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독재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1. 개요
마르크스주의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체제이다. 노동자 대중(프롤레타리아)이 사회의 전부가 되며, 노동자는 능력만큼 일하고 전위당이 최소한의 필요에 따라 분배하며, 전위당이 생산 수단을 일시적으로 소유하며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증대에 집중하는 '사회주의' 체제이다. 이는 일국의 혁명이 성공하면 일국내 계급간 모순은 해소되지만 국제적으로는 모순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혁명의 방어와 확장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개념이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노동자 민주주의 등으로도 불린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근거는 마르크스의 1875년 저서, 고타강령초안비판에 있다. 또 '''당'''을 통해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을 런던 협의회에서 하였고 이는 레닌에 의해 전위정당론으로까지 발전한다.
2. 상세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이다.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1852년 3월 5일)"에서 마르크스는 '내가 새롭게 하였던 것은 (1)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발전에 있어 특정한 단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되게 된다. (3) 이 독재 자체는 오직 모든 계급의 폐지와 무계급 사회로의 이행을 수행해 간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어느 곳에서도 그 개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다. 그는 《계급투쟁》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영구혁명의 선언, 계급차별의 완전한 철폐를 향한 도상에 있어 필요한 중간 지점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3장)를 의미하는 것으로 말하였고, 또 《고타강령초안비판》에서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의 사이에서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에 놓여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이행에 상응하는 기간이 있고 이 기간에 있는 국가는 오로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만을 취할 수 있다.'(4절)고 말하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이러한 것들 외에 다른 내용은 더 이상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개념에 의해 그가 의도하였던 것을 정립시키려 한 중요한 저서, 즉 1871년의 파리코뮌에 대하여 쓴 소책자인 《프랑스 내전》이 있다. 마르크스는 후에 코뮌은 '단지 예외적인 조건에서의 도시봉기'이고, '코뮌의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다.'(1881년 2월 22일, 도멜라 뉴벤휘스에게 보낸 편지)고 하였다.
1891년 《프랑스 내전》의 독일어판 서문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와는 반대로 '파리 코뮌을 살펴보라.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정당한 주장이다.'라고 말하였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파리 코뮌[1] 의 의의는 이전의 모든 혁명들과는 달리 국가 기구를 분쇄하는 것에 착수하여 권력을 인민에게 부여하였으며,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행사되었던 '모든 발의권은 코뮌의 수중'에 놓여지게 되었으며, 코뮌의 평의회는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그들 대부분은 '물론 노동자이거나 노동계급의 승인된 대표자들이었다.'는 데 있다.
'코뮌은 의회 집단이 아니고 노동집단이며 동시에 전문적인 입법부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을 제거하고 저항하는 군대를 진압하며 무장한 인민들로 대체하였다.' 그 외에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행정장관이나 재판관도 선출되어 책임을 지고 소환될 수 있었으며,' 모든 공공사업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시행되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코뮌의 헌법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기식하면서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한, 국가가 흡수한 모든 지배력을 사회 조직체에 복귀시켰다.(《프랑스 내전》3장)고 말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코뮌을, 노동계급에 권력을 부여하고 가능한 한 직접 민주주의에 접근시키기 위한 정권을 만들어 내려는 하나의 시도로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에 있어서 이 점은 지금까지 부르주아에 의해 행사되었던 종류의 헤게모니를 프롤레타리아트가 행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놓여져 있는 통치의 현실적 과제를 짊어진 정권의 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이 실제로 통치하고,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수행되어 왔던 많은 과제를 완수하는 정부의 한 형태라고 그가 의미했던 바를 말뜻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2]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구체화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최초로 성공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정권의 한 형태임과 동시에 정부의 한 형태라는 두 가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견해는, 파리 코뮌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에 면밀히 근거하여 1917년 10월 혁명 직전에 쓰여진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볼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제시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계급없는 사회의 과도기적 단계였다. 혁명으로 자본가가 타도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프롤레타리아(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독재는 원론적으로는 '1인 독재'나 과두제의 의미가 아닌 '견제 세력이 없는 통치체제'에 가까운 의미이다.
사회주의의 미래상은 스탈린주의식 독재나 관료주의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회였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제체제에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이 보장된 사회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체제[3] 로 가는 하나의 수단일 뿐 그것이 목적이나 결과는 아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언젠가는 이 사회주의 체제(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생산수단을 인민들에게 균일하게 분배하고 해체되어, 권위가 없고 누구나 생산수단을 갖추어 착취당하지 않고 개인이 노동한 만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3. 변질
그러나 현실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이 완전히 해소된 공산주의 체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어 흔히 생각하는 '과두정 독재'[4] 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현실에서 '과두적인 독재'로 나타난 것이 러시아 혁명이 고립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상정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노동자 계급은 정권을 잡아도 개인적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집단적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고 나면 최종적으로 '다수에 대한 소수의 억압' 구도가 혁파되고 노동자들 스스로가 생산자이자 권력자로서 사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혁명이 고립되는 바람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반에서 관료 집단이라는 이상한 곰팡이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가 관료집단에 의한 비민주적 독재 체제로 변질된 채 세계 각국에 이식된 것이다. 클리프주의자,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도 뭣도 아니고 다른 자본주의 체제와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변질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현실에 나타난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중 이 최종 단계까지 간 국가는 역사상 전무하며 소련을 포함해 대부분 프롤레타리아 독재(사회주의 체제 이전 단계)에서 그것이 이상하게 변질되거나 왜곡된 채로 막을 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은 스스로 이 최종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주장하나 현실의 북한과 이 최종 단계와의 유일한 공통점은 국가가 배급을 안 한다는(...) 것이다.[5]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논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마르크스와 바쿠닌이 갈라선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단계에서 공산당이 통제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바쿠닌은 그렇게 강력한 권력을 집중시킨 뒤에 국가가 소멸되는 단계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인 믿음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것이다.[6] 더욱이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설된 곳은 모두 후진국이었는데 이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이후에 탄생한다고 주장한 오리지널 마르크스 이론과는 모순된다. 이를테면 기술 발전에 따라 점차적으로 생산력은 증가하는데 이윤을 만들어 내는 시장의 증가는 그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가 체제 불만을 가진 노동계급이 형성 되면서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것이다.[7] 따라서 이들 국가는 우선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적 이론에 따라서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으니 먼저 후진국을 선진 산업국가로 만들기 위한 개발독재를 행하는 절차를 시행했고, 자연히 그 중간단계가 무한히 연장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사실상 이미 망해서 사라진 소련 같은 나라들과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무한히 연장된 중간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반사회주의적인 논자들이나 우파 자유주의자들 중에서는 견제 장치가 불충분하거나 견제 세력이 미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 자체가 '과두정 독재'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좋은 사상이었는데 몇몇 놈들이 이상한 식으로 써먹어서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면 우파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처음부터 글러처먹은 정치체제'로 요악할 수 있다. 민주집중제 참조.
[1] '마침내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성취한 가운데 발견된 정치형태', 《프랑스 내전》3장[2]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다른 말로 부르주아 독재라고도 부른다.[3]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계급이 소멸된 사회'[4] 마오쩌둥, 시진핑 시기의 중국이나 현재의 북한같은 경우에는 거의 완전한 1인 독재[5] 소련에서는 오히려 배급을 비정상적인 제도로 봤다. 소련에서 배급제가 시행된 건 1930년대 집단농장화 중 2년과 독소전쟁 기간밖에 없다. 북한은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시절에도 배급제를 운영했는데, 지금은 줄 게 없다.[6] 마르크스가 당을 중시한 반면, 바쿠닌은 노조를 중시했다.[7]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해서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인 측면을 드러내야 한다는 '좌파 가속주의'(left-accelerationism)라는 신종 정치사상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