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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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대 스테파노 8세

'''제128대 마리노 2세'''

제129대 아가피토 2세

'''교황명'''
마리노 2세(Marinus II)
'''본명'''

'''출생지'''
교황령 로마
'''사망지'''
교황령 로마
'''생몰년도'''

'''재위기간'''
942년 10월 30일 - 946년 5월
'''장례미사'''

'''문장'''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128대 교황.

2. 생애


교황령 로마 출신으로,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에는 고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인근에 있는 성 치리아코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900년 로마를 방문한 성 울다리코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마리노는 아우크스부르크에 마자르인의 침략을 받아 초토화가 된 이후에 교구장 주교로 울다리코가 서임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마리노 2세는 942년 10월 30일 로마 공작을 자처한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의 개입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의 행정 업무에 관심을 기울였고 재속 사제들과 수도 사제들의 규율을 정비하고자 하였다. 그는 마인츠 대주교 프리드리히를 교황 총대리로 임명하고 독일과 프랑스에 파견해 해당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부정을 근절시키게 만들었다. 카푸아의 주교 시쿠스가 허락없이 마음대로 해당 교구 지역 베네딕토회 성당을 침입하자 즉시 개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카푸아의 주교 시쿠스가 몬테카시노를 침입하자 그것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는 교회의 세속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규율을 정비하고 로마 성당을 복구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군주들의 전쟁을 협상을 통해 평화스럽게 끝내도록 하였다.
마리노 2세는 수도원을 총애하여 교황으로 재임하는 동안 수도원을 위한 교황 칙서를 많이 반포했다고 한다.
946년 5월에 사망했으며, 교황 아가피토 2세가 뒤를 이었다.

3. 기타


마리노 2세는 교황 요한 7세가 가이아나 궁전(Domus Gaiana) 유적지가 있는 팔라티노 언덕 꼭대기에 건축한 궁전에 거처하였다.
마리노(Marinus)와 마르티노(Martinus)라는 이름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교황 마리노 1세와 마리노 2세는 마르티노라는 이름으로 잘못 표기되어 마르티노 2세와 마르티노 3세로 불린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1281년에 선출된 새 교황이 마르티노라는 이름을 선택했을 때, 그는 교황 마르티노 4세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