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역임한 마리노 1세는 882년 12월 16일 교황좌에 착좌한다. 하지만 선출 당시 카에레의 주교였기에 한 교구의 사역자로서 또 다른 교구를 사목하기 위해 사임 한다는 전례가 없었기에 논란이 있었다. 교황이 된 후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를 단죄하고, 포르투스의 주교급 추기경이었던 포르모소를 복직시켰다. 한편 잉글랜드의 알프레드 대왕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다. 마리노 1세는 884년 5월 15일에 사망하여 1년 6개월여의 임기를 마쳤고, 하드리아노 3세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