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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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기 | 複寫機(器) | Photocopier
1. 개요
2. 역사
2.1. 복사기 등장 이전
2.2. 습식 복사기
2.4. 건식 복사기
2.5. 디지털 복사기
2.6. 대한민국과 복사기
3. 직장인과의 관계
3.1. 복사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치방안
4. 주요 제조회사
5. 유지보수
6. 기타


1. 개요


고대부터 인류는 행정 문서를 기록하고 관리하여 왔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동일한 사본을 조금씩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종이의 질이나 기술적 한계 그리고 인쇄술이 발달된 시기에도 경제성 등의 문제로 인해 사람이 손으로 베끼는 정도로 만족하여야만 하였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에 의해 처음 등장한 복사기는 이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왔다. 1956년에 최초의 현대적 건식 복사기가 등장한 이후 이는 전 세계의 정부 기관과 회사들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문서의 소량 대량 인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대에서 사용하는 복사기는 단순히 복사 기능 이외에도 팩스, 프린터, 스캔, 고속출력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함으로 지금도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2. 역사



2.1. 복사기 등장 이전


문서는 고대부터 국가의 운영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문서를 배포하거나 보관을 위하여서는 사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복사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필경사나 서기 같은 전문 직업인 같은 사람이 손으로 베껴 쓰는 방식을 이용하였다.
목판이나 금속활자 같은 인쇄술이 등장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대량 인쇄에는 적합하지만 행정 업무용 문서를 복제하는 데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라 쓰이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인쇄술은 문서를 가지고 만드는 게 아니고 따로 활판을 만들어서 활판으로 인쇄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특별히 공을 들여 제작하는 서책이 아닌 일상 업무에서 발생하는 공문서를 활판으로 만드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2.2. 습식 복사기


최초의 복사기는 1780년에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하였다. 이 복사기는 습식 복사기로 불리는데, 얇은 종이에 원본을 필기한 뒤 물에 적신 다음 아래에 복사지를 놓은 뒤 압착 롤러로 누르는 원시적인 복사기였다. 와트의 습식 복사기는 1785년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복사하기도 하였다.
습식 복사기의 단점은 원본을 물에 적시기 때문에 상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다. 또한 특수 잉크를 사용함에도 10시간 넘게 용지를 물에 적셔야 한다는 문제도 초기 버전에서 있었다. 그리고 사본을 여러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딱 한부만''' 만들 수 있다는 한계점도 있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와트의 습식 복사기는 동일한 내용의 사본을 복사할 수 있었으므로 20세기 초까지 계속 사용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현재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습식 복사기 원본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강릉시 경포대에 있는 참소리 박물관(에디슨과학박물관)에 보존 중이다. #
제임스 와트가 1780년 특허를 취득한 등사기로, 뚜껑을 열면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필대가 있어 서류나 문서 작성을 할 수 있고, 그 아랫부분에는 연필이나 펜 등을 넣을 수 있는 칸들이 있다. 또한 나무통에 철을 입힌 물통이 있어 종이를 적실 수 있다. 물은 보통 맑은 샘물을 이용했다. 이곳에 복사지 24장이 들어갈 수 있고 12시간 적신 후 복사 준비가 된다. 쓰고 남은 복사지는 2주간 보관이 가능하다.[1]

2.3. 등사기


최초의 상업용 등사기는 1887년에 딕(A.B. Dick)社가 개발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등사기 참고.다만 등사기는 일종의 수동식 소형 인쇄기였기 때문에 대량인쇄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어느정도 숙련된 인쇄 기술자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문서의 소량 복제는 이 시기에 널리 보급된 타자기를 이용할 때 먹지를 대고 타이핑을 하는 방법이 더 일반적이었다.

2.4. 건식 복사기


건식 복사기의 아이디어는 1930년대에 그 개념이 정립되었다. 칼텍 출신의 체스터 칼슨(1906~1968)은 최초의 건식 복사기를 고안해냈는데, 이는 은판 인쇄술의 원리와 물리적, 화학적인 원리가 접목된 아이디어였다. 전기적 원리를 통한 이 아이디어는 1938년에는 실제로 짤막한 문장을 복사하기까지 하였고 1942년에 특허로 인정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것의 상용화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1945년에 바텔 메모리얼社[2]는 이 복사기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이를 할로이드 社[3]에 소개해주게 된다.
1958년에 미 육군이 건식 복사기에 흥미를 느끼고 개발 자금을 지원하면서 개발 속도가 순항을 타게 되었다. 이때 건식 복사기에 제록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1959년에 최초의 건식 복사기인 모델A가 등장하나, 이는 사실상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이 복사기가 등장한 이후 많은 대기업들이 건식 복사기 개발을 다투어 시작하게 된다.[4] 할로이드 社는 곧 Copyflo라는 후속작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미국 정부에 주로 납품되었지만 굉장히 성공작이었다. 미군뿐 아니라 이 복사기는 미국 행정부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때 복사기의 소모품 납품 비용만으로도 회사 매출의 40% 이상을 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기는 저렴하게 주는 대신 토너 등의 소모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방법이 처음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복사기의 인기는 대단해서, 최초에는 겨우 연간 2000만 장 정도만 복사가 이루어졌으나, 1966년에는 무려 140억 장의 문서가 복사기로 인쇄되었다. 할로이드 社는 1961년에 회사 이름을 제록스로 개명하였다. 심지어 지금도 북미에서는 복사기를 Xerox로 더 많이 부를 정도이다. 이 복사기와 프린터의 시초가 된 많은 기술들과 프린터따위는 애교로 보이게하는 현대 컴퓨터,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기술들이 태어난곳인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인데 나무위키에 제록스 문서가 없는 반면 PARC(팔로알토 연구소)문서는 존재한다.
또한 이 '제록스'기술은 의외로 애니메이션 산업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제록스 기술이 애니메이션에 쓰이기 전에는 작화지에 그린 클린업된 선을, 셀에 G펜등으로 트레이스하였다. 이렇게 하면 선화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제록스 기술의 도입으로 연필선을 셀에 '복사'할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빠르면서도 정확한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단점은 색선을 입히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였다. [5] 일본에서는 이를 변형한 일종의 저가형인 '트레이스 머신'이란 기계를 이용하였다. 트레이스 머신은 '카본지'라는 용지를 셀과 종이 사이에 껴서 셀에 연필선(탄소)만을 복사했고, 제록스 복사기와는 다르게 셀 뒷면에다가 선을 입혔다. 다만 현재는 동화 이후에는 작화지를 스캔해 디지털화하여 선화와 채색작업을 한다. 셀을 실제 프로덕션에 쓰는 곳은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없고 기념품을 만들 때에나 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방식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의 복사기 대부분은 디지털 처리를 거친다. 내부적으로는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로 스캔하여 인쇄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 참고로 아날로그 복사기는 한국 기준으로 2004년에 단종되었다.

2.5. 디지털 복사기


최근에 들어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복사기는 사실상 멸종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며 아날로그 대신 디지털 방식의 복사기의 가장 큰 특징은 PC 및 Mobile 장치와 연결이 가능함에 따라서 스캔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고속 자동원고이송장치가 탑재되어 최대 270매에 이르는 문서를 복사 및 스캔이 가능[6]하다. 또한 더 많은 규격의 용지를 사용이 가능하며 고해상도, 고선명, 고품질의 출력물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복합기와 비교를 거부하는 속도로 시원하고 빠르게 대량 인쇄가 가능하고,[7] A4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이즈의 종이로 대량 인쇄가 가능하다. 거기다 사무실에 또다른 필수 요소인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로는 프린터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편의기능이 대거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필요에 따라 확장키트[8]를 장착하여 출력물을 자동으로 스테이플러를 찍어주는 장치, 소책자 제작기, 출력물 대량적재장치(4000매)들도 존재한다. 복사기 제조회사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복사기에 탑재된 IC카드 리더기로 비인가 된 인원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으며 소소하게 신분증 복사, 빈페이지 건너뛰기, 신문지 같은 얇은용지 비침 방지기능 등 다양한 편의기능이 탑재되기도 한다.
또한 복합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고급 옵션인 양면 인쇄 기능이 대부분의 복사기에는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고, 복합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서류 하나를 통째로 몇십 부 단위로 복사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보통 양면 인쇄가 되는 복사기에는 다 달려 있다. 요즘은 복합기 하나로 위의 기능을 모두 구현하며 웬만한 중형 컬러 복합기 같은 경우 고속 컬러복사, 스캔, 프린터 기능 말고도 NFC 기능, 와이파이 다이렉트 출력(스마트폰으로 복합기로 데이터 날려서 출력)도 되며 복합기 자체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추가기능을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디지털 복사기에서 출력이 되는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문서처리기 혹은 평판스캐너에서 강한 빛에 의해 상을 만들어지고 출력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복사기에 장착된 토너가 토너 공급장치를 통해 현상기에서 토너를 필요한 많큼 고르게 펴주게 되고 드럼으로 토너가 전달된다. 드럼은 전사벨트 위에 놓인 용지위에 정전기를 이용하여 토너가루가 디지털 방식의 상을 토대로 용지에 뿌려주게 되며 토너가 뿌려진 용지는 정착기로 이송이 되고 정착기 내 고열의 롤러를 통과하여 토너를 굳힌다.[9]

2.6. 대한민국과 복사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복사기를 이용한 곳은 국방과학연구소이다. 1970년대 초에 번개 사업[10]을 진행하는데, 청와대국방부 등 관련 기관들에 올릴 보고서 사본을 만드는 게 나름 큰 문제였다고 한다. 아직 한국 정부와 제록스 사이에 복사기 임대차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대여도 불가능한 시기였다. 다행히 미군에서 자기네 사무실 복사기를 빌려주어 큰 차질은 없었다고 한다. 개발 일화 참고.
이후 1974년 7월에 일본 후지제록스와 한국 동화산업이 50 대 50 합작으로 코리아 제록스(현 한국 후지제록스)를 설립하였으며, 설립 1년 후인 1975년 12월에 대한민국 최초의 복사기(건식 보통용지 복사기 PPC X-2200)[11]를 생산한 이후부터 한국에도 복사기가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다만 상기의 서술은 부정확한 부분이 있거나 '건식 보통 용지 복사기'에 한정한 언급일 수 있다. '신도리코'의 기업 역사에 관련한 기사 등을 참고할 때 한국에 복사기가 처음 소개된 때는 1950년대, 정식 수입 유통 및 국내 생산은 1960년대로 봐야 하므로 1970년대 초반이 처음일 수 는 없다.

3. 직장인과의 관계


'''없으면 정말 곤란하지만, 자주 고장 나서 짜증을 선사하는 애매한 관계.'''
사무직 한정으로 복사기는 정말 언제나 찾게 되는 기계이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거나, 홍보물을 뿌릴 때도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지금 당장''' 많은 양의 자료를 복사하여야 할 때, 그냥 위에 끼워 놓고 돌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처리가 되기 때문.
그런데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복사기는, 사람들이 거의 혹사 수준으로 계속 사용하다 보니 '''자잘한 고장이 정말 자주 난다.''' 뭐 자잘한 고장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용지 걸림 내지는 토너 부족 등의 문제인데, 대부분의 이용 목적이 '''신속한 복사'''이다 보니 이렇게 걸릴 때마다 깊은 빡침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상사를 둔 부하 직원일수록 복사하다가 이런 식으로 고장이 나 버리면 너무나도 빡친 나머지 기계를 걷어차기도 한다.(...) [12]
저렴한 대체제인 복합기가 등장한 이후, 소규모 사무실에서는 따로 복사기를 두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무실의 필수 요소로 불릴 정도로 사무직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전자기기이다.
여담으로 사진을 출력할 때 일반 보통용지가 아닌 포토용지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복사기는 반드시 '''복사기 전용 포토용지'''를 사용해야 한다. 잉크젯용 포토용지를 사용하는 경우 내부 부품이 손상되어 교체까지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기본 수십에서 수백만원 이상의 수리비용이 발생될 수 있다. 이를 본인이 책임을 지게되는 일이 없도록 꼭 숙지하자 [13]

3.1. 복사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치방안


'''원고이송장치를 통해 복사를 했는데 줄이 생겨요'''
보통 평판 복사기 위에 있는 장치를 원고이송장치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종이가 들어가 평판 스캐너를 거쳐서 복사가 이루어진다. 보편적으로 좌측 작사각형으로 길쭉하게 생긴 유리 부분이다. 여길 원고가 스쳐지나가면서 스캔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리부분에 이물질이 함께 상이 잡히므로 출력물에 줄이 생긴다. 길쭉한 유리 부분을 깨끗하게 청소하면 해결된다.
''' 컴퓨터에서 문서를 출력시 점 같은게 같이 찍혀나와요 '''
드럼이나 대전롤러쪽에 이물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해당 복사기의 서비스센터에 연락하여 조치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 종이가 자주 걸려요 '''
종이에 습기가 차거나 두께가 얇은 저품질의 용지를 사용하는 경우에 걸릴 수 있으므로 용지를 바꿔서 시도하면 되고 바꿨는데도 계속 걸린다면 서비스센터에 연락하자.
''' 상장 용지, 두꺼운 용지, 라벨지를 쓰는데 이상하게 출력이 됩니다 '''
복사하는 경우 복사기 메뉴에서, 컴퓨터에서 출력하는 경우 컴퓨터 인쇄설정에서 두꺼운 용지를 선택하고 출력하면 된다.

4. 주요 제조회사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회사로는 HP, 교세라, 캐논, 제록스, 코니카미놀타 등이 있다. 대체로 복사기의 경우 프린터와 다르게 일본기업들이 점유율을 많이 차지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도 어느정도 잡아먹는 편[14]

5. 유지보수


복사기 역시 프린터와 마찬가지로 유지보수가 필요한 장비이다. 다만 프린터와 다른점이 있다면 일단 부품이 많고 일정 수명이 되면 교환을 해야하는 소모성 부품이 많으며 대표적으로 토너, 드럼, 정착기, 현상기 등이 있다. 보통 토너를 제외한 부품들은 30만장 이상은 기본[15]으로 버티며 제조사에서 정한 출력매수 기준에 따라서 보증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각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기준을 넘지 않을시 특이사항이 없다면 무상교환을 해준다. 복사기는 재생토너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지만 프린터와 달리 많은 부품을 거치다보니 성분이나 성질이 틀린 타사 토너를 사용하면 내부 부품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인쇄품질이 저하가 될 가능성이 크다.

6. 기타


이런 복사기를 쓰는 사람들도 모르는것이 있는데 바로 복사기 안에는 하드디스크SSD가 들어가 있다. 10년 이내에 나온 대부분의 복사기에는 들어가 있고 용도는 복사기 부팅 펌웨어를 읽어들여서 기동하고 여기서 어떤 문서를 복사해갔는지 로그를 기록하는 용도, 대량 복사시 버퍼 역할도 하며 일부 기종은 네트워크 연결을 통한 간이 NAS 기능도 지원한다. 게다가 공공기관 및 보안시설에서 요구되는 데이터 암호화를 지원하기도 한다.
[1] 참소리 박물관에서 판매중인 도록에서 참고했다.[2] 일종의 비영리 기관이었다.[3] 제록스의 전신[4] 여담으로 IBM은 이때 "건식 복사기 시장은 가능성이 없다"라는 컨설팅을 받았는데, 이것이 20세기 가장 최악의 경영 컨설팅 사례로 남게 된다.[5] 만일 색 선이 필요하면 예전과 같이 G펜과 유사한 펜으로 셀전용 물감을 셀 앞면에 칠하였다.[6] 양면도 가능하다[7] 캐논의 iR7105의 경우, '''105ppm'''이라는 흉악한 속도를 자랑한다.[8] 피니셔라고도 부름[9] 용지를 굽는다고 보면 이해가 쉬우며 금방 출력된 출력물을 만지면 따뜻한 이유도 이때문.[10] 보병용 소화기와 대전차로켓 등의 중화기를 국산화 하는 사업이었다.[11] (세계 최소, 최신형인 XEROX 2200, 1975년 7월 14일 매일경제신문 1면 광고) 광고에는 11월부터 국내에서 생산개시라고 기재되어 있었다.[12] 그리고 이건 만국 공통인지 외국산 고전 게임인 Free Enterprise에서는 직원의 성격을 급하게 해 놓을 경우 복사기나 기계를 걷어찬다(…).[13] 복사기 1대만 하더라도 수백만원에 달하며 고속 출력 복사기의 경우 1000만원 이상이다......[14] 우리나라 특성상 브랜드 인지도도 높고 A/S가 잘 되는 편이지만 유지보수 비용이 일본기업 복사기 대비 많이 나가는 편이긴 하다.[15] 교세라 흑백 복사기의 경우 100만장까지 버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