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사기
공판화를 찍어내는 동영상. 등사기의 기본 사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謄寫機
Mimeograph, Duplicating Machine[1]
프린터 또는 복사기의 조상. 원리는 현대적인 실크스크린이나 스텐실 인쇄법와 같은 공판인쇄(孔版印刷)의 일종. 1990년대에 복사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학교나 관공서, 회사 등에서 문서 복사본을 만들어야 할때 썼다. 특히 돈이 없는 곳이라면... 시골에서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극초반까지 썼다.
먼저 등사원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밀랍 내지는 왁스가 코팅된 등사지라는 반투명 종이를 줄(공구 File)처럼 가는 사선 격자무뉘가 새겨진 철판에 올려놓고 송곳 비슷한 철필로 글을 새겨 글씨나 그림의 선 부분의 왁스 코팅을 긁어낸다. 그리고 등사원고를 고운 비단천으로 된 실크 스크린에 붙이고 밑에 놓인 종이에 밀착시킨 후 그 위로 끈적한 유성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린다. 그러면 철필로 새겨 왁스코팅이 제거된 등사지 부분은 잉크가 새어나와 등사지와 비단 스크린을 통과해 종이에 묻게 된다. 그렇게 1장 인쇄! 그런데 30장의 인쇄물이 필요하다면? 30번 해야 한다. 그걸 다 사람의 손으로.., 많이 인쇄하면 등사원고가 마모되어 잉크가 번지거나 인쇄가 희미하게 흐려지기 때문에 인쇄 품질이 나빠지고 또는 서툴게 밀다 보면 원고가 찢어지기도 해 다시 파야했다(...) 수명은 보통 수 백 부 정도이고 1천 부를 넘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량의 인쇄에는 적합하지 않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등사지에 새긴 글에 오타가 나면 수정이 불가능해 다시 써야하지만 철필의 둥근 뒷부분이나 약한 열로 오자가 파인 왁스를 문질러 수정할 수도 있다.
등사원고 작성이나 인쇄 비용이 매우 낮기 때문에 옛날 초중고 학교에서 각종 통지문이나 학습 자료 시험 문제 등 인쇄에 널리 쓰였고 원고 작성자의 필체가 그대로 인쇄되므로 옛날 교사들 중에는 펜글씨 필체가 활자 폰트 못지않게 좋았던 분들도 있었다. 등사인쇄를 많이하는 학교나 관공서 등에는 이런 등사원고를 전담해 작성하는 필경사라는 전문 직업도 있었다. 이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작성한 문서도 거의 활자인쇄본 수준을 보여주었다. 시위가 잦았던 1980년대 한국 대학가 운동권의 단골 아이템. 몰래 인쇄해야 하니 인쇄소나 복사가게에 맡길 수 없어서 삐라(전단지)는 이렇게 만들었다.
현대에도 복사기와 비슷하게 생긴 등사기가 존재한다. 기본 원리는 거의 똑같으나, 인쇄 드럼에 코팅된 종이가 있고[2] ,잉크 공급기에 의해 현상되면 그게 종이랑 바로 눌려서 인쇄가 된다. 지금은 거의 안쓰지만, 불과 5년전만하도 120ppm(분당 120장)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물론 지금도 쓴다. 이것을 윤전식 등사기라고 한다.
보통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인쇄실에서 학교 시험지나, 가정통신문을 인쇄할 때 많이 쓰인다.
다량으로 복사해서 배포하는 문서를 아직도 흔히 '유인물(油印物)'이라고 부르는데, 등사기를 쓰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다. 기름 먹인 종이로 인쇄한 것이라는 뜻. 이 단어는 현재 '인쇄물'로 순화되었으나, 아직도 유인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
이 등사기는 대부분 다음 과정을 거친다. 왠지 은염인쇄[3] 와 비슷하지만, 철판이 들어가진 않고, B/W 만 가능하다.
등사기로 1. 개요
謄寫機
Mimeograph, Duplicating Machine[1]
1. 개요
프린터 또는 복사기의 조상. 원리는 현대적인 실크스크린이나 스텐실 인쇄법와 같은 공판인쇄(孔版印刷)의 일종. 1990년대에 복사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학교나 관공서, 회사 등에서 문서 복사본을 만들어야 할때 썼다. 특히 돈이 없는 곳이라면... 시골에서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극초반까지 썼다.
먼저 등사원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밀랍 내지는 왁스가 코팅된 등사지라는 반투명 종이를 줄(공구 File)처럼 가는 사선 격자무뉘가 새겨진 철판에 올려놓고 송곳 비슷한 철필로 글을 새겨 글씨나 그림의 선 부분의 왁스 코팅을 긁어낸다. 그리고 등사원고를 고운 비단천으로 된 실크 스크린에 붙이고 밑에 놓인 종이에 밀착시킨 후 그 위로 끈적한 유성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린다. 그러면 철필로 새겨 왁스코팅이 제거된 등사지 부분은 잉크가 새어나와 등사지와 비단 스크린을 통과해 종이에 묻게 된다. 그렇게 1장 인쇄! 그런데 30장의 인쇄물이 필요하다면? 30번 해야 한다. 그걸 다 사람의 손으로.., 많이 인쇄하면 등사원고가 마모되어 잉크가 번지거나 인쇄가 희미하게 흐려지기 때문에 인쇄 품질이 나빠지고 또는 서툴게 밀다 보면 원고가 찢어지기도 해 다시 파야했다(...) 수명은 보통 수 백 부 정도이고 1천 부를 넘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량의 인쇄에는 적합하지 않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등사지에 새긴 글에 오타가 나면 수정이 불가능해 다시 써야하지만 철필의 둥근 뒷부분이나 약한 열로 오자가 파인 왁스를 문질러 수정할 수도 있다.
등사원고 작성이나 인쇄 비용이 매우 낮기 때문에 옛날 초중고 학교에서 각종 통지문이나 학습 자료 시험 문제 등 인쇄에 널리 쓰였고 원고 작성자의 필체가 그대로 인쇄되므로 옛날 교사들 중에는 펜글씨 필체가 활자 폰트 못지않게 좋았던 분들도 있었다. 등사인쇄를 많이하는 학교나 관공서 등에는 이런 등사원고를 전담해 작성하는 필경사라는 전문 직업도 있었다. 이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작성한 문서도 거의 활자인쇄본 수준을 보여주었다. 시위가 잦았던 1980년대 한국 대학가 운동권의 단골 아이템. 몰래 인쇄해야 하니 인쇄소나 복사가게에 맡길 수 없어서 삐라(전단지)는 이렇게 만들었다.
현대에도 복사기와 비슷하게 생긴 등사기가 존재한다. 기본 원리는 거의 똑같으나, 인쇄 드럼에 코팅된 종이가 있고[2] ,잉크 공급기에 의해 현상되면 그게 종이랑 바로 눌려서 인쇄가 된다. 지금은 거의 안쓰지만, 불과 5년전만하도 120ppm(분당 120장)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물론 지금도 쓴다. 이것을 윤전식 등사기라고 한다.
보통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인쇄실에서 학교 시험지나, 가정통신문을 인쇄할 때 많이 쓰인다.
다량으로 복사해서 배포하는 문서를 아직도 흔히 '유인물(油印物)'이라고 부르는데, 등사기를 쓰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다. 기름 먹인 종이로 인쇄한 것이라는 뜻. 이 단어는 현재 '인쇄물'로 순화되었으나, 아직도 유인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
이 등사기는 대부분 다음 과정을 거친다. 왠지 은염인쇄[3] 와 비슷하지만, 철판이 들어가진 않고, B/W 만 가능하다.
- 인쇄할 것을 어디 하얀 용지에다가 흑백으로 인쇄한다.
등사기가 드럼에 이미지를 새길 때 쓰는 빛이 532nm인지라 컬러 인쇄한 것을 쓰면 애매해진다.
- 등사기의 스캔 유닛에 넣고, 드럼에 현상을 한다. 기기마다 버튼은 다르다. 물론, 이 과정 가기전에 미리 써멀헤드를 예열하도록 켜놓고 스텐바이도 아니고 ondemand 에 있어야 한다.
- 이미지가 종이에 다 새겨지면, 테스트 페이지가 1장 흐리게 나온다. 조금 흐릿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 인쇄할 장수를 입력하고 시작하면 바로 인쇄가 진행된다. 이후 스캔 유닛의 종이는 제거해도 상관없다.
- 인쇄시 속도 조절이 된다. 급하면 빠르게 인쇄하던지[4] 느리게 인쇄하는것이 가능하다.
[1]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2] 여러번 쓸 수 있는 종이라서 경제적일 수도 있다.[3] 오프셋 프린트. 신문이나 광고, 기타 초 대량의 인쇄가 필요한 곳에 쓰는 방법. 색상별로 CMYK 를 다루는 철판에 이미지를 세기고, 이것을 프레싱 장비에 마운트하여 종이를 연속으로 급지하는 방법이다. 인쇄속도는 기기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180ppm 은 나와준다. 롤용지 사용 가능하다.[4] 대신 잉크소모를 잘 계산해야한다. 등사기는 페트병 반만하게 생긴, 그러니까 어릴 때 미술수업하면 들고다니는 물통이랑 비슷하게 생긴 잉크가 들어가는데, 골로가기전에 아무런 경고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인쇄시 줄이 가거나, 건조가 덜되어 서로 붙을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