kW (150 마력) 출력의 Benz Bz.III 엔진과 6개의 실린더로 작동하는120kW (160마력) 출력의 Mercedes D.III 수냉식 엔진들이 사용된 덕분에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협상군 측의 전투기들 보다 훨씬 빠르고, 두 정의 스팬다우 기관총을 표준 무장으로 장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력면에서도 월등히 뛰어날 수 있었다.[1]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유일한 약점은 날개의 하중이 비교적 컸기 때문에 협상군의 뉴포르 전투기 보다 기동성이 둔하다는 것이었지만 빠른 속도와 강력한 화력을 지녔던 덕분에 교전 상황에서 항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1차대전 당시에 사용된 전투기들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속도와 고도를 활용한 전투는 없고 오직 좁은 선회각을 지닌 전투기들이 적기의 꼬리를 물기 위해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이런 편견과 달리 1차대전에서 공중전의 판도를 바꾼 전투기들은 대부분 속도가 적기 보다 월등히 빨랐다.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공중전의 초창기부터 빠른 속도를 가진 전투기가 적기를 제압하기 좋다는 걸 증명한 셈이었고 엔진 출력이 떨어졌던 초창기의 협상군 전투기들은 높은 고도에서 하강해오는 알바트로스 전투기에게 맞설 방법이 거의 없었다.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알바트로스 D.I 전투기는 독일 공군이 성능 테스트를 할겸 소수만 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50대만 생산되는데 그쳤지만 조종사들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던 덕분에 조종사의 시야를 개선시킨 '''D.II'''가 개발되자 독일 공군은 즉각 D.II 전투기를 주력으로 삼기 위해 대량으로 주문하기 시작한다. D.II 전투기와 D.I 전투기의 차이점은 날개와 동체가 연결되는 지지대의 위치를 변경하고 윗 날개의 위치를 약간 앞쪽으로 재배치하면서 날개의 높이를 36cm 정도 내리는 간단한 개수 뿐이었는데 덕분에 조종사의 시야가 크게 개선되었다. 조종사의 시야가 좋아진것 외에는 기본적인 성능의 차이가 전혀 없었지만 워낙 성능이 좋다 보니 조종사들은 D.II 전투기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고 독일 공군은 1916년 9월에 알바트로스 D.II 전투기를 100대 주문해서 빼았겼던 제공권을 되찾고자 한다.
하지만 D.II 버전이 한참 양산되고 있던 1916년 11월에는 동체 양쪽에 장착되어 있던 Windhoff 사의 라디에이터가 말썽을 일으키는게 발견되어서 라디에이터를 교체하는 작업을 거치기도 했다. Windhoff사의 라디에이터는 저고도에서 엔진의 크랭크실을 과냉각 시키는 문제점이 있었으며 만약 라디에이터가 피격될 경우에는 냉각수가 전부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에 엔진이 망가지기 쉬웠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나중에 생산된 D.II 전투기들은 모두 티베스(Teves) 사와 브라운(Braun) 사에서 만든 라디에이터로 모두 교체되었는데 이 회사들에서 만들어진 라디에이터들은 날개 모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라디에이터의 위치가 날개의 가운데로 변경되기도 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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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인 Rise of Flight의 스크린샷. 좌측의 '''D.II 초기형'''은 라디에이터가 귀마개 마냥 동체 양옆에 배치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중앙에 보이는 D.II 전투기의 '''후기형'''은 라디에이터가 날개 위 가운데 달려있는걸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측의 모습은 '''D.III 전투기'''의 라디에이터인데 피격시 쏟아져 나오는 냉각수에 화상을 입는 일이 많아지자 라디에이터를 날개의 우측으로 이동시킨 모습이다.
알바트로스 D.II 전투기는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에파그(Oeffag) 사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생산된 버전은 O'''effag Va.53''이라고 불렸다. Oeffag Va.53 전투기는 D.III가 개발되기 전까지 총 16대가 만들어졌는데 출력이 강화된 138 kW (185 마력)의 오스트로-다임러(Austro-Daimler)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티베스(Teves) 사와 브라운(Braun) 사에서 개발한 라디에이터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한편, 전쟁이 지속되면서 협상국의 주력 전투기인 뉴포르 전투기 또한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잡기 위해서 계속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성능을 더 개선시킨 '''D.III 전투기'''를 개발한다. D.III 역시 D.II 전투기와 같은 설계 방식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지만 127 kW (170 마력)으로 강화된 Mercedes D.IIIa 수냉식 엔진이 장착된 덕분에 최고속도가 증가했으며 기동성을 향상시켜 달라는 독일 공군의 요청에 따라 날개의 모양을 일엽반기의 형태로 바꾸는 등 외형적으로도 많이 변하면서 성능 또한 크게 향상되었다.
일엽반기의 날개 형태를 채택하자 D.III 전투기의 기동력과 상승력이 크게 향상되는 동시에 조종사들의 시야도 예전 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비행중 스톨에 빠질 경우엔 조종간을 앞쪽으로 미는 것만으로도 스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기에 독일 조종사들은 D.III 전투기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또 아랫 날개가 윗 날개 크기의 반도 안되게 작아지면서 날개의 지지대가 뉴포르 전추기 처럼 V 모양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영국 조종사들은 D.III 전투기의 지지대를 보곤 '''V-strutter'''라고 부르며 피아식별을 위한 구분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동력이 좋아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지대의 지지점이 축소되자 날개의 내구성이 약해지는 문제점이 생겼기 때문에 독일군 조종사들은 협상군 전투기를 급습할 때 급강하 기동으로 꽂아내리는 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고속으로 하강하는 것 또한 자제해야 했다.[3]
이 외에도 라디에이터의 위치가 다시 변경되었는데 날개 가운데에 장착되어있던 라디에이터가 피탄될 경우 뜨거운 냉각수가 조종사에게 바로 쏟아져서 심각한 화상을 입혔기 때문에 냉각수가 쏟아져 나와도 조종사가 뒤집어 쓰지 않도록 라디에이터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개선 사항도 있었다.
알바트로스 D.III의 시제기는 1916년 7월 말 부터 8월 초에 만들어 졌는데 날개의 내구력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성능이 훨씬 좋아졌기 때문에 독일공군은 1916년 11월 9월에 400대의 D.III를 주문했으며 1917년 3월엔 50대의 D.III 전투기를 추가로 주문하는 등 굉장히 많은 수의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를 운용하기 시작한다.
D.III 전투기 또한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에파그(Oeffag) 사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는데 독일에서 생산된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비교해 보면 외형적으로나 성능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전투기로 분류될 정도로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다. 오에파그 사의 D.III 전투기들은 메르세데스 D.IIIa 엔진이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스트로-다임러 사에서 만든 여러 엔진들을 사용했는데, 각각 138, 149, 168 kw (185, 200, 225 마력) 출력의 강력한 엔진들이 오에파그 사에서 생산한 D.III 전투기들의 각 버전에 맞게 장착되었으며 이 강력한 엔진들 덕분에 오에파그 사의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은 메르세데스 D.IIIa 엔진을 장착한 알바트로스보다 훨씬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기수에 노출되어 있는 실린더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린더 전체를 뒤덮는 엔진 카울링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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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전투기의 뾰족한 스피너를 떼어 버리고 외부에 노출되어 있던 실린더들을 뒤덮은 모습의 '''오에파그 153''' 전투기. 오에파그 153 전투기에는 138 kw (200 마력)의 출력을 내는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조종사들은 종종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프로펠러 스피너(프로펠러 앞에 뾰족하게 튀어 나온 부분)를 떼어버리기도 했는데 비행중에 스피너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에파그 사는 기존에 사용되던 스피너를 제거하고 기수 끝 부분을 둥글게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를 독일에서 실험해 본 결과 최고 속도가 14 km/h나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에파그 사의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은 스팬다우 기관총 대신 자국의 슈바르츠로즈(Schwarzlose) 기관총이 사용됐다. 독일의 스팬다우 LMG08/15 기관총은 7.92mm 탄을 사용한 반면에 슈바르츠로즈 기관총은 보다 두꺼운 8mm 탄이 사용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기관총이 동체 내부에 파묻히는 방식으로 장착되었다.[4] 8mm 탄을 사용한 덕분에 화력이 더 강력해졌지만 싱크로나이즈 기어[5] 와 맞물리면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했는데 동조 장치와 연결되는 바람에 연사속도가 느려지는 문제점이 그중 하나였다. 때문에 '''오에파그 253''' 전투기(168 kW (225 마력)의 출력을 내는 엔진이 장착됨)에서는 다른 전투기들 처럼 기관총을 동체 밖으로 재배치되었다.
또한 알바트로스 D.III에서 채택된 일엽반기의 날개 형태 때문에 날개의 내구력이 약해진 걸 해결하고자 오에파그 사의 기술자들은 날개의 지지대를 더 두꺼운 소재로 바꾸었던 덕분에 고속에서도 날개가 부러지는 일이 적어졌다고 한다. 외형적으로나 성능적으로나 엄청나게 바뀌어 버린 오에파그 사의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은 독일에서 개발되는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후속기들과는 개별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7년 5월 부터 휴전협상 때까지 총 526 대의 오에파그(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여 주력 전투기로 운용했다.
1917년 4월이 되자 독일 공군은 D.III 전투기의 성능을 향상시킨 전투기를 요구했는데.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독일군이 요청한 4월이 지나가기도 전에 D.III의 성능을 향상시킨 '''D.V'''의 시제기를 만들어 낸다. D.V 전투기 역시 D.III의 설계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Oeffag 사에서 만든 전투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진 엔진들이 장착되었던 반면 알바트로스 사에서 만든 후속기인 D.V 전투기는 D.III전투기에서 사용되었던 메르세데스 D.IIIa 엔진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에 D.V 전투기는 총 중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는데 D.III 전투기 보다 32kg이나 더 가벼워졌다고 하며 동체의 모양도 예전보다 곡선을 더 많이 사용해서 공기역학적으로 이점을 가지게끔 설계되었다. 꼬리 날개 부분도 바뀌었는데 초기에는 D.III와 같은 모양을 사용했지만 실험적으로 사용되던 방향타를 정식으로 채택하게 되면서 스피너와 방향타가 예전보다 더 커지기도 했다. 그리고 윗 날개의 위치가 동체와 좀 더 가깝게 재배치 되었고, 동체와 아랫 날개를 연결해주던 혹 모양의 연결 부분이 사라지는 변경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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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 D.III전투기의 그림과 이 그림의 아랫 날개 뿌리 부분을 살펴 보면 아랫 날개와 동체가 연결되는 툭 튀어나온 부분이 없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동체의 모양 또한 더 날렵하게 변한걸 알 수 있다.
날개 모양은 D.III와 동일한 일엽반기의 형태가 계속 사용되었지만 보조날개를 조종하는 케이블이 개선되었다고 하며 대부분의 케이블들이 윗 날개에 연결되는 방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 외에 조종사의 머리 받침대가 더 커지는 변경 사항도 있었는데 크기가 커져버린 머리 받침대가 시야를 방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이 머리 받침대를 제거했다고 한다.
D.V 전투기는 개발 과정도 엄청나게 빨랐지만 전선에 배치되는 과정도 정말 빨랐다. 1917년 4월에 개발되어서 1917년 5월에 실전배치되었는데 개발기간이 너무 짧았던 탓인지 전선의 조종사들은 D.III를 탔을 때와 달리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랫 날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예전보다 더 자주 발생되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었지만[6] 독일 조종사들이 D.V 전투기에게 실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D.III 전투기 보다 아주 약간 나아진 성능 때문이었다. 새로운 전투기를 받아 본 조종사들은 날개의 내구력이 약화된 D.V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성능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비행이 안전하기라도 한 D.III를 요구하는 조종사들이 늘어만 갔다. 특히 D.III 전투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폰리히트호펜의 경우에는 D.V 전투기의 성능에 대해서 큰 불만을 토로했는데 리히트호펜이 1917년 7월에 쓴 편지에는 "이 터무니 없이 열악하고 쓸모가 없는 전투기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라며 D.V 전투기에 대한 느낌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적국이었던 영국군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알바트로스 D.V 전투기를 포획한 다음 성능을 테스트 해본 영국군은 D.III 때와는 달리 기동력도 굼뜬 데다가 조종간의 반응도 굉장히 무겁게 반응했기 때문에 조종하는것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전투기라고 평가했다.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이런 소문을 듣고 날개의 내구성을 테스트 해본 결과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약해진 걸 알 수 있었는데 심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 튼튼한 윗 날개가 부러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날개의 원자재를 더 튼튼하고 두꺼운 자재로 바꾸고 비행기의 골격도 강화시키는 등 전체적으로 내구성을 강화한 D.Va를 만들었지만 기체 구조를 강화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게가 증가했기 때문에 D.Va는 D.III 보다 23kg이나 더 무거워져 버렸다. 게다가 애초에 해결하려던 구조적 결함을 완전히 고치지도 못했다.
D.III 전투기를 경량화해서 성능을 향상 시키려 했던 D.V였지만 D.Va로 개선시키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무게가 증가했기 때문에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이제서야 130 kW (180 마력)로 출력이 강화된 메르세데스 D.IIIaü 엔진을 사용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D.III에서 사용했던 보조날개의 조종 케이블 방식으로 되돌아가 조종 반응을 예전처럼 향상시켰다고 한다. 이외에도 D.III의 날개와 교체가 가능하도록 수정이 가해졌고 몇몇 D.V 전투기들은 대각선의 작은 지지대를 추가로 설치해서 날개의 내구성을 높이기도 했다. 엔진을 강화시키고 날개의 내구성도 강화시켰으며 조종성 또한 더욱 개선시킨 D.Va 전투기였지만 프랑스에서 새롭게 개발한 스패드 전투기의 등장으로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더이상 속도의 우위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영국에서 개발된 솝위드 카멜 전투기 또한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비슷한 속도를 가진데다가 기동력 마저 능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그저그런 수준의 전투기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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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인 Rise of Flight의 알바트로스 D.Va 전투기의 모습. 마우스 포인터 쪽을 보면 작은 지지대가 추가된것을 알 수 있는데 지지대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 급강하 기동은 여전히 피해야 했다.
독일 공군은 포커 삼엽기와 '''Pfalz D.III''' 등등 여러 전투기들을 같이 사용하면서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대체하려 했지만 이 전투기들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1차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기인 "Fokker Dr. 1" 포커 삼엽기는 기동력은 굉장히 뛰어났었지만 알바트로스 D.V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구조적 결함이 있는 불안정한 비행기였으며 속도도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비슷한 정도였기 때문에 나날이 고속화되어가는 협상군의 전투기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팔츠 D.III 전투기는 알바트로스 전투기와는 달리 급강하가 가능한 기체였지만 최고 속도가 알바트로스 전투기 보다 느린 전투기였기 때문에 그저 그런 성능을 보여주는데 그쳤다. 알바트로스 항공사도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D.Va 전투기의 후속 모델들을 계속 개발하는 등 상당히 애썼지만 이후에 개발된 전투기들 모두 만족할 만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던 탓에 시제기들만 만들어지고 개발이 중단되는 악순환을 계속 겪게된다.
대체 기종을 찾지 못했던 독일 공군은 알바트로스 D.Va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1917년 8월에 262대의 D.Va 전투기를 주문해서 운용하기 시작했으며 9월과 10월에는 추가로 각각 250대와 550대의 D.Va 전투기를 구입해서 운용하게 된다.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은 1차대전 최강의 전투기들중 하나인 포커 '''D.VIIs''' 전투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포커 D.VIIs 전투기는 전쟁이 끝나기 한 달전에야 배치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전쟁이 끝나가는 무렵인 1918년 5월에만 해도 독일 공군은 131대의 D.V 전투기와 928대의 D.Va 전투기를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는 처지였으며 독일이 휴전협정서에 서명하는 11월 달까지 독일군의 방공망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주력 전투기로 종전을 맞이했다.
4. 전선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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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스 공세가 시작되기전의 1917년 3월 Douai 비행장에 주기되어있는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들.
1916년 서부전선에 새롭게 등장한 협상국의 에어코 DH.2 전투기와 뉴포르 11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알바트로스 D.I''' 전투기는 1916년 11월에 Jasta 6 (비행대대)에 처음으로 배치됐으며 곧 포커 아인데커 전투기와 '''Halberstadt D''' 전투기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알바트로스 D.I 전투기는 50대만 선행 양산됐지만 협상국의 주력 전투기들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녔던 탓에 독일 공군의 주목을 받았고 간단한 개수를 통해서 시야를 개선시킨 '''D.II'''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평가된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강력한 엔진과 튼튼한 동체 디자인 덕분에 상승율과 속도 모두 협상군 전투기 보다 뛰어났던 반면 기동력은 협상군 전투기들 보다 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뉴포르 전투기의 기동성을 잘 알고 있던 독일군 조종사들은 협상군 전투기와 선회전을 벌이기 보단 빠른 강하 속도를 이용한 일격이탈 전법을 주로 사용했기에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둔한 기동력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바트로스 전투기 조종사들은 일격이탈 전법을 사용하면서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는데 공중전술의 기초를 다져놓은 오스발트 뵐케의 영향이 컸다. 독일군 조종사들은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뛰어난 상승력을 이용해서 항상 적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매복했고 적기들이 태양을 등지고 숨어있는 자신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래로 지나가는 순간 특유의 하강속도를 이용해서 적기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은 뒤에 다시 높은 고도로 도망치는 전술들을 구사하며 제공권을 장악해 나갔다. 대다수의 협상군 조종사들은 이 첫번째 기습공격으로 격추당했는데 운좋게 이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차례대로 하강해오는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에게 쭃겨 다니기 일쑤였다. 게다가 협상군의 전투기들은 알바트로스 전투기에 비해서 엔진 출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 전투기에게 반격을 가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고 회피기동을 하느라 속도가 줄어든 탓에 협상군 조종사들은 일방적으로 공격 당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오스발트 뵐케의 전술과 합쳐지면서 협상국 전투기들을 완전히 제압해 나갔는데 성능이 더 향상된 '''D.III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협상군의 피해는 극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전투기가 그랬듯이 이 최강의 전투기도 장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1917년 1월 23일 야스타 6 소속의 조종사가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를 타고 날던 도중 오른쪽 아래 날개가 부러지는 상황을 겪었고 다음날에는 만프레트 폰리히트호펜의 알바트로스 D.III도 비행 도중 아랫 날개가 부러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독일 공군은 1월 27일에 원인 불명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의 작전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킨다.
전선에 배치된 모든 D.III 전투기가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자 독일 공군의 조종사들은 구형 전투기인 알바트로스 D.II와 '''할버스타트 D.II''' 전투기를 타고 작전을 나가야 했다.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갑자기 날개가 부러지기 시작한 신형기의 문제가 비행성능을 향상시키 위해서 선택한 일엽반기의 날개 모양 때문임을 알아냈고 날개에 사용되던 원자재를 바꾸거나 강화시키는 등의 개수 작업으로 날개의 내구성을 높여서 해결했는데 이는 거의 한 달이 지난 2월 19일에서야 해결되었다.
하지만 날개의 내구성을 높였어도 여전히 일엽반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속에서 날개가 부러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으며 별다른 해결 방법이 없던 독일 공군은 D.III를 타는 조종사들에게 급강하 기동을 자제하라고 명령을 내려서 피해를 줄이려 했다. 더이상 예전처럼 적기의 머리 위로 급강하하는 건 불가능해졌지만 급강하만 안 한다면 여전히 빠른 속도를 보여주었기에 독일군 조종사들은 여전히 고공에서 협상군 전투기들을 기습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알바트로스 D.III를 앞세운 독일 공군은 두 달 뒤인 1917년 4월 8일에 시작된 아라스 전투(Battle of Arras)에서 공중전사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엄청난 전공을 세우기도 한다.
1917년 영국과 프랑스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사상자의 수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했었고,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군 총 사령관이었던 조프르 장군의 후임으로 임명된 니벨 장군은 프랑스 내부에 돌출되어 있던 독일군의 양쪽 방어전선을 영국군과 함께 48시간 내로 돌파한다는 니벨 공세를 계획하게 된다. 이 공세 작전에서 영국군은 아라스를 돌파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국 육군 항공대(R.F.C.)는 25개의 비행대대를 아라스 주변에 배치하여 영국군의 돌파 작전을 지원하기로 한다. 아라스 지역에 배치된 영국군의 항공기는 총 365대로 엄청난 규모였던 반면 이를 상대해야 하는 독일 공군의 비행대대는 5개 비행대대 뿐이었기에 독일 공군은 아라스에 3개의 비행대대를 추가로 배치시킨다. 그러나 3개의 비행대대가 추가적으로 증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스 지역에 배치된 독일 전투기는 영국 육군 항공대의 절반도 채 안되는 80대 정도였기에 싸움의 결과는 누가봐도 뻔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협상군의 항공기들은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알바트로스 D.II와 D.III 전투기 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주로 구식의 푸셔형 전투기인 에어코 DH.2 전투기와 '''F.E.8''' 전투기 그리고 뉴포르 17 전투기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조종사들의 기량도 뵐케 덕분에 일찍이 전투교리를 깨우친 독일군 조종사들이 뛰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영국군의 항공기들은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나게 격추되고 만다.
아라스 전투가 진행되었던 4월 한 달 동안 영국 육군 항공대는 총 245대의 항공기를 잃었는데 이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배치된 영국군의 항공기가 365대였다는 점을 보면 정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협상군의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전투기로는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이기는게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이 기간을 통틀어 '''피의 4월'''이라고 불렀는데, 손실된 항공기들은 금방 보충 받을 수 있었지만 희생된 영국군의 조종사들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협상군의 모든 전투기들이 알바트로스 전투기에게 열세였던 건 아닌데 프랑스의 스패드 S.VII 전투기나 '''솝위드 펍'''과 삼엽기와 같은 전투기들은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능가하거나 엇비슷한 성능을 가졌었지만 아직 전선에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의 활동을 저지할 수 없었다.
이런 혁혁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아라스 전투에서의 독일 공군은 주로 독일군 영공 안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의 궁극적 목표인 영국 육군 항공대의 항공 작전을 중지시키는데 실패하게 된다. 영국군은 수많은 조종사들의 피를 흘리며 얻어낸 항공 사진을 바탕으로 아라스 전투에서 공세적으로 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폭격기들은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폭격 활동을 벌였는데 이 말은 독일 공군이 뛰어난 전투기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서부전선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었다.[7]
때문에 독일 공군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할 목적으로 전투 비행대대[8] 를 설립하지만 몇 달 이내로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활약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영국군의 SE5a와 솝위드 카멜 전투기가 등장했고 프랑스에서는 스패드 S.XIII 전투기가 전장에 배치되면서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더이상 협상군의 전투기에게 속도의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되었다. 또 협상군 조종사들의 기량도 차츰 좋아졌기 때문에 협상군의 항공기 손실은 줄어드는 반면 독일군 항공기의 손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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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과 프랑스군의 합동 작전이었던 니벨 공세를 보여주는 지도이며 선임자였던 조프르 장군의 공세보다 더 큰 규모로 계획된 작전이었다. 영국의 3개 군은 북쪽의 아라스를 돌파해야 했고 프랑스의 1개 군은 슈망데담을 돌파해야했는데 독일군이 힌덴부르크 방어선으로 전략적 철수를 하는 바람에 계획의 상당 부분이 틀어졌다.
아라스 전투는 영국군 사상자 15만 8천명, 독일군 사상자 10만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끝났는데 결과는 아라스를 점령한 영국군의 승리였지만 독일군의 참호 전선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프랑스군은 엔강을 정면 돌파하려 했지만 13만명의 사상자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슈망데담 능선을 반 밖에 오르지 못했기에 48시간 이내로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다는 계획은 대 실패로 끝났다. 이 작전으로 니벨 장군은 좌천되었으며 새로운 후임인 페탱 장군이 총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뛰어넘는 고성능의 협상국 전투기가 등장하자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여러가지 성능을 개선시킨 시제기들을 계속 개발하지만 D.Va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통치 않은 성능들을 보여 주었기에 독일 공군은 어쩔 수 없이 알바트로스 D.Va 전투기를 계속 주력으로 사용했다. 독일 공군은 알바트로스 전투기외에도 포커 삼엽기나 '''팔츠''' 전투기와 같은 다양한 전투기들을 사용하면서 제공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예전과 같이 협상군 전투기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성능을 보여주진 못했고 치명적인 결함들도 있었기 때문에 주력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어중간한 성능의 전투기가 되어 버렸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독일 공군의 방공망을 책임졌으며 후에 독일군 최고의 전투기인 '''포커 D.VII''' 전투기와 '''팔츠 D.XII'''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서서히 대체되었지만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서야 등장했기에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독일군의 주력 전투기의 포지션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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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1월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영국 런던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퍼레이드가 벌어졌는데 이 퍼레이드의 행렬 중간에 노획된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가 껴있기도 했다.
5.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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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D.V 전투기를 삼엽기로 개조한 알바트로스 Dr.I 삼엽기도 존재했다.
1917년 여름 알바트로스 항공사는 D.V 복엽기의 날개 사이에 새로운 날개를 추가한 Dr.I 삼엽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D.V와 비교해서 나아진 점이 하나도 없었던 탓에 단 한 대의 시제기만 만들고 개발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1] 당시에는 기술력 문제로 소형 단발기에 사용되는 엔진의 출력이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기관총을 두 정이나 달 수 있는 전투기는 없었는데, 알바트로스는 엔진의 출력이 워낙 강력해서 기관총을 두 정이나 장착해도 힘이 남아 돌았다고 한다.[2] 모든 수냉식 엔진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기도 하다. 2차대전 최강의 기체 중 하나로 평가받는 P-51 머스탱의 경우 엔진이 피탄되면 전투는 물론이고 귀환하는것 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로 냉각수가 유출될 시 엔진의 내구성이 취약해졌다.[3] 속도가 순식간에 불어나는 수직 급강하 기동은 불가능해졌지만 적당히 속도를 줄이면서 하강하는 건 여전히 가능했다.[4] 1차대전 전투기들은 크기가 작아서 여유 공간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기관총의 총알이 걸려서 발사가 안되는 일도 잦았기에 기관총은 보통 파일럿이 다루기 쉽게끔 외부에 배치되었다.[5] 기관총의 총알이 프로펠러 날의 사이로만 발사되게끔 만들어주는 장치.[6] 1차대전 조종사들은 낙하산을 지급받지 못했기에 날개가 부러지는건 죽는다는 의미였다.[7] 아라스 전투는 협상군과 독일군 모두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끝났는데 결과는 영국군의 승리였지만 여전히 독일군의 참호 전선을 돌파하는건 실패했다.[8] Jagdgeschwader : 리히트호펜이 이끌고 다녔던 플라잉 서커스가 가장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