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 아르슬란
1. 개요
셀주크 제국의 제2대 술탄. 본명은 디야 앗 두니야 와 앗 딘 아두드 앗 다울라 아부 슈자 무함마드 알프 아르슬란 이븐 다우드 (ضياء الدنيا و الدين عضد الدولة ابو شجاع محمد آلپ ارسلان ابن داود)이다. 앞의 긴 호칭과 별명인 알프 아르슬란 (영웅적인 사자)을 제하면 아부 슈자 무함마드 이븐 다우드, 즉 슈자 아버지이자 다우드의 아들인 무함마드가 되겠다. 초대 술탄인 토그릴의 동생 다우드 차그리벡의 아들이며 셀주크 왕조의 창시자 셀주크의 증손자이다.
2. 행적
2.1. 총독 시절
본디 아르슬란은 왕위 계승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계승 순위를 가진 인물이였다. 셀주크가 아직 호라산 지역의 총독이던 시절[1] 그의 숙부인 투으를 베이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아르슬란의 형제가 제위를 계승했고, 이에 아르슬란은 왕위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다.
2.2. 계승 전쟁
그러나 당연하게도 왕위를 노리는 세력은 아르슬란을 제외하고도 있었는데 그 대표로, 그의 숙부인 쿠탈미쉬가 있다. 그는 자신이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아르슬란과 사사건건 다퉜으나, 결국 아르슬란이 그를 처리하며 결국 아르슬란이 셀주크의 계승자가된다.
2.3. 니잠을 등용하다
그 당시 셀주크는 어디까지나 투르크인들이 대다수의 이민족들을 지배하던 상황이였다. 그 결과 서로 끝없이 분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중 아르슬란은 전쟁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위해 니잠 알 물크라는 현재 이슬람권에서 최고의 인물중 하나로 꼽히는 이를 등용한다. 그리고 그에게 요직을 맡겨 나라를 부강케 해 군대를 양성했고 그 군대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지역을 정복한다.
2.4. 동로마와의 분쟁
1068년도 즈음 시리아 지역으로 군대를 이끌고가던 도중에 그의 부하 장수가 돌발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이탈해 로마 제국쪽으로 향했고, 그 결과 마침 그곳에서 군대를 이끌고 경계중이던 로마군과 접전을 벌였다. 총 3번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결국 장수의 군대가 패배하였고 로마는 승리하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로마의 바실레우스 로마누스 4세의 명령에 따라 아르메니아로 대군을 파견하였고 아르슬란은 이에 평화적으로 분쟁을 종결시키려 하였으나 로마누스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로마 역사상 최악의 참패 중 하나인 만치케르트 전투가 벌어졌다. 아르슬란 입장에서는 동로마 귀족 두카스 가문의 배신이라는 행운도 작용했다.
어찌되었든 아르슬란은 큰 승리를 얻었고, 바실레우스 로마누스를 생포하는 데에 성공한다. 아르슬란은 그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며 그에게 평화 조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고, 결국 로마는 아나톨리아와 수많은 장성과 미래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죽임당하거나 셀주크에게 빼앗겨버려 사실상 군 관련 기능이 거세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르슬란은 로마누스를 의외로 곱게 집으로 돌려보내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자비로운 처사라 생각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알다시피 로마의 황제 자리는 고대 로마 시대든 동로마 시대든 능력과 인기를 동반한다면 누구든 찬탈할 수 있는 자리였다.[2] 그리고 보통 폐위된 황제들은 거세당하거나 눈알이 뽑힌 채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거지꼴로 평생을 유폐당한 채 살아야 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르슬란은 의도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3] 따지고보면 로마누스에게 무척이나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그가 석방된 후 이듬해인 1072년. 로마누스 4세는 권력을 찬탈당하고 눈을 뽑힌 채 동로마에서 쫒겨나 실의 속에서 사망했다.'''아르슬란''' 만일 우리의 처지가 반대라면 그대는 어찌하겠소, 가령 내가 포로로 잡혔다면?
'''로마누스''' 죽였거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거리에서 그대를 조리돌림 했겠지.
'''아르슬란''' 그렇소? 난 그대에게 더 큰 벌을 내릴 생각이요. '''용서할 테니, 풀어주겠소.'''
2.5. 사망
만지케르트 이후 알프 아르슬란은 아시아의 서쪽 대부분을 정복했다. 조상들의 땅인 투르키스탄[4] 을 정복하던 도중 아무다리야 강 길목에 자리 잡은 성채를 공략하던 중 거짓 항복을 받고 투항한 성주 유수프 알화레즈미에게[5] 단검으로 피습당했다. 근데 사실 여기서 아르슬란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데 활을 잘 쏜다고 달려드는 유수프를 직접 활로 쏴죽이겠다며 근위병들을 저지한 게 큰 실수였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쏜 화살이 유수프를 빗나가고 기회를 잡은 유수프의 역습에 죽었다. 그래서 아들한테 자만심 때문에 죽는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 상처로 4일 후인 1072년 12월 15일, 43세로 사망했다. 물론 유수프는 근위병들에게 그야말로 끔살당했고 시체도 토막내서 길바닥에 뿌려버렸다. 시신은 메르브로 옮겨져 아버지인 차그리 베그의 곁에 안장되었다.
3. 기타
-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 1066년 시나리오에서 플레이 할 수 있다. 세력자체가 매우 강력하며 인물자체도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 플레이하기가 쉽다. 시작하자마자 동로마와 전쟁 중인데 전쟁의 명분(CB)이 침략이기 때문에 이 전쟁 한 번으로 동로마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설사 멸망시킬 수 없다 해도 가문이 셀주크 가문이라 스페셜 CB가 있어 동로마에게 무제한으로 침략전쟁을 걸 수 있다.
- 알프 아르슬란은 현대 터키의 남자이름으로 가장 선호되는 터키식 이름이라고 한다.
- 투르크메니스탄의 8월의 명칭은 알프 아르슬란이다.
[1] 말이 총독이지 사실상 세습에 가깝다.[2] 로마 황제는 어디까지나 '제1시민'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황제와는 그 개념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황제 혈통이 아니더라도 출중한 능력과 많은 지지를 얻으면 시민들 중 누구라도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는 얘기. 실제로도 비천한 가문 출신이거나 非라틴, 非그리스 계열의 속주민이 군대와 시민의 지지 속에 로마 황제에 오른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자세한 내용은 황제 문서 참조.[3] 당시 로마누스와 배상금까지 협상하여 곱게 돌려보낸 것을 보면, 의도적까지는 아니었을 듯 하다. 아마도 로마누스가 복위하고 약속을 지키면 배상금을 받을 수 있고, 로마누스 혹은 찬탈자가 배상을 거부하면 대의 명분을 얻을 수 있으니, 어느쪽이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4] 튀르크족의 땅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일대[5] 거짓 항복이 아니고 진짜 항복인데 유수프를 끔살하라는 명을 내리는 바람에 유수프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단검으로 발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