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조르주 에라스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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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군인. 콩타드 후작. 7년 전쟁 시기 크레펠트 전투 패배 후 물러난 클레르몽 백작 루이 드 부르봉-콩데의 뒤를 이어 프랑스군 총사령관이 되었으나 민덴 전투에서 연합군에게 패배한 뒤 사임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콩타드 후작은 1704년 10월 19일 앙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스파드 데 콩타드 후작과 잔 마리 크리스핀 데 라 샤보셀라예의 아들이었다. 1720년 군대에 입대한 그는 1724년 10월 마리 프랑스와 망공과 결혼했고 1734년 3월10일 플랑다르 보병대 대령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준장으로 승진했다. 1740년 1월 1일, 콩타드 후작은 소장으로 승진했고 1745년에 중장으로 승진했다. 1746년 10월 11일 로쿠스 전투에 참가하여 아군의 승리에 일조했다.
2.2. 7년 전쟁
1757년 7년 전쟁이 발발한 뒤, 콩타드 후작은 데스트레 백작 루이 샤를 세자르 르 텔리어 원수의 지휘하에 프랑스군의 하노버 침공 작전에 참여했고 그해 7월 26일 하스텐벡 전투에서 중앙 보병대 제1선을 지휘해 아군의 승리에 일조했다. 1758년 1월, 콩타드 후작은 라인 강의 루이 요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해 7월 크레펠트 전투에서 콜르레몽 백작 루이 드 부르봉-콩데가 지리멸렬한 지휘력으로 인해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에게 패배한 후 사임하면서 콩타드 후작이 대신 프랑스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758년 8월, 콩타드 후작은 라인강을 도하하여 독일 서부 침공 작전을 진행하는 동시에 헤센에서의 수비즈 공작 샤를 드 로앙의 공세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전황은 11월 중순에 교착 상태에 빠졌고, 콩타드 후작은 프랑스군을 라인강 서쪽 둑의 겨울 숙영지로 철수시켰다. 1759년 1월, 콩타드 후작은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하였고 2월 2일 성산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그해 6월에 헤센 침공을 진행하여 7월 중순에 민덴 시가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1759년 8월 1일 민덴 전투에서, 그는 시종일관 형편없는 지휘력으로 일관하다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에게 참패했다. 이 전투 직후 콩타드 후작은 프랑스군의 지휘권을 브로이 공작 빅토르 프랑수아에게 넘겨주고 군직에서 물러났다.
2.3. 말년
1763년, 콩타드 후작은 알자스 방면군 사령관으로 발탁되어 1788년까지 직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1788년에는 로렌 주지사가 되었으나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후 축출되었다. 이후 말년을 조용하게 보내던 콩타드 후작은 1795년 1월 19일 리브리에서 사망했다. 향년 9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