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언

 


Robert Owen
(1771년 5월 14일 ~ 1858년 11월 17일)

1. 개요


'''인간은 환경의 창조물이다.'''

로버트 오언

프랑스의 공장주, 사업가, 유물론자, 사회개혁가로 공상적 사회주의의 대표격 인물로 손꼽힌다.

2. 생애


웨일스 북부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사업적으로 성공하여 많은 자본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동업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인근 뉴래너크(New Lanark) 산골에 공장을 인수해[1] 작은 공동체를 건설했었는데 당시에는 드물게 방이 둘씩 달린 깨끗한 방의 노동자 가옥 숙소를 제공했으며 10세 미만 어린이는 결코 노동에 투입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도 받게 해주는 등 당시 기준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울 정도의 매우 넉넉한 근로복지를 제공하였다. 또한 이 실험적 공동체는 노동자들의 '즐거움' 유지를 중요시 생각했는데 네크에이션 행사, 음악 콘서트, 댄스파티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강압적인 규율을 많이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열심히 일했고 한다. 그래서 오언 막대한 이윤을 얻어 사업적으로 더욱 성장하였다.[2] 당시 인민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은 '자애로운 오언 씨'였다고.
그러나 동업자들과 종교적인 신념으로 갈등을 빚자 점차 뉴래너크 공장에 흥미를 잃었고 지분을 모두 팔고 미국으로 이주해서[3] 뉴하모니(New Harmony)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공장을 짓고 사업을 했으나 2년도 채 안되어 실패했고 전 재산의 80%를 잃게 된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화폐제 폐지 등 급진적인 주장을 포기하고 생산자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조합들도 대부분 실패했지만 그의 소비자협동조합은 살아남아 후일 영국 노동당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3. 사상


오언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귀족이나 자본가에 의한 독재와 다를게 없다고 보아 부정적으로 보았다.
오언은 반자본주의자였다. 자본주의를 탈피한 대안공동체 운동과 '대안 화폐' 운동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오언 자신도 자본가보다는 사업가로 종종 칭했다. 물론 현대 기준으로 보면 오언은 아주 반자본주의자라기 보다는 좋은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기업인, 협동조합 운영가 정도겠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 노선도 반자본주의로 간주되었고 오언 본인도 자본주의를 반대했다. 노동자 협동조합을 지지했고 사업가 개개인이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 노동자 자주경영 시스템을 이상적인 기업 운영 방식으로 보았다.
최초로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래서 '''최초의 근대적 사회주의자'''로 불린다. 또한 생시몽, 푸리에와 함께 3대 공상적 사회주의자이다.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전세계 협동조합 설립운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 원래는 데이비드 데일(David Dale)라는 자본가가 운영하던 공장이였는데 아이들마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13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당시에는 거의 당연시되었던 착취적인 공장이였다.[2] 해당 공장들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3] '이주'는 맞지만 '이민'은 결코 아니다. 영국인 신분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