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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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46년 10월 11일 벨기에 리에주 근방 로쿠스에서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영국-하노버-네덜란드 연합군이 맞붙은 전투. 프랑스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벨기에 전역을 장악한다.
2. 배경
1745년 5월 11일 퐁트누아 전투에서 국본군을 격파한 모리스 드 삭스 원수는 투르네 요새를 성공적으로 공략했다. 이후 영국에서 자코바이트 반란이 일어나서 대륙에 있던 영국군이 대거 철수하자, 모리스 원수는 이 틈을 타 1745년 겨울에 공세를 개시해 류벤, 브뤼셀, 안트워프를 공략했다. 1746년 6월 일부 병력을 이끌고 대륙으로 파견된 존 리고니어 경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리스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12만 명이 류벤에 주둔하고 있었고, 콩티 공작이 이끄는 또다른 프랑스 군대는 뮤즈 강 상류에 위치한 곳에서 샤를루아를 위협했다.
이에 네덜란드, 영국, 하노버 헤센군이 연합한 국본군은 1746년 7월 12일 로트링겐 공작 카를 알렉산더의 지휘하에 샤를루야를 지키기 위해 남서쪽으로 진군했다. 이 소식을 접한 모리스 원수는 1746년 9월 25일 류벤에서 출격해 뫼즈강을 따라 국본군으로 진군했고, 샤를루야는 콩티 공작의 공세로 인해 함락되었다. 국본군은 샤를루야를 지키지 못하자 리에주를 지키기 위해 자르 강을 건너 리에주에서 북동쪽으로 10마일 떨어진 로쿠스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프랑스군을 저지하고자 했다. 이에 모리스 원수가 12만 대군을 이끌고 이들을 공격하면서 로쿠스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오스트리아-영국-하노버-네덜란드 연합군
- 총사령관: 로트링겐 공작 카를 알렉산더
- 부사령관: 카로이 요제프 바트야니, 존 리고니어 경, 발데크 왕자
- 병력: 80,000명
3.2. 프랑스군
- 총사령관: 모리스 드 삭스 원수
- 부사령관: 가스파르 드 클레르몽-토네르, 콩타드 후작 루이 조르주 에라스므
- 병력: 120,000명
4. 전투 경과
존 리고니어 경이 이끄는 영국, 하노버, 헤센 부대는 보병 12개 대대, 기병 5개 대대, 드래곤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리에주 외곽의 3개 마을과 로쿠스를 중심으로 국본군의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하노버 기병 2개 연대가 우익에 배치되었고, 좌익엔 영국 기병 3개 대대가 배치되었다. 네덜란드군은 로쿠스에서 리에주 교외까지 펼쳐져 군대의 좌익에 배치되었으며, 오스트리아군은 에닉, 슬린스, 펙시 마을을 근거지로 삼아 자르 강 쪽으로 이어지는 대열을 구축하며 아군의 우익에 배치되었다.
1746년 10월 10일, 모리스 원수의 군대는 성 뜨루도에서 진군해 자르 강을 건너 리에주를 향해 나아갔다. 그날 밤 프랑스군은 리에주 외곽에 진을 쳤고, 국본군은 프랑스군에게 압도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그들의 보급물자들을 뫼즈강 건너편으로 운송시켰다. 다음날인 10월 11일, 프랑스군은 밤새 비가 와서 짙은 안개가 낀 상황에서 보병 8개 군단과 기병 4개 군단을 결성해 리에주로 진격했다. 모리스는 국본군 중 제일 약한 네덜란드군을 집중 공격하면서 영국과 하노버-헤센군에게도 견제 공격을 가할 작정이었고, 오스트리아군에 대해서는 그들을 묶어놓기 위한 별도의 병력만 남겨놓고 공격은 가하지 않기로 했다.
적이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발데크 왕자는 전투 대형을 재배치해 다가올 적의 공세에 대비하게 했고, 리고니에 경은 로쿠스 마을의 방어를 맡고 두개의 영국군 포대를 양 측면에 배치시켰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자, 모리스 원수는 로쿠스 마을과 네덜란드군이 장악하고 있는 마을들에 대한 공격을 집중시켰다. 오후 3시경, 프랑스군과 네덜란드군은 앙체 마을 주변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영국과 하노버, 헤센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는 로쿠스 마을에 대한 프랑스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52개 보병 대대는 로쿠스 마을 일대에 투입되었고, 프랑스군 대포 36문이 로쿠스 마을을 향해 집중 포격했다. 결국 로쿠스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 하노버, 헤센 8개 대대는 적의 압도적인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30분 만에 쫓겨났다.
이에 예비군으로 남겨져 있던 영국군 2개 대대가 투입되어 프랑스군의 공세를 저지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리고니에는 발데크 왕자에게 로쿠스 마을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한 뒤 전투 전에 합의한 대로 뫼즈 강을 향해 철수했다. 네덜란드군은 프랑스군의 3번에 걸친 공세를 힘겹게 물리쳤지만 영국, 하노버, 헤센군이 물러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뫼즈강으로 철수했다. 이후 프랑스 보병대는 로쿠스 마을을 장악한 뒤 적을 추격했으나 영국과 하노버 드래곤 부대의 습격을 받고 다시 마을로 내몰렸다. 그 사이 영국군과 하노버, 헤센군은 자스트로 장군 휘하의 리에주 수비대에 가담했다. 또한 마스트리히트에서 파견된 영국군 2개 대대와 로얄 스코틀랜드 보병대가 후방으로 물러난 네덜란드 연대를 대체하기 위해 좌익에 새로운 대열을 형성했고, 우익엔 오스트리아 진영에서 파견된 경기병대가 배치되었다.
이윽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네덜란드, 영국, 하노버, 그리고 헤센 연합군은 세 개의 다리를 지나 뫼즈강을 건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군 역시 자르 강을 건너 마스트리히트로 진군했다. 모리스 원수는 적을 추격하지 않았고 적이 버리고 간 리에주로 진군했다. 이리하여 로쿠스 전투는 프랑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5. 결과
국본군은 이 전투에서 5천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프랑스군은 9천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이후 국본군은 마스트리히트로 철수했고, 모리스 원수는 리에주 장악을 달성하고 벨기에 전역을 석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