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더만

 

Richard Clayderman
1953년 12월 28일 ~
[image]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생애
3. 데뷔
4. 이후의 활동
4.1. 콘서트 투어
4.1.1. 일본
4.1.2. 중국
4.1.3. 한국
4.2. 다른 연주자와의 협업
4.2.1.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
4.2.2. 제임스 라스트
5. 대표곡
6. 여담


1. 개요


프랑스피아니스트.
본명은 '''필리프 파제'''(Philippe Pagès)이다. '리차드 클레이더만' 이라는 예명은 1977년에 데뷔 음반을 취입하면서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자신의 본명이 잘못 읽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조모의 성(姓)으로 개명한 것이다. 'Richard Clayderman'을 '리차드 클레이더만' 혹은 '리처드 클레이더맨'이라고 읽은 건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며, 프랑스어식으로 읽으면 '리샤르 클레데르만'[1]이 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피아니스트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낭만적이고도 섬세한 특유의 연주로 무수히 많은 팬들을 확보했으며, 앨범 총판매고가 무려 7천만 장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1953년 파리에서 피아노 교사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리차드가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6세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모국어보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고 한다. 12세 때 파리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에 입학해 16세 때 수석으로 졸업하는 등 피아노 신동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이라던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클래식 피아노 연습을 때려치우고 친구들과 함께 락그룹을 조직하여 청소년 시절의 왕성한 혈기를 발산한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돈은 장비를 구입하는 데 써야 했어서 끼니는 샌드위치 하나로 버티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17세 때는 위궤양에 걸리는 등의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70년경, 아버지가 중병으로 더 이상 자신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없게 되자, 반주 및 세션 연주자로 나서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즈음 프랑스의 락 뮤지션 미셀 사르두(Michel Sardou), 자니 할리데이(Johnny Halliday)등의 피아노 세션을 맡으며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부터 그는 대중음악 뮤지션으로의 변신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다.

3. 데뷔


1976년, 작곡가 폴 드 세느빌(Paul de Senneville)[2]은 갓 태어난 둘째딸 아들린(Adeline de Senneville)를 위해 작곡한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를 연주해 줄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었다. 이 때 델핀(Delphine)음반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던 작곡가 올리비에르 투생(Olivier Toussaint)은 리차드에게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하였고, 이 계기는 리차드의 인생을 바꿔 놓게 된다. 20여 명의 쟁쟁한 지원자들이 참가한 오디션에서 무명의 리차드가 등용되었는데, 세느빌은 후에 "리차드의 수줍어하면서도 겸손한 그리고 리차드만의 연주 스타일, 또한 그의 공손함과 친절함에 이끌렸으며, 좋아하게 되었고, 우리[3]는 결정에 망설임이 없었다" 고 말하였다.
이듬해인 1977년, 클레이더만은 데뷔앨범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는 특히 타이틀트랙 ‘Ballade Pour Adeline’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60세 되던 2013년의 영상
특히 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Ballade Pour Adeline>는 세계적으로 무려 7백만 장이 팔려나가는 대성공작이 되었다. ‘Ballade Pour Adeline’는 아직까지도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대표곡으로 널리 인지되고 있으며, 20세기 가장 크게 히트한 연주곡 중 하나로 꼽힌다.

4. 이후의 활동


이후, 상술한 두 작곡가의 공동 혹은 단독 작업에 의한 작품들과 더불어 클래식, 영화음악, 샹송, 팝송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편곡 작품들의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엄청난 인기를 유지하였으며, 1984년에는 앨범 'Amour'로 빌보드 차트에도 진입하는 한편 뉴욕에서 공연을 가지며 미국시장 진출을 꾀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 영부인인 낸시 레이건(Nancy Reagan)여사로부터 “로맨스의 왕자”라는 극찬을 얻어내게 된다.

4.1. 콘서트 투어


1979년부터 시작한 콘서트 투어[4]는 2017년 기준 아프리카와 몇몇 국가[5]를 제외한 83개 국가에서 2,550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을 들여다 보면 몇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은 일본과 중국에서 유난히 많은 콘서트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주권이 있는 독일(304회)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영국(116회)에 집중돼 있고, 클레이더만의 모국인 프랑스에서는 54회에 불과하다. 그 외에, 40여 년동안 단 1회만 했던 국가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20회 이하에 머무르고 있고 50회 이상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그의 인기가 지역적으로 편중된 듯한 인상이다.

4.1.1. 일본


일본에서의 인기가 상당했는지, 1981년에 TV에 출연하여 일본인 가수와 듀엣으로 연주하였으며#, 1983년 고라쿠엔(後楽園) 경기장[6]에서 공연을 가졌다.
#고라쿠엔 경기장 실황연주곡 중 Ballade Pour Adeline
이후에도 자주 방일하여 연주회를 가졌는데,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017년 기준 무려 735회(!)로 기록돼 있다. 아마도 1979년 처음 콘서트 투어를 시작한 후로 가장 많이 들렀던 국가일 듯.. 그만큼 일본에서의 인기가 높음을 증명하고 있다. 클레이더만은 일본 팬들을 위하여 엔카(演歌)도 연주하여 일본 내에서 음반을 출반하였다.[7]

4.1.2. 중국


1987년에는 TV중계로 무려 8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다고 전해지는 중국 공연을 가짐으로서 자신의 인기가 갖는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2017년 현재 중국 공연 횟수는 355회).

4.1.3. 한국


한국에는 1989년 처음 방한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이후 방한할 때마다 장소를 다양화하여 서울 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 도시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한국 공연 횟수가 2017년 기준 31회로 기록돼 있다.

4.2. 다른 연주자와의 협업



4.2.1.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


1988년,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기타리스트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와의 협업으로 '열두 별자리 교향곡(Zodiacal Symphony)' 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열두 별자리 교향곡 중 '사자(Leo) 자리'

4.2.2. 제임스 라스트


1990년에는 또 다른 경음악의 거장인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와 함께 연주활동과 음반 작업을 하기도 하였으며, 1992년 'Together At Last' 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다시금 큰 화제를 모은 그는, 이후로도 활발한 녹음 및 공연활동을 전개하며 지칠 줄 모르는 의욕을 보였다.
#리차드 클레이더만 & 제임스 라스트-날개를 지나는 바람(Wind beneath my wings)
이처럼 활발한 활동으로, 그는 무려 267개의 골드 디스크와 70개의 플래티넘 디스크를 보유한 대형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5. 대표곡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
#야생화(Les Fleurs Sauvages)
#노스탤지(Nostalgy)[8]
#숲속의 작은 길(Promenade dans Les Bois)
#가을의 속삭임(A Comme Amour)[9]
#별밤의 피아니스트(Lyphard Melodie)
#어린시절의 추억(Souvenirs D’enfance)[10]
#꿈속의 웨딩(Marriage d'Amour)[11]
#기쁨의 눈물(Les Larmes de Joie)
#슬픔의 꽃다발(Premiers Chargrins)
#어머니에게 쓴 편지(Lettre à Ma Mére)
#사랑의 협주곡(Concerto Pour Une Jeune Fille Nommée “Je T’aime”)[12]
#마음 가까이(Pres du Coeur)
#비밀의 정원(Jardin Secret)
#별의 세레나데(Serenade de L’etoile)[13]
#사랑은 핑퐁(Ping Pong sous les arbres)[14][15]
#안개 속의 달빛(Comme un Rayon de Lune)
#추억은 멀리에(Comme ils sont loin les Souvenirs)
#헝가리안 소나타(Hungarian Sonata)

6. 여담


  • 어느 피아노 판매 업자는 매해에 약 2,500여 대의 피아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 가 발표되고 나자 다음 해에는 무려 5,500대의 피아노를 팔아치웠다고 한다. 훌륭한 게임이 발매되면 콘솔 게임기 판매량이 폭증하듯, 훌륭한 곡 그 플랫폼인 피아노 판매를 견인한 것.
  •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에, 정작 프랑스에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웃 독일(당시에는 서독)에서 드라마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어 전 유럽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독일에서 발매된 싱글이 프랑스로 역수입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 국내 몇몇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의 작곡 사연이 올라와 있는데#, 사실이 아닌 누군가가 지어낸 소설일 뿐이다. 인용한 블로그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블로그 등에도 복사-붙여넣기 신공으로 올린 듯, 같은 내용들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올려져 있다. 또, 이 곡의 제목을 처음 들으면 '아들을(!) 위한 발라드'로 들린다. 이른바 '몬더그린' 현상인 듯..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곡이 아들을 낳기를 기도하는 뜻으로 작곡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설이 있기도 하다.[16]
  • 1999년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1] 프랑스어에서 ay의 발음이 /ɛ/와 /ɛ.i/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리샤르 클레'''이'''데르만'이라 하기도 한다.[2] 프랑스어에서 ille은 /j/ 발음이 나고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유'로 표기하도록 한다.(Marseille: 마르세유) 그런데 예외적으로 ville은 /vil/ 발음이 난다.[3] 폴 드 세느빌 & 올리비에르 투생[4] 일 년에 약 220여 일을 콘서트 투어로 보낸다고 한다.[5] 북한 등 공산권 국가[6] 도쿄돔의 전신. 가왕(歌王) 조용필도 이곳에서 일본 공연을 가졌다.[7] 클레이더만은 1994년 방한 때 한국 팬들을 위하여 이선희J에게 를 연주하였다.[8] 이 곡의 원곡 후반부에는 6마디의 아르페지오 스케일이 있는데, 현재 구할 수 있는 악보의 대부분은 그 아르페지오 스케일이 통째로(!) 생략되어 있다. 당연히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연주영상들도 대부분이 그 악보로 연주한 영상들이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된 유튜브 동영상의 이 곡 연주 영상도 그렇다. 아르페지오 스케일이 제대로 나온 악보는 이 유튜브 영상에 나온다. 단, 이 유튜브 영상은 후반부에 피아노 음색이 빠진 이른바 가라오케 영상이니 감상시에 유의 바람.[9] 프랑스어 제목을 직역하면 'Amour(사랑)의 첫 글자 A' 라는 뜻이 된다(포네틱 코드!?). 영미권에서 이것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하여 '사랑'이라는 의미의 Amour을 Love 로 바꾸면서 곡 제목이 또 'L for Love(Love의 첫 글자 L)' 라는 제목이 되었다. 한 마디로, 곡의 분위기와는 완전 동떨어진 제목이다. 원제와 전혀 관계없이, 분위기에 맞게 붙인 '가을의 속삭임' 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경우라 하겠다.[10] 이 곡은 '어린시절의 추억' 이라는 제대로 번역된 제목이 있는데(영미권에서도 'Childhood's Memories'라고 번역), 생뚱맞게 '사랑스러운 크리스티느' 혹은 '사랑의 크리스티나' 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결국 '어린시절의 추억' 과 '사랑~ 크리스티나'는 같은 곡이다.[11] 원어의 뜻은 '사랑의 결혼'이다. [12] 이 곡의 프랑스어 제목을 번역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어느 예쁜 소녀를 위한 협주곡> 이라는 긴 제목이 되는데(원어 제목도 길다), 그냥 간단하게 '사랑의 협주곡' 으로 표기하고 있다.[13] 이 곡에는 'Coup de Coeur'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도 하다. '마음에 든' 이라는 아리송(?)한 의미로 번역되는데, 차라리 '별의 세레나데'가 더 나아 보인다.[14]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핑퐁' 또는 '큰 나무 아래에서의 딱따구리'라는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라디오에서는 원 제목과 함께 한국어 제목을 소개 할때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핑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15] 이 곡의 인트로 후 신디사이저로 시작되는 코믹한 분위기의 연주가 8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이라면 '아하~ 그곡이 이곡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실 것이다.[16] 데뷔 항목에서도 기술했지만,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프랑스 작곡가 Paul de Senneville이 새로 태어난 둘째딸 Adeline을 위해 작곡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