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가잘리

 


1. 개요
2. 생애
3. 사상과 의의

  • أَبُو حَامِدٍ مُحَمَّدُ بْنُ مُحَمَّدٍ ٱلطُّوسِيُّ ٱلْغَزَالِيُّ (풀네임) / ٱلْغَزَّالِيُّ,
  • Abū Ḥāmid Muḥammad ibn Muḥammad aṭ-Ṭūsiyy al-Ġaz(z)ālīy / Al Ghazali
  • 라틴어 : 알가젤루스 (Algazelus / Algazel)

1. 개요


풀네임은 아부 하미드 무함마드 빈 앗 투씨이 알 가잘리, 라틴어 이름은 알가젤루스인 알 가잘리는 '''중세 이슬람 철학계의 끝판왕'''으로 원래는 대학에서 사변 철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으나 후에 수피즘에 심취한 이후 "철학자들의 부조리"라는 책을 저술하여 자기가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던 이슬람 사변 철학을 몰락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오늘날의 와하브파에서는 그가 수피즘에 심취했었다는 이유로 그의 기여도를 대단히 축소시킨 이유 때문인지 그의 저작이 남긴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안습한 편이다.

그리스 철학의 이슬람 접목을 반대했던 인물이지만 무조건 배척한 것은 아니고 그리스-로마의 수사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받아들였다.

2. 생애


그의 부친은 투스에서 양털을 가공하는 장인이었다 전해진다. 알 가잘리와 그의 동생 아흐마디에 대한 무리한 교육비 투자로 가잘리의 부친은 결국 재산을 탕진했으며, 형제는 생계 문제를 위해 공부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투스와 니샤푸르에서 이슬람 법학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셀주크 제국의 명재상 니잠 알 물크의 눈에 띄어 33세에 바그다드에 있는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로 발탁되는데, 그 당시의 학자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셈이었다. 그는 법학과 신학에 관한 논문을 썻고, 철학의 여러 주제에 정통했으며, 그의 법적 결정은 권위있는 것으로 존중받았다. 종교적 전통에 충실한 동시에 정치적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당시 칼리프가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투르크계 군인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상세한 지침과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명예를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로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강의를 지속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렸다고 한다.

거의 6개월 동안 나는 세속적인 욕망이 가져다주는 매력과 영생에 대한 충동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야 했다. 하나님이 나의 혀를 말라붙게 만드는 바람에 강의를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끼는 제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강의에 나섰으나, 내 입에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언어장애로 인해 나는 상심에 빠졌고, 음식과 물을 소화,흡수할 기력마저 잃었다. 나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

의사마저도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체념하자, 알 가잘리는 대학을 뛰쳐나가 10년 동안 유랑하는 수피의 삶을 살게 되었다. 10년 동안의 유랑 생활이 끝난 후에는 교수로 복직하였다. 니샤푸르에서 다시 교수직을 얻은 그는 샤리아수피즘 사이의 균형과 조화에 관련한 정교한 이론을 확립하였다.

3. 사상과 의의


알 가잘리는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이븐 시나알 파라비를 비판하는 논문들을 종합하여 "철학자들의 부조리"라는 책을 저술하였으며 "아슈아리 학파"는 그의 신학과 논리를 계승하여 이븐 루슈드가 이끄는 이슬람 사변 철학 학파들과 논쟁을 벌였다 한다. 이슬람 사변 철학 학파는 결국 부유한 칼리프들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몰락했으며, 아슈아리 학파 역시 한발리파의 이븐 타이미야가 "아슈아리 학파 또한 그리스 철학과 수피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순수한 이슬람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공격하면서 같이 사이좋게 몰락했다고 한다.
이슬람 철학과 신학을 너무 잘 집대성한 덕분에 후대의 이슬람 신학자들이 할게 없어져서 이슬람 신학을 몰락시킨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 등이 무슬림 사회의 과학적 성과가 폭망인 이유가 이슬람 신학을 집대성하면서 수학을 듣보잡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발언하여 까이기도 했다. 십자군 시대를 전후로 하여 각종 근본주의적 종파가 등장하고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치며 이슬람 신앙이 경직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연히 오랜 시간을두고 제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탓으로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는 문제다. 그리고 알 가잘리는 과학과 철학을 무시한게 아니라 신의 섭리를 단순히 이성만으로 알 수 없다고 신비주의를 더 강조한 것에 가까우며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분명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근본주의적 종교가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교육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얘기하려다가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예시를 들은 것이 문제. 정작 와하브파같은 근본주의자들은 알 가잘리를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