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잠 알 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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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zam al-Mulk''' (1018 ~ 1092)
페르시아어: خواجه نظام الملک طوسی
1. 개요
2. 상세
3. 어록


1. 개요


셀주크 왕조의 페르시아인 학자. 셀주크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명재상이다. 니잠 알 물크라는 이름은 셀주크 왕조에서 국가의 행정 체계를 구축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붙인 칭호로, '왕국의 질서'라는 뜻이다.

2. 상세


1018년 이란의 투스에서 태어났고 가즈나 왕조의 행정관에 등용되었다. 1063년 이후로 쇠퇴하고 있던 가즈나 왕조를 떠나 셀주크 왕조의 2대 술탄 알프 아르슬란을 섬기기 시작했다. 알프 아르슬란은 대부분의 통치를 군사 원정으로 보냈기 때문에 니잠 알물크가 사실상 셀주크 제국의 내정을 관리했다.
그는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니자미야'라는 학교를 여럿 세우고, 도로를 건설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 왕이 선정을 펼치는 것을 도왔다. 또한 예술과 학문을 장려하여 니자미야 대학들 중 바그다드의 니자미야 대학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최고의 학교들 중 하나로 인정받았고 그곳에서 학문적으로 권위있는 수니파 신학자인 알 주와이니와 알 주와아니의 제자인 알 가잘리도 강연을 했다.
알프 아르슬란의 사후 3대 술탄인 말리크 샤가 즉위하자 삼촌인 카부르트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말리크 샤는 카부르트의 군대를 격파한 후에 그를 살려주려고 했으나 니잠 알물크가 후환을 남기면 안 된다고 반대하였으며 결국 카부르트와 그의 아들들은 전부 사형당했다.
이후 니잠 알물크는 말리크 샤를 보좌하면서 제국의 중앙 집권과 투르크인들의 정착, 투르크 지도자들의 권력 억제, 페르시아 관료제의 확립, 수니파와 시아파의 중재, 아바스 칼리프와의 관계 개선 등의 정책을 펼치며 셀주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092년 이스파한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도중에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이 중 유명한 설로는 술탄의 토사구팽 설이 있지만 실제로 둘의 사이는 매우 좋았기 때문에 술탄 배후설은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그 외에 이스마일파의 아사신에게 암살당했다는 설, 당시 니잠 알물크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중재에 실패했고 결국 반대파에게 암살당했다는 설, 말리크 샤의 후계 다툼에 휘말렸다는 설 등이 있으나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설이 유력하다. 니잠의 살해자로 지목된 그의 경쟁자 타즈 알 물크 역시 이듬해인 1093년 니잠의 지지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1095년, 니잠이 지지하던 바르키야루크가 셀주크 제국의 대술탄으로 즉위한다.
재상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정치사상가로도 유명한데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중동의 한비자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시야사트나마가 있다.

3. 어록


세상은 신앙이 없어도 돌아갈 수 있지만 정의가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순종하는 노예 하나가 아들 300명보다 낫다. 후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만 전자는 주인의 장수를 기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