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1. 개요
2. 상세
3. 주목할 만한 문장들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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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l Principe[1] / The Prince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책. 군주론은 1513년에 메디치 가문에 헌상되었으나, 공개적으로 출판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죽고 나서 5년이 흐른 1532년이다. 군주론이 카를 5세, 올리버 크롬웰 같은 여러 현실정치가들이 활용하기는 했지만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제대로 접근된 것은 장 자크 루소가 자신의 저서인 사회계약론에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 처음이라고 봐야 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사악하고 독재적인 군주론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현대 정치학의 기반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저서이다.

2. 상세


군주론이 집필될 당시, 이탈리아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뭉쳐 있지 못하고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어 힘이 약했다. 반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은 저마다 중앙집권체제를 완비한 뒤 군사력은 보잘 것 없지만 경제문화적으로는 풍부한 땅인 이탈리아를 노리게 되는데, 이로써 벌어진 전쟁을 이탈리아 전쟁이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맞아 마키아벨리는 하루빨리 이탈리아가 '야만인' 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를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기에 이른다.이는 마지막 장(26장)인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다만 이러한 정세와 함께,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메디치 가문에게 잘 보이기 위함' 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이 추방된 이후에 정계에 진출하여 활약했지만 메디치 복권 이후에 메디치 가문에 반감을 가진 자로 인식되어 추방당했는데, 어떻게든 정계에 복귀하고 싶었기 때문. 실제로 군주론은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되며, 바로 위에 각주로 소개한 26장에서도 메디치 가문을 '전하(당신)의 가문' 이라며 칭송했다.[2]
군주정에 대한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론을 당시까지의 유럽 역사를 인용하여 기술했는데, '''최초로 정치와 종교 및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3]이다. 정치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키아벨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저서다.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와 야심 및 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델로 동시대의 인물 체사레 보르자를 꼽았다는 이해가 널리 퍼져 있는데, 사실 체사레 보르자의 정치적 성공을 하나의 모범적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가 군주론에서 제시된 지침과 반대로 행동했을 때 파멸한 것 역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제시했기에 마키아벨리가 그를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버려, 당시의 가톨릭적인 사상에 반한다고 판명되어 결국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다. 또한 이후의 독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레퍼토리가 되고,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라는 알 수 없는 단어까지 발생했다. 지금까지도 이런 인식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대표적 지식인인 버트런드 러셀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그에 따르면 군주론에서 주장한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획득하고 싶으면 '냉철'해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즉, 정치를 분리시켜 본 것일 뿐 부도덕한 시점에서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미덕은 권력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며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효과적인''' 방법만이 정당하다는 것. 즉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극도의 합리주의적 통치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론은 신하를 다루는 법, 상비군의 필요성과 용병의 해악, 요새의 기능, 중립의 해악 등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권장이라기보단 그야말로 통치 지침서로서 내용에 충실하다. 여기에 추가로 어떤 사적인 덕목이 실질 통치에 해악이 되는지를 설명하는데, 이는 기독교적 덕목을 전적으로 져버리라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외려 "굳이 A라는 유형의 나라를 다스리거나 칠 때에는 B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설명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제시하고, 그 토대 위에 군주로서의 덕목과 통치 방법을 서술한 것도 특징. 예를 들어 '인간은 사악한 생물이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군주도 그 약속에 얽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다음은 까치사 강정인 역 군주론 인용이다.

군주가 위에서 말한 것들 중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할 것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상황이란 것이 전적으로 유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파괴할 법한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들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에 관해서는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을 메디치가에 바친 이유가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옹호했기 때문에 '이걸 실행해서 시민의 반발에 부딪쳐 좌초해라'였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에 따르면 정작 메디치가는 군주론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마키아벨리는 공화정 복귀 후 메디치가에 아첨을 떤 간신배로 낙인찍혀 복귀하지 못했으니, 결국 양쪽 모두에 외면당한 셈이다.
사실 음모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신빙성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상황을 개탄하고 혼란을 종식시킬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공화정과는 거리가 먼 체사레 보르지아를 찬양했으며. 자신을 채용할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구태여 메디치정이 붕괴되기를 기대했다는 해석은 근거가...[4]
굳이 이쪽으로 해석하자면 공화정 준비단계로서 견고한 군주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봐야할 것이다. 당시 피렌체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이탈리아는 공화정이랍시고 대단히 많은 분열과 혼란, 대립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화정은 발전은 개뿔이고 외세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진정 강한 공화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제정치든 군주국이든 우선 채용하여 힘을 기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 공화정 옹호론자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저술한 이유도 그 때문에서라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또한 얼핏 보면 도덕이나 윤리를 부정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주장들이 나와서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잘 알고 비방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사악하고 뻔뻔하므로 이쪽에서 잘 대해준다고 해서 저쪽도 잘 대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등 사악한 행위를 저지른다고 보았다. 그런 작자들은 관용을 베푼다고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 차라리 권모술수나 무력으로 제압하라는 뜻이었다. 즉 일부 사악한 사람들을 제멋대로 하게 놔둬서 다수를 피해 입히기보다는 그들을 처벌하고 제압하여 '더 큰 정의'를 실현시키라고 주장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 군주론을 펴면서 이에 반론하는 '반마키아벨리론'을 저술한 바 있다. 짧은 분량의 에세이로 구글에 검색하면 찾아 읽어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EBS 교재에서는 '이놈이나 그놈이나 행실은 똑같음'이라고 까였다. 교재뿐이 아니라, 전문 학자들도 프리드리히가 전쟁을 일으키며 한 일은 정확히 자기가 쓴 글에서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학자는 "프리드리히는 군주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썼지만, 자기가 안하겠다고 쓰지는 않았다"고 비꼬기도 했다.
유명한 책인 만큼 우리나라에도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부산대 사학과의 곽차섭 교수가 이탈리아어 원전의 완역본을 내놓았다.
루소는 자신의 저서인 『사회계약론』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국왕들을 가르치는 척 가장하면서 실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의 책이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9)] 좀더 후대에는 20세기 전반기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도 군주론을 사회주의 혁명에 필요한 계급적 각성을 촉구하는 정치적 선언서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수정주의적인 시각이 강한데 애초에 군주론은 일반 시민이 아닌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는 작품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대부분은 이탈리아어에 일부분은 라틴어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저술했는데, 이는 중세의 유명한 작품이었던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은 당시 이탈리아 작가들의 유행이었다.
군주론의 처음에는 로렌초 데 메디치[5]에게 군주론을 잘 읽고 이용해달라는 헌사가 실려 있다. 책 마지막에는 로렌초에게 '당신이 깃발을 들고 나서서 이탈리아 통일에 앞장서라'고 당부하는 글을 썼다. 이 장에서 여러모로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군주론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이쪽을 참고할 것.

3. 주목할 만한 문장들


동서문화사 황문수 역 <군주론/정략론> 발췌.

민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 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소한 모욕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나, 너무나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인들 사이에서는 지난 날의 원한이 새로운 은혜를 베풂으로써 깨끗이 씻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요컨대 가해 행위는 한 번에 해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짧은 시일 내에 끝내면 그만큼 민중의 분노도 쉽게 사라진다. 반대로 은혜는 민중이 오랫동안 음미하도록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사실 인간이란 자기에게 해를 끼치리라 생각했던 자로부터 오히려 은혜를 입게 되면, 보통 때 은혜를 받은 것보다 몇 배나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인간은 부모를 죽인 원수는 잊을 수 있어도 재산을 훔친 원수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민중이 군주의 필요성을 느끼는 평화시의 태도만을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평화 시에는 누구나 다 충실하고 헌신적이다. 죽음이 저 멀리 있을 때는 모두가 군주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막상 역경에 처해서 군주가 그런 민중이 정말로 필요할 때는 도저히 헌신적인 민중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현명한 군주는 부하들이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들 스스로 충성하게 만들지만, 우둔한 군주는 위급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충성을 요구하다 배신을 당한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 또한 그 태도를 때에 따라 행사도 하고 중지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는 자기네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군주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좋은 기질(인자함, 신의, 신앙심 등)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아니, 더 대담하게 말해서, 그런 훌륭한 기질을 갖추고 항상 존중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우며,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것이 더 유익하다.'''

군주가 경멸을 당하는 이유는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무기력하며, 결단력이 없다고 보여질 때이므로 군주는 이런 것을 하나의 암초로 생각하고 크게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로운 의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서는 안 된다. 운명이 인간 활동의 절반을 주재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머지 반은 우리의 지배에 맡겨져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로마인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이 유리할 때를 기다린 것뿐이다.


4. 대중매체에서



4.1. 어쌔신 크리드 2에서


시민을 살해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냉혹하며, 교리를 어기는 것은 능력이라고 칭할 수 없다. 군주는 이런 식으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코 영광은 얻을 수 없다.

소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제1부 도입부 군주론 인용

게임에서는 에지오 아디토레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언급했지만, 소설에서는 좀 더 명확히 "체사레를 통해 군주와 권력에 관한 책을 쓸 생각입니다. 또한 당신에 대한 평가와 함께 서술할 계획입니다." 라고 언급하여 책이 군주론이라는 걸 유추 할 수 있다.
실제 군주론에 익명의 군주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한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어떤 군주는 실상 평화와 신의에 적대적이면서도 이를 입에 달고 산다.[6]

그가 이 2가지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실천에 옮겼다면 자신의 명성과 권력 가운데 하나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그랬을 것이다.

(인간사랑 출판, 군주론 번역본)

다만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황문수 역의 군주론에는,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의 군주 가운데 한 사람' 이라는 자리에 '에스파냐 왕 페르난도 5세' 라는 이름이 언급된다. 이는 실존 인물로, 이사벨 1세의 남편으로 유명한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를 가리키는 것.
페르난도는 아내 이사벨에게 묻힌 탓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여러 번 낚으며[7] 남부 이탈리아 거의 전역을 차지하고 있던 나폴리왕국 영토를 스페인이 독점하는 업적을 이룩했다.[8] 언젠가 루이의 항의를 받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프랑스 왕이, 짐이 그를 '''두 번이나 속였다'''고 불평하는군. 하지만 그 바보 같은 놈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짐은 그를 '''열 번도 더 속여넘겼기 때문이지.'''


4.2. 창세기전 시리즈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 등장하는 마키아벨리가 기술한 이론이다. 어딜 봐도 1이 모티브. 그러나 위의 군주론이 어디까지나 정치와 도덕의 분리 정도인 반면 이쪽은 현실의 군주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즉 군주에게는 부국만이 미덕이며 그를 위해선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냉혹해져야 하고 이로 인해 흘릴 피와 희생은 중요치 않다는 모토 그 자체의 이론이다. 제국령 각지에 걸쳐 온갖 전횡을 일삼았던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서풍의 광시곡 작중 및 설정에서의 옹호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더욱 극명해진다.[9]
흑태자를 모델로 작성했다고 하는데, 흑태자 본인이 이걸 보면 뭐라 생각할지 참으로 궁금할 노릇. 물론 게임으로 흑태자의 인간적인 면마저 볼 수 있었던 플레이어들이라면 몰라도, 그 세계관 안의 인간들이 봤을 때는 겉으로만 보이는 강한 면모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나올 법한 소리이긴 하다.
창세기전 3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팬드래건 왕국에서는 버몬트 대공의 독단적이고 포악한 국정 운영을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했고, 게이시르 제국에서는 알바티니 데 메디치와 제국 재상 리슐리외가 제국을 이 군주론에 입각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일부러 반란을 저지른다. 즉 당시 안타리아 대륙에 일어난 전란의 상당수를 조장하는 폐해를 끼친 셈. 현실의 군주론과 달리 이쪽은 그 자체로 꽤나 막장에 가깝다 볼 수 있다. 덕분에 창세기전 플레이어들은 오늘도 버몬트 대공에게 바람을 불어넣은 록슬리를 쿨타임없이 까고 있다. [10]

[1] 프린치페는 이탈리아어로 군주 자체를 이르는 말이나 일본에서 군주론으로 번역하였다.[2] 줄리아노에게 바치기 위해 집필하였지만, 그의 이른 죽음으로 실제로 책이 헌사된 것은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가 되었다.[3]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데 사실과 당위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서양 철학의 개념의 원류이다.[4] 그러나 사실상 이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메디치가의 좌초를 노렸다고 한다면 군주론에서 체사레 보르지아를 찬양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역설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차피 그들의 좌초를 노린 책이라면 그의 진짜 주장과는 다른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이후 저술한 로마사 논고에서 그는 충분히 공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5] 대인 로렌초의 손자이자 동명이인이었던 로렌초이다.[6] 각주로 옮김이는 후술 되어 있듯, 스페인 페르난도 2세를 지칭한다.[7] 대표적으로, 나폴리왕국을 함께 정복하고 그 땅을 나누죠? 라고 제안해놓고서는 정복이 끝나자 프랑스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을 들 수 있다.[8] 따지고 보면, 스페인이 '스페인 제국' 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세력을 확대하는 데는 이사벨의 콜럼버스 후원 못지않게 페르난도의 이탈리아 영토 확보도 중요했다.[9] 설정상 체사레 보르자가 마녀사냥 및 공포정치로 수많은 소영주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권력을 몇몇 대영주들에게로 결집시켜 이전보다 질서가 생기긴 했고, 클라우제비츠가 그에 대해서 '사리사욕을 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제국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것을 볼 때 어쨌든 성과는 있었지만, 이는 제피르 팰컨이 체사레의 폭주를 저지하면서 낳은 결과일 뿐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으로 포장하는 체사레 본인이 파괴신 부활에 외세 개입 등 끝없는 패악질로 폭주를 거듭했던 걸 보면 결국 문제투성이의 이론.[10] 다만, 록슬리를 클라우제비츠가 소개해 주기 전부터 이미 버몬트는 복수심에 불타는 인간이었다. 단지, 록슬리는 버몬트의 복수를 정당화시켜 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해 줄 수단을 제공해 준 것뿐이다. 그러니까, 버몬트는 원래부터 위험한 성난 호랑이였고, 록슬리는 단지 그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