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1. 개요
이탈리아 반도 중부지역 테베레 강 연안에 있는 도시로,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고, 라치오의 중심 도시다. 과거 유럽의 중심이자 세계의 수도라고 불린 도시로, 세계 역사와 문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도시이다. 현재는 잘 보존된 수많은 역사 유적들로 인해 전 세계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며, 문화와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도시의 상징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쓰여진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
'세나투스 포풀루스케 로마누스'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이라는 뜻이다.
세계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 교황청의 소재지인 바티칸이 여기에 있다. 국제법상 바티칸은 별개 국가로 취급되기는 하나 이는 세속국가로부터 교황청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고, 상당한 경우에 '로마'라는 말 그 자체가 '교황' 또는 '교황청'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이며, 역사·종교·문화적으로 법적인 로마 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바티칸 본토 외에도 로마 시내 군데군데에 바티칸 시국령으로 간주되는 성당들이 몇 개 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다.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이며, 이 덕분에 유럽 문명 사회에서는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건설한 신행정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정식 명칭이 '새 로마(Roma Nova)'였다는 것,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Третий Рим)'로 선포했다는 것은 역으로 로마 시가 서구 역사에서 가지는 위상이 어떠한지를 알게 해 준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은 거리가 좁은 편이며, 과거의 영광의 흔적인 석조 기념물들과 함께 대부분 테베레 강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2. 역사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로 정치적 권한을 지닌 황제가 없어진 로마 시는 서서히 교황의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었고, 754년부터 1870년까지는 교황령의 수도가 되었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1870년 교황령이 멸망하며 이듬해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현대의 교황령으로서 바티칸이 독립하였다. 로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2.1. 고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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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사람이 거주한 가장 오래된 흔적은 기원전 14000년경의 것으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집단이 거주하다 팔라티누스 언덕의 마을을 중심으로 여러 마을이 합쳐져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사학자들의 추측이다. 도시 로마의 기록된 역사는 도시국가 로마 왕국과 로마 공화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전통적으로 일곱 언덕의 도시로 불렸고 세르비우스 성벽이 이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후 도시가 확장되어 테베레 강 서안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때 유럽인들에게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자 유럽의 수도였다. 로마 제국이 곧 세계였으니 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영어: All roads lead to Rome, 라틴어: Omnes viae Romam ducunt)'[2] 는 속담이 로마의 위상을 말해준다.
한편 초창기 기독교에서는 로마 제국이 박해자 포지션이었으므로 악의 세력으로 받아들여져 로마 시 역시 바빌론이라는 은어로 지칭되었으나, 서기 1세기 예수의 사도인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하면서 로마는 5대 총대주교구 중 첫째로 부상하며 기독교의 중심지라는 역할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황권이 확립되어 가면서 교황의 거처로도 인식되게 된다.
사두정치 시절부터 서로마 황제들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박힌 로마 시보다는 북부의 밀라노에서 집무를 봤다. 결정적으로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의 행정수도를 기존의 로마 시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375년 훈족 침입의 연쇄 효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로마 제국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훈족의 압박을 받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은 대규모 무리를 이끌고 도나우 강을 건너서 로마 제국 영내인 트라키아로 침입하였고 378년에 로마 제국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동방 정제인 발렌스가 전사하고 동로마 중앙군이 모조리 궤멸하게되는 대참사를 겪게된다. 그 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집권해서 일시적으로 고트족과 휴전협정을 맺지만 이후 게르만족의 침입과 혼란 속에 395년 로마 제국은 결국 동서로 분열되고 말았다. 402년 서고트족의 약탈을 피해 서로마 제국은 수도를 메디올라눔에서 라벤나로 옮겼지만 서고트족은 수도 라벤나 대신 로마 시로 쳐들어가 410년 로마 약탈을 일으켰다. 이로인해 서로마 제국은 치명타를 입었고 이어 452년에는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공격을 받을 뻔 했지만 교황 레오 1세의 설득으로 회군함으로서 로마 시는 위기를 피한다. 하지만 455년 6월 반달 왕국 군대에 의해 다시 한번 침략을 받아 두 번째로 로마가 약탈당하는 사태는 교황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2.2. 게르만족의 지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잠시 동안 게르만족 출신 장군인 오도아케르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다른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의 지도자 테오도리크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제노의 사주를 받아서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이탈리아를 점령하게 되면서 이후 로마 시는 반세기가량 동고트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6세기 초 동로마 제국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동고트 왕국의 왕비 아말라순타가 귀족들의 반란으로 피살당한 사건을 발단으로 동고트 왕국과 동로마 제국은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마침 고토 수복 원정을 시행하고 있었던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를 이탈리아를 재정복할 명분으로 삼게 된다.
2.3. 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시칠리아에 상륙시킨다. 그로부터 몇개월 뒤인 536년 12월 9일에 동로마 군대가 로마 시에 입성함에 따라 서로마 제국 멸망 60년 만에 로마 시는 로마 제국의 영토로 다시 수복된다.
이후 568년에 랑고바르드족이 남하해서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함에 따라 이탈리아 내의 동로마 영토는 로마-라벤나를 잇는 회랑 일대와 남이탈리아의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 지역 정도만 남게된다. 로마 시와 라벤나 등의 중부 대도시들이 위협받자 마우리키우스 황제는 거점 방어의 용이성을 위해서 586년에 "라벤나 총독부"를 설치하고 총독을 임명해서 로마-라벤나를 잇는 회랑지역을 야만족들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려고 노력한다.
그 뒤 라벤나 총독부와 로마 시는 서방 세계에 동로마 황제가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창구로 이용되었으며 콘스탄스 2세 같은 경우에는 로마 시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거기에 가끔 로마 교황이 동로마 제국에 대항할 때마다 라벤나 총독부의 군대가 로마 시로 쳐들어가서 교황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해가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랑고바르드족이 동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속주 상당지역을 잠식해나감에 따라 이탈리아 반도내에서 동로마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교황 자카리아는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동로마 제국 본국도 아바스 왕조와 한창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를 지켜낼 만한 병력을 보낼 수가 없었고 결국 751년에 라벤나가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됨으로써 라벤나 총독부는 사라지게 되고, 동로마 제국이 로마 시에 간섭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2.4. 교황령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를 지켜낼 만한 힘이 없는 것을 본 교황은 차선책으로 비밀리에 가톨릭 국가인 프랑크 왕국에 밀사를 보내서 보호를 요청했고 피핀 3세는 이를 승낙해 북이탈리아로 쳐들어와 랑고바르드족을 격파하고, 구 라벤나 총독령 지역을 교황에게 헌납하는데 이 영토가 교황령이 된다. 이후 피핀 3세의 아들 카롤루스는 랑고바르드 왕국을 멸망시키고 북이탈리아를 점령한다. 카롤루스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할 때,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 대관식을 해주는데 이것이 신성 로마 제국의 시작이다.
로마 시는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의 지위도 잃고 고대 말기엔 이런저런 시련도 겪었지만,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도시라는 것만으로 중세 내내 서유럽 도시 중 패왕급 위상을 유지해왔다. 제아무리 강력한 세력이라도 고의적으로 로마를 공격하려면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 후술하겠지만, 그 날고 기던 나폴레옹마저 로마를 점령하자 각국 신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그의 몰락에 기여했다. 심지어 나폴레옹 때면 교황의 위상이 이미 추락한 시대인데도 말이다. 기독교 시대 교황과 로마 시는 공생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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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로마. 교황 레오 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지도 서북쪽의 San Pietro) 근처에 성벽을 쌓아 '레오의 도시'가 세워졌다.
15세기 중반 이후 르네상스기에 로마 시는 번창했으며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로마 교황령의 수도로서 성벽, 궁전, 교회 등이 건설되며 화려함을 되찾았다.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로마로 몰려들어 활동하게 되어 15세기 말에는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교황을 위한 예술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화려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는 1527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가 보낸 용병들의 침략을 받아 도시 전체가 처참하게 파괴되었는데(사코 디 로마) 이때의 피해는 서로마 제국 말기의 두 번의 로마 약탈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르네상스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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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로마.
1798년 프랑스 혁명 전쟁 당시 프랑스군은 로마에 쳐들어와서 교황 비오 6세를 납치하고 괴뢰국인 로마 공화국(프랑스 제1공화국)을 세우지만, 2년 후에 프랑스 정부는 교황령을 복원하고, 새 교황 비오 7세도 로마에서 선출되었다. 하지만 1808년 나폴레옹은 다시 로마를 점령하고 프랑스 제1제국의 직할령으로 만들어버린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간 뒤에는 빈 회의에 따라서 다시 교황령이 부활한다.
2.5. 이탈리아 통일과 현대
1849년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이 교황을 축출하고 로마 공화국(이탈리아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진압당하고 교황령이 또다시 부활하였다. 1859년부터 벌어진 이탈리아 통일전쟁 중에도 로마는 교황령의 영토였으며 1870년 교황령까지의 합병이 끝난 뒤에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잡게 된다. 1929년에는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서 로마 시 내의 바티칸 성당 구역이 바티칸 시국으로 떨어져 나갔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인 1943년에 무솔리니가 실각하고,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독일 국방군이 로마를 점령했다. 이듬해인 1944년에는 안치오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로마를 해방시키고 2년 동안 통치했었다. 그 뒤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세워지고 현재에 이른다. 2015년 1월 1일을 기해 실시된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로마현에서 로마 수도 광역시(약칭:로마 광역시)로 개편되었다.이탈리아의 광역시 참고
3. 인구
- 로마/인구 참조.
4. 경제
로마가 속한 라치오 주의 전체 GDP는 롬바르디아(밀라노)주에 이은 2위이고 1인당 GRDP는 이탈리아 전체에서 7위이지만 라치오주의 경제시설들은 대부분 로마 교외에 위치한게 문제이다. 로마 시내에는 기업 본사라든가 공장같은 생산시설은 거의 없다. 물론 로마시내가 좁아터져서 이런 생산시설 지을 장소도 없기도 하고, 로마 시내는 경주시처럼 문화유적지구이기 때문에 함부러 개발하기도 힘들다. 즉 로마 시내는 이탈리아 정부기관, 외교공관, 문화유적지로 다 가득찼다.
로마시의 1인당 GRDP는 3만 달러 정도로 대한민국의 1인당 GDP와 비슷하다. 물론 별다른 생산시설 없이 관광업만으로 1인당 GRDP 3만달러 찍는 로마가 괴물이긴 하다. 물론 관광 외에도 정부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소득이 높은 편이기도 하다.
5. 특징
이탈리아 반도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바닷가와 가깝지만 항구도시는 아니고 테베레 강을 통해서 바다와 이어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 바다이다. 대신 외항으로 오스티아가 있었다. 7개의 언덕이 서로 근접하게 위치한 지형을 하고 있으며, 늪이였던 언덕 사이를 포장하여 만든 중심지가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귀족들이 살았고 제정 이후에는 황제가 살던 팔라티노 언덕과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이 있는 카피톨리노 언덕도 있다.[3] 굳이 로마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고 시간이 없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울타리 너머나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야경은 로마 시내 야경 중에서 손꼽히는 정도로 장관을 제공한다. [4] 다만 언덕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규모와는 전혀 다르게 걷다보면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정상에 다다르는 정도의 야트막한 경사길에 불과하다.
지중해권을 주름잡던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만큼, 수천 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이다. 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이라는 명칭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너무 유적이 많아서 땅만 파면 유적이 쏟아져 나와 지하철 공사가 어려울 정도. 로마는 수도가 이전된 뒤에도 중요 도시여서 경주시보다도 훨씬 연대의 스팩트럼이 넓고 중요한 유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한 예로 B호선이 1940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55년에 완공됐고[5] A호선은 1964년에 착공하여 1980년에 개통됐다. 그나마 C호선은 로마 외곽에서부터 건설하여 속도가 빠른 편이었지만, 평균적으로는 지하철 공사에 무려 15년씩 걸렸다. 이러다 보니 1964년부터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지하철을 개통한 도시인 밀라노보다 총 연장 및 역 수가 적다.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인 관계로, 성당이 정말 많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대성당(Basilica)이 정말 많고, 그냥 길 가다가 '''어? 이게 웬 성당 문이야?'''하고 열고 들어가면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이 눈을 호강시켜 줄 것이다.
또한 도시 중에서 에우르(EUR)라고 따로 불리는 구역이 있는데, 베니토 무솔리니가 기획한 당시 신도시 구역이다. 다만 관광객들은 그쪽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도시에 유적이 집중된 테베레 강 인근 지역은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로마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정반대 쪽인 주세페 가리발디 동상이나 교황청까지 걸어서 길어야 1시간,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40분에도 주파할 수 있을 정도다.
이탈리아답게 운전 매너가 거칠다.
유명 프로축구 구단인 AS 로마와 SS 라치오의 연고지이기도 하며, 두 구단 간의 더비 경기의 열기...라기보다 살벌함은 정평이 나 있다. 경기 입장 수색에서 도끼, 칼, 심지어 사제 폭탄까지 발견된 적이 있을 정도.
여행사 단체 관광을 가면 가이드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탈리아의 주의 사항을 말할 때 "마피아"라는 말을 사용하면 버스 기사가 화를 낸다고 앞으로는 "마피아"라는 말 대신 "고구마"로 부르겠다면서 이탈리아에서는 고구마가 아주 무섭다고 주의하라고 한다.
로마의 구시가지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관광객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로맨틱'한 로마를 생각하며 방문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면 낡고 더러우며 냄새나는 로마에 실망을 많이 한다. 하지만 2,500년 동안 유지된 도시 치고는 깨끗한 편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이탈리아의 수도지만, 경제적 가치나 규모로 봤을 때는 북부에 있는 롬바르디아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 한참 밀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탈리아의 산업 기반은 밀라노, 토리노를 위시한 북부 지역에 몰빵되어 있고, 로마의 경우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다는 상징성 + 교황의 도시라는 위상 + 훌륭한 관광 자원의 메리트 덕택에 입지를 차지한 것이기 때문.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력 격차가 큰 나라다. 실제 도심지 전부가 마천루의 숲으로 들어차 있는 런던, 19세기 말에 새로이 개발하여 계획도시의 면모를 보여 주는 파리와 다르게 메인 다운타운에도 초고층의 마천루나 현대식 건물이 거의 없는 모습을 21세기 현대에도 유지하고 있다. 로마에 마천루가 거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로마 전체가 고도제한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도제한의 기준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이 같이 있다. 대만은 교황청(바티칸 시국)과 수교한 상태라 원래대로라면 바티칸 시국 내 대사관 설치해야 하지만, 바티칸 시국이 비좁은 관계로 어쩔수 없이 로마에 상주하고 있다.
5.1. 소매치기
소매치기로도 악명높은 도시다.[6] 당장 아무 포탈 및 검색 사이트로 가서 '로마 소매치기'를 쳐보면 자동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검색엔진에다 'rome pickpocket'이나 'roma pickpockets'을 쳐봐도 된다. 로마는 세계적 관광도시고 그만큼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소매치기 입장에서는 로마 구경하느라 한눈팔린 관광객은 정말 쉬운 대상이고 물건을 훔친 이후에도 로마 지리를 잘 모르고 시간에 쫓겨 오래 붙어 있을 수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서식지는 없다고 봐도 된다. 로마에 간다면 반드시 조심하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 먼북소리에서 로마에 대해서 디스하기를,
- 로마에 넘쳐흐르는 좀도둑에 대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유고 사람 집시 등을 비난하는데 본인이 보기에는 절대 다수가 이탈리아 사람들이라고. 도적질을 당할 때 도와 달라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다가 도적이 사라지면 우르르 몰려와서 도와 준다고 한다. 날치기를 당하면 그냥 가방을 손에서 놔버리라고 충고한다. 끝까지 끈을 놓지 않던 관광객이 백과 함께 끌려가다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 로마 우체국을 믿지 말라면서 2차 대전 직후 미군이 집에 보낸 엽서가 몇 십 년 후에 어딘가에 쳐박혀 있다가 배달된 사례를 소개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팩스를 많이 쓴다고. 교차증명이 되는 것이 그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 씨는 수필집에서 집에 있는 팩스로 스팸 팩스(!)가 많이 온다고 불평했다. 지금은 스팸메일이 많이 오겠지...[7]
- 이탈리아 남성들은 바람끼가 심해 예쁜 여성 만 보면 일단 돌진해 본다며 사실이라고 주장하는데, 맞는 거 같은 것이 미국 방송에서 미녀 배우를 관광객인 척하고 로마를 걷게 하자 10발자국에 한 번씩 헌팅이 들어왔다! 지나치게 과격하게 헌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 아가씨가 마침 근처에 있던 이탈리아 경찰에게 좀 도와달라고 하자, 그 경찰도 "오 이런 이쁜 미국 아가씨가~!"하고는 작업을 걸었다... --그래도 매너가 있어서 그런지 레즈비언 티를 내면 접근을 안 한다고 한다.
2015년 7월 기준으로, 로마 테르미니역 주변에는 집시 및 소매치기가 많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2016년 4월 기준으로, 파리테러 이후 더욱 증가된 군인 수와 경찰 수 덕분에 집시들이 주변국으로 분산되어버리는 바람에 쾌적한 여행까진 아니더라도 한시름 덜고 여행을 할 수 있다. 군인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나 정부 청사, 성당앞에서는 2인 1조로 총을 들고 서있기 때문에 조금은 삼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야간순찰의 정도가 강화되었는데, 치안이 안정된 곳이든 범죄 우발지역이든 경찰차와 군경차량이 적지 않게 길을 순찰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심지어 12시 가까이 되는 한밤중에도 군경찰이 철수하지 않고 공원을 지키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로마가 아닌 타 지역의 경우도 순찰의 정도가 강화되었는데, 피렌체의 경우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 순찰차로 돌며 불법 행상인들을 바깥으로 내쫒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짐을 싸들고 바깥으로 나가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빠져나가지 않는 정도. 그리고 교통시설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어 테르미니 근처뿐만 아니라 주요 지하철 역 내부에도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경우가 늘어났다.
2017년 8월 기준으로, 주요 관광지, 중심지 및 지하철 역 마다 군경차량 및 2인 1조의 군인이 무장상태로 경계를 서고 있으며, 수시로 경찰차량이 순찰하고 있어서 치안이 다소 안정된 편이다. 집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중국산 그릇이나 LED 공, 인형 등을 파는 잡상인은 그래도 많은 편이다.
로마 소매치기 예방 방법.
-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다만 지퍼가 있는 주머니는 괜찮다.
- 크로스백을 앞으로 메는 방법을 가장 추천하며, 고리에도 실핀으로 고정하도록 한다.
- 휴대폰 들고 돌아다니지 말 것. 특히 아이폰은 표적 0순위다.
- 백팩의 경우 자물쇠를 걸어 둘 것.
- 어둡고 으슥한 곳을 혼자 다니지 말 것.
6. 교통
기본적으로 대중교통 1회권[8] 1.5유로, 24시간권 7유로, 48시간권 12.5유로, 72시간권 18유로이다. 로마 패스(36유로)를 이용하면 대중교통 3일권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로마패스는 로마의 관광지 중 한곳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콜로세움+포로 로마노 통합 입장권을 로마 패스로 입장하는것을 추천한다. 가격도 다른 관광지보다 비싸고 무엇보다 긴 줄을 서지 않고 빨리 들어갈 수 있다.
6.1. 기차
중앙역은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역이고, 부수역으로 로마 티부르티나(Roma Tiburtina)역이 있다. 그런데 테르미니와 티부르티나가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하는 여행객이 많은게 문제. 더욱이 티부르티나역은 테르미니와는 달리 건물도 사람도 없이 그냥 휑하게 비어 있는 건물만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역이라 처음 티부르티나를 찾은 사람들이 적잖게 당황하곤 한다. 이 티부르티나 역이 지하철(B호선 티부르티나역)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것도 불편한데, 지하철 통로와 바로 직결된 형태로 되어 있는 플랫폼 안내를 보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에[9] 어지간하면 테르미니역을 이용하는 것이 심신에 이롭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한다.
6.2. 도로·버스
'''헬게이트가 쳇바퀴 굴리듯 데자뷰처럼 열리는 곳.''' 문화재 보호를 위해 넓지도 않은 바닥을 온통 울퉁불퉁한 돌바닥으로 깔아 놓은 것도 모자라 이탈리아 특유의 이상한 대충대충 정신에, 수많은 무단횡단으로 지연되는 시간,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이 버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10] '''편하게 가기 매우 힘들다.''' 더구나 노선 안내도 친절한 편이 아니므로 로마 지리가 낯선 여행객들에겐 더더욱 골치.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시내가 넓지 않으니 구글 지도 켜고 그냥 걸어다니는 것이 편리하다.
절대 다수의 버스가 허브 기착지로 테르미니역 앞의 500인 광장(피아짜 친퀘첸토)을 이용하므로 이곳에서 주요 노선을 기억해두면 편리하다. 심지어 이곳 인포메이션에 주요 관광지로 가는 노선 번호를 쭈욱 적어놓은 종이도 붙어 있다.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인 발권기나 정류장과 가까운 상점에서 시내버스 티켓을 사야한다. 100분 이용 기준 1.5유로. 한국처럼 교통카드 방식이 아니라 시내버스에 타면 티켓 투입구가 있다. 투입구에 완전히 넣으면 인식을 한 뒤 티켓을 돌려준다. 그때부터 정해진 시간 만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처럼 앞문에서 타서 뒷문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 가운데 문에서 타고 양 끝 문에서 내린다.
6.3. 트램
구 시가지에선 다니지 않고, 주로 신 시가지 쪽으로 뻗어 있어 관광객들이 이용할 일은 별로 없지만, 간혹 구 시가지 바깥에 숙소를 잡은 경우에 이용하게 될 것이다. 서쪽의 트램은 대부분 신식이라 깨끗한 편이나, 동쪽은 구식이 많아 더러운 편. 별도로 표 검사는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계에 넣는 시스템이다. 이는 버스와 동일.
6.4. 지하철
자세한 설명은 로마 지하철 문서로.
승차권을 먼저 개찰구에 넣어야만 하므로 무임 승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유일한 대중교통. A호선과 B호선이 있는데 살짝 시 바깥쪽으로 돌기 때문에 가는 곳이 테르미니 근처 역으로 정해져 있다. 주로 이용하게 될 역은 A호선의 플라미니오(포폴로), 스파냐, 바베리니(트레비), 그리고 B호선의 테르미니,[11] 콜로세오 정도. A호선의 테르미니와 레푸블리카는 의외로 가까워 걸어갈 만한 수준이다. 참고로 레푸블리카 역은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인해 3달간(2018.10 ~ 2019.01)폐쇄 되었었다.
그런데 더럽고 냉방·난방은 눈물만큼만 틀어 주니 답이 없을 정도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시설이 안습하였으나,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한 모양인지 현재는 버스보다는 낫다는 평. 다만 이용 방식이나 시설이나 노선망을 보더라도 같은 값의 버스가 훨씬 더 좋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겐 그다지 인기는 없는 편이다.
현지인들이 지하철을 주로 사용하고 러시 아워인 출퇴근시간에는 사람이 터져나간다.
C선은 2014년 10월 2일에 개통했다. 다만 관광객이 사용할 확률은 매우 적다.
6.5. 항공
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알리탈리아가 인천 직항편을 각각 주 3회 운항한다.
6.6. 기타
면허증이 있는 위키러라면 현지에서 스쿠터를 렌트해서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제 면허증을 소지하고 성인이라면 쉽게 렌트가 가능하다. 가격은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2017년 기준 대부분 40~70유로 정도. 확실히 자동차보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손쉽게 다니기에 좋다.
대부분 125cc급 베스파를 빌려 주기 때문에 돌아다니기에 아주 좋고, 구글맵을 이용하면 길찾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다만 700~1000유로 정도를 보증금으로 내야 한다는 부담과[12][13] , 사고를 낼 경우, 해외여행보험 등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면 헬게이트가 열리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사전에 미리 예약·결제·보증금까지 다 해결될 수 있으므로 관심이 있는 위키러라면 잘 찾아보고 활용해보자.
7. 문화유적·관광지
관광 도시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로마답게 구경거리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다만 대부분이 규모가 매우 크거나 XX 광장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도시 빈틈없이 구경거리로 꽉 차 있어서 돌아보기가 좀 피곤한 편. 좋게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곳곳이 죄다 구경거리인 게 로마의 매력이다.
- 500인 광장(친퀘첸토[22] 광장, 테르미니역)
로마 관광의 중심지.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버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버스 환승센터로서의 역할이 강하다.
- 콜로세움(콜로세오)
로마의 대표 랜드마크. 라틴어로는 콜로세움이라 읽히고 이 이름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현지어인 이탈리아어로는 콜로세오(Colosseo)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졌다시피, 투기장으로 쓰인 로마 제국 시대의 건축물이다. 상세한 것은 문서 참조. 지하철 B호선 콜로세오역 근처에 있고[23] 입장은 팔라티노와 통합 입장권을 사용하며, 가격은 12유로(2015년 1월 기준)이다.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한참 동안(거의 3~4시간)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상단에 기재되어 있는 로마 패스를 이용할 경우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아니라면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를 통하여 입장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런 가이드 투어를 모집하는 호객꾼들을 콜로세움까지 가는 내내 만나게 될 것이다.
- 팔라티노 언덕 -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옆에 있는 넓은 사적지로,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 사이에 로마제국 시대의 개선문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있다. 로마 공화국 시절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처음 선언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낮은 경사의 언덕 사이에 길을 내어 주변에 집을 지어놓은 형태로, 현재는 그 터와 발굴된 일부 구조물만을 관람할 수 있다. 팔라티노 언덕을 지나 바깥쪽으로 향하면 비로소 그럴싸한 건축물들의 집단이 등장하는데 그곳이 포로 로마노(로마 광장)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개 사적지 치고는 상당히 넓은 편.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티켓 구매 줄이 굉장히 길어지는 경우가 있으며 창구도 달랑 세 개뿐이라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잘못하면 줄 서서 기다리다가 시간 낭비하기 딱 좋으니 주의.
- 카라칼라 욕장
고대 로마의 목욕탕 유적 가운데, 그나마 잘 보존된 편. 무척 크다. 캐리비안베이 아쿠아틱 센터의 두 배 크기다. 특히나 욕탕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 장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므로, 약간의 상상력만 펼칠 수 있다면 고대 로마의 목욕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다만 위치가 약간 애매한데, 걸어가자니 멀고 버스를 타자니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 그래도 저 멀리 외따로 떨어진 것은 아니므로,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걸어서 왕복해도 충분하다. 혹은 갈 때는 버스를 타고 다른 관광지로 갈 때는 걸어가는 것도 방법. 아니면 차라리 테르미니역에서 714를 타면 바로 앞에 내려준다. 여름에 이곳을 간다면 야외 오페라도 볼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월드컵 당시 그 유명한 3 테너가 이곳 카라칼라 욕장에서 전야제로 공연을 펼쳤다.
-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앞(공화국 광장 = 레푸블리카 광장)
카라칼라 욕장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의 목욕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교회도 들어서는 등 이래저래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는 목욕탕 유적이라기보다도 기차역인 테르미니역 바로 앞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지만, 욕장 내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있으므로 로마의 역사에 애정이 있는 분들은 들어가보자. 레푸블리카 광장에 크고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레푸블리카 광장이 테르미니 역과 굉장히 가까워서 처음 보게되는 분수가 이 분수라면 입이 쩍 벌려지면서 놀라겠지만 로마에는 분수가 매우 많다. 여기 분수도 당신이 보게될 수많은 분수 중 하나일 뿐이다.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 한때 군주정하에선 궁전이었으나 세계 2차 대전 이후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지금의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오전에 개방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른 나라 관저와 마찬가지로 어지간하면 들어가기 어렵다. 매일 오후 3시에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기 때문에 지금도 '퀴리날레'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퀴리날레 궁전을 방문하려면 언덕을 올라가야하는데 언덕위의 계단까지 올라가면 넓고 휑한 광장이 있고 오벨리스크와 분수대가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트레비 분수 근처에 있기 때문에 트레비를 방문하고 퀴리날레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이곳에 오면 정말 넓고 휑한 광장밖에 없어서 화려한 궁전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 있다.
- 트레비 분수(폰타나 디 트레비, Fontana di Trevi)
말 그대로 "삼거리 분수"라는 의미. 베네치아 광장에서 판테온으로 가는 방향으로 약간 골목 안쪽 들어간 방향에 자리하고 있다. 1453년 교황 니콜라오 5세가 과거 로마에 있었던 처녀의 샘을 복구하라는 지시를 내려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분수답게 대양의 신인 오케아노스를 중심으로[24] 양옆에 트리톤이 있는 형태의 조각이 모여 있다. 이곳에서 오른손으로 동전 쥐어 왼쪽 어깨 너머로 던져 안쪽 저수지 안에 들어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으며[25] , 오래된 영화인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 먹는 신이 유행 타는 바람에 주변에 수많은 젤라토 집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분수 자체는 멋있지만 목에 카메라를 걸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귀찮게 접근해대는(당연히 찍은 후 돈 요구) 사람들 때문에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no'라고 거절하면 물러나지만 특히 동양인 여성들에게는 집요하게 달라붙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 트레비 분수는 낮에 봐도 아름답지만 해지는 시간인 5-6시경에 방문하는 것이 괜찮다. 그 시간대면 사람도 낮보단 좀 빠졌고 해지면서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기에 소지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주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주의.
- 베네치아 광장(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로마 관광 제2의 중심지. 어지간한 중심을 향하는 버스들은 이곳에서 정차하기 때문에 자주 들르게 될 것이다. 로마에 왜 베네치아 광장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옛날에 이탈리아가 도시별로 쪼개져 있었을 때 이곳에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관이 있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흰색의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공화국 건국 역사를 기록한 기념관이다. 내부를 둘러보는 건 무료이나, 꼭대기에 올라가려면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하다.(1인당 8유로) 유독 유명한 쿠폴라가 없는 로마 특성상 쿠폴라 역할을 하는 곳.[26] 로마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광장은 교통의 요지이므로 차가 굉장히 많이 다닌다. 여기서는 차조심하도록 하자. 콜로세오를 보고 오른쪽 길로 쭉 걸어 올라오면 베네치아 광장이 바로 보인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는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기에 교통수단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콜로세움까지 도보 10분 정도 소요된다.
- 캄피돌리오 광장(카피톨리노 박물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무늬를 고안한 광장. 계단이 원근법을 무시한 계단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아래에서 보면 사다리꼴 모양이여야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원근법을 무시하기 위해 계단 아랫면을 더 길게 해놓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이 모이고, 온갖 행사가 있으면 여기서 열리느라 정작 무늬를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ㄷ자 모양으로 건물이 있는데 한쪽은 시청사, 다른 한쪽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보르게제 다음으로 비싼 박물관이라(1인당 12유로) 로마 패스를 이용할 시, 보르게제에 가기 귀찮으면 이곳에 남은 1회를 쓰곤 한다.
- 로마 군인 코스프레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로마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띄는데, 이들을 사진에 담으면 바로 다가와 적잖은 돈을 요구하므로 유의할 것. 찍으려면 멀리서 딴 거 찍는 척 하며 찍든가 아니면 찍자마자 바로 튀면 된다. 어차피 사진에 담았다고 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합법은 아니니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주로 콜로세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판테온(만신전)
기둥을 하나도 세우지 않고 만든 로마제국 시절의 모든 신을 위한 신전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가톨릭 교회(성당)건물로 사용 중이다. 웅장한 천정 빼고는 그다지 볼 것이 없을 것 같으나, 르네상스 거장인 라파엘로의 무덤과 이탈리아를 최초로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무덤이 있다. 대신 로마시대 신상들은 카피톨리노나 바티칸 박물관에서 구경 가능하다.
- 로마 4대 대성당
-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마리아 대성당)
-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 산 피에트로 인 바티카노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
-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 [27]
- 나보나 광장(피아차 나보나)
판테온에서 서쪽에 있는 광장.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 다니기 편하며 광장 내에 있는 3개의 분수가 볼 만하다. 이곳에 식당들은 로마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
- 포폴로 광장
서북쪽 끝자락에 있는 광장으로, 고대 로마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던 문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죄수들의 공개 처형식이 일어났다고 한다.
- 스파냐 광장
스파냐(Spagna)는 스페인을 이르는 이탈리아어로, 교황령 시대에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28] 로마 제국이나 르네상스 등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영화 "로마의 휴일" 덕에 굉장히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너무 옛날 영화인 탓에 정작 로마의 휴일이 무슨 영화인지, 왜 스파냐 광장이 유명해졌는지 깨닫는 사람은 드문데, 그런데도 뭔가 있어 보이는 계단 형태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긴 한다. 왜인지 몰라도 여성들만 골라서 장미꽃 구매를 강권하는 짜증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니 먼저 말 걸어오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영어권에서는 스패니시 스퀘어(Spanish Square)라고 한다. 스페인 스퀘어(Spain Square)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카더라. 광장 중앙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조각한 난파선 분수도 있다. 테베레 강이 범람해 조각배가 파냐 광장 앞까지 떠내려 온 것을 보고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다. 2015년 2월 UEFA 유로파 리그 AS 로마 vs 페예노르트 경기에서 원정 온 페예노르트 서포터들이 광장을 점거하고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심각한 파손을 입었고, 이 파손은 원상복구가 영원히 불가능한 수준이다. 로마 시장과 시민들은 분노하였으며, 때마침 페예노르트 단장이 "우리는 잘못 없음"이라 어그로를 끌고 UEFA도 징계를 안 내린다고 하여[29] 로마 시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결국 복원공사를 마치고 재개장은 했다고 한다.#
- 티베리나 섬(이솔라 티베리나)
별로 넓지도 않은 테베레 강 사이에 떠 있는 섬. 그러다 보니 몇 걸음 가면 바로 섬이고, 다시 몇 걸음 가면 다시 본토로 넘어가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정확하게 건물 2개 분량 크기밖에 되지 않아서, 신경을 끄고 건너면, 방금 섬을 건넜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을 수준.
- 대전차 경기장(치르코 마시모) 터
콜로세오 남쪽에 자리한 넓은 타원형 공터. 로마 시대에 전차경주가 열렸던 경기장으로 여러 차례의 확장 공사 끝에 길이 621m, 너비 118m에 달하는 규모로 커졌으며 약 15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경기장은 유지되었으며 549년에 열린 최후의 전차경주를 끝으로 경기장은 서서히 황폐화되어 농장으로 쓰였는데, 현재는 농장을 허물고 경기장 터를 공원처럼 남겨놨다. 끝에 세워진 작은 탑 하나가 허물고 남은 농가의 흔적이다.
- 진실의 입
원래는 하수구 뚜껑으로 사용하던 물건을 교회 측이 뜯어다 전시해 놓은 것이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의 낚시로 유명하다. 사진 찍는 데 2유로 를 내야한다. 유료인데도 불구하고, 유명 성지 중 하나라 줄까지 서서 사진을 찍곤 한다.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줄을 길게 서야 한다. 중요한 유물은 아닌지 사진 찍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입에 손을 넣고 찍으라고 안내해주기도 한다.
- 갤러리아 보르게제(보르게제 미술관)
로마에서 가장 구경하기 힘든 미술관. 지하철 A선 플라미니오-베네토역 연결통로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 유명세에 비해 규모가 작다보니 철저한 전화/인터넷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고[30] , 입장 시간도 매우 철저한 편이다. 대표작은 베르니니의 아폴로와 다프네, 티치아노의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31]
- 테르미니 근처에 고대 로마의 거대한 목욕탕 유적이 남아 있다. 겉모습은 대리석이 다 뜯겨져 나가고 풍화되는 등 당시의 원시적인 벽돌과 콘크리트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내부는 르네상스(혹은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내부 욕탕 중심의 십자가 모양 구획을 그대로 살려서 가톨릭 성당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즉, 로마시대의 목욕탕이 여전히 성당으로서 로마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셈.
- 산탄젤로 성(세인트 안젤로, 천사의 성)
딱히 볼 것은 없고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로마 시내 풍경이 볼 만하다.
- 바티칸(바티칸 내 구경거리는 바티칸 문서 참조)
- 아피아 가도
8. 방문 팁
- 로마는 길이 약간 복잡한 편이고, 길 자체도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자갈 바닥이라 힘이 더 들며, 관광지에서조차 수없이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계속 걷기만 하면 하루 만에 뻗어버릴 우려가 있다. 특히 여름이면 그늘 하나 없는 살인적인 로마풍 더위도 이겨내야 할 판. 따라서 적절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대중교통이라고 모두 편한 건 아니다. 버스는 서서갈 경우 특유의 흔들림에 더 괴로울 수 있고[32] , 지하철은 냉방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안 그래도 더운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상 찜통 더위에 질식할 수 있다. 2017년 7월, 지하철은 다행히 에어컨이 빵빵하다. 그리고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로마라서 경계해야 해 정신까지 피곤해지니... 답이 없다.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예 관광 욕심을 내지 말자.
- 물가는 대체로 중심가보다 강 건너 서남부인 트라스테베레 지역이 저렴하다. 하지만 저렴한 것도 이유가 있어서 저렴한 법. 이쪽은 별다른 랜드마크도 없고 잘 알려진 지역도 아니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 이곳 외에는 테르미니역 내부나 남부, 동남부가 그나마 괜찮은 물가를 보여준다.
- 이탈리아 전역에서 유명한 젤라토 중에서도 로마에 유명한 집이 몰려 있다. 대표적으론 테르미니 동남부의 조반니 파시(Giovanni Fassi)[33] , 트레비 근방의 산 크리스피노(San Crispino), 팡테온 근방의 지올리티(Giolitti), 바티칸 근방의 올드 브릿지(Old Bridge)가 있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체인점인 GROM은 밀라노에 본점이 있다. 여담으로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바티칸 근처 젤라토 가게가 있는데 이곳은 한국말로 주문해도 알아듣는다.
- 로마패스는 72시간권과 48시간권이 있으며 가격은 각각 38.5유로, 28유로이다.(2017년 8월 기준) 테르미니역의 타바키나 인근의 상점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비싼 가격에 비해 카드를 잘 받지 않으니 주의. 72시간권은 2개 박물관 무료 입장과 72시간의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권이 주어지며, 48시간권은 1개의 박물관 무료입장과 48시간의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권이 주어지는데, 대개 박물관은 포로로마노-콜로세오나 보르게제나 카피톨리노, 혹은 시립박물관에 써버리는 편이다. 두 권종 모두 무료 입장 이용 후, 방문하는 박물관-유적지는 5%~50%까지의 할인이 제공된다. (기간 내 한정) #
- 로마에는 거리 곳곳에 공용 식수대를 틀어놓고 있다. 위생에 아주 까다롭지 않다면 이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다 먹어도 별 탈은 없으며,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걸 그냥 마신다. 다만 물갈이가 심한 경우라면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며 생수를 사먹자.
- 소매치기가 주의 대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 외에도 먼저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도록 하자.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도 언급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들, 장미꽃을 사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갑자기 손을 내밀어보라고 한 후 끈 같은 것으로 장식을 만들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거절을 해도 집요하게 달라붙기도 하니 처음부터 상대를 하지 말든가, 어설프게 웃으면서 거절하지 말고 불쾌하다는 표시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도 그렇지만 로마 역시 관광객들에게 도시세(Tuorist Tax 혹은 City Tax)를 걷는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는 이 도시세라는 것이 매우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게 2011년부터 실시된, 얼마 안 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로마는 그래도 유명 관광지라고 다른 도시에 비해 도시세가 비싼 편이다. 숙소의 급에 따라 하루에 사람당 2유로 내지 3유로를 내야 하며 보통 숙박비를 지불할 때 같이 낸다. 숙소마다 다르지만 체크인할 때 도시세만 사전 징수하고 체크아웃할 때 나머지 숙박비를 내는 경우도 있으며, 숙박비는 카드로 결제 가능하지만 도시세는 무조건 현금으로만 내도록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프론트 데스크에 가면 이 도시세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상당히 강압적인 말투로 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you must pay'라든지…
- 2019년 초 기준 매 첫째주 일요일은 콜로세움 등 주요 관광지가 무료이다.
9. 추천 관광코스
- 첫째날: 지하철 탑승 → 성 베드로 광장 → 성 베드로 대성당 → 큐폴라 → 산탄젤로 성 → 점심식사 → 나보나 광장 → 판테온 → 트레비 분수 → 스페인 광장 → 포폴로 광장 → 핀초 언덕
- 둘째날: 지하철 탑승 → 콜로세움 → 포로 로마노 → 점심식사 → 베네치아 광장 → 캄피돌리오 광장 →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10. 서브컬처에서
[image]
로마 제국의 위엄덕에 게임이나 영상매체에선 현대 로마보단 과거의 고대 로마 당시 로마가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어쌔신 크리드 2의 최후반부와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역시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배경으로 등장한다. 정말 드문 르네상스 시기의 로마의 모습을 잘 구현한 영상미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래픽으로 구현된 판테온과 콜로세움은 간지 뿜뿜.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에서는 기둥 속 사내들이 잠들어 있던 장소다. 그리고 5부 황금의 바람에서는 최종 결전 장소. 모 민폐 스탠드사와 더더욱 민폐인 스탠드가 콤보로 나락으로 몰고가버렸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1편부터 계속해서 로마 문명의 수도로 개근하고있다.
러브 라이브! 선샤인!! The School Idol Movie Over the Rainbow에 등장한다.
코어에서는 천둥 번개가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도미네이션즈에서 문명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하이큐!!에서 카게야마 토비오가 이탈리아팀으로 히나타 쇼요가 브라질 팀으로서 로마에서 배구경기를 한다.
11. 관련 문서
- 고대 로마
- SPQR
- 로마인
- 로마자
- 로마 신화
- 로마법
- 로마군
- 로마사
- 로마서[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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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무니치피오 구역은 테베레 강 서안에 있는 13, 14, 22 리오네만 제외하고는 고대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세운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안과 구역이 일치한다. 물론, 13구역 중 일부도 과거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안에 포함된다. 14구역은 교황령 시기 레오 4세가 추가하였고, 13구역도 기존의 트란스테베레에서 우르바노 8세가 확장시킨 것이다. 22구역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새롭게 추가되었다.[2]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3]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의 경우, 바로 옆에 같이 있어 콜로세움과 통합적으로 요금을 받아 구경할 수 있다. 2019년 월 기준으로 요금은 12유로이다.[4]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의 조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서울특별시의 야경을 꾸밀 때에도 이탈리아의 전문가들의 손길이 닿았다고 한다.[5] 이쪽은 2차대전 전황 악화로 인해서 그랬다 치자. 그나마도 당시 집권 중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유물 등을 철저히 무시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공사를 진행한 결과다.[6] 어느 정도로 많냐면 물건을 훔치고 도망가는 소매치기범을 잡아도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이 쿨하게 훔친 물건 돌려주고 간다(...). 하도 많아서 경찰도 현행범이 아니면 구속하지 않는다고.[7] 참고로 바티칸 시국 내에도 바티칸 자체가 운영하는 우체국이 존재하는데 보통 기념엽서를 기준으로 평균 2주부터 최장 2달 이상 걸려서 배달되는 경우도 있다(...) [8] 100분 동안 사용 가능, 단 지하철은 1회만 사용 가능하니 지하철 1회 이용 후 버스나 트램을 타자. 1회권을 사용하는 시간 동안 버스나 트램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이용 가능하기 때문이다.[9] 20개가 넘는 플랫폼을 일일이 하나씩 다 확인해야 한다. 큰 안내판은 저 멀리 바깥에 있기 때문(...).[10] 지하철 부분에서 서술하겠지만, 로마에선 버스가 33배 정도는 더 편리하다.[11] A호선과의 유일한 환승역인데 A호선이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12] 물론 사고 없이 잘 돌아왔을 경우 다시 다 돌려준다[13] 요즘엔 신용카드로 가승인을 내고 반납할 때 가승인을 취소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14]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15]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16] Centre historique de Rome, les biens du Saint-Siège situés dans cette ville bénéficiant des droits d'extra-territorialité et Saint-Paul-hors-les-Murs[17]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18]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9]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0]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21]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22] 500을 이탈리아어로 친퀘첸토라고 읽는다. 피아트 500도 똑같이 부른다.[23] 근처 정도가 아니라, 역 출구를 나서면 바로 앞에 떡하니 서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거대한 콜로세움을 실감할 수 있을것이다.[24] 넵투누스(포세이돈)라는 정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트레비 분수 문서 참고.[25] 농담으로 전 세계 동전이 모두 모여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구릿빛 동전이 대부분이다. [26] 바티칸의 쿠폴라는 일단 로마가 아니니까 예외로 한다.[27] 로마 구시가지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잘 오지 않는다[28] 지금도 바티칸(이탈리아가 아니다)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듯.[29] 경기장 밖에서 일어난 일은 UEFA 소관이 아니다. 이것은 어느 대륙이든 마찬가지.[30] 로마 패스를 사용해도 마찬가지. 오히려 전화로만 예약이 가능해지므로(예약비 별도) 도리어 불편하다.[31] 이 작품은 옛 리라 지폐에도 등장했으나...[32] 바로 위에도 쓰여 있지만, 길이 울퉁불퉁하기 때문. 앉아서 가도, 엉덩이가 아플 수 있다.[33] 한국에선 "빨라쪼" 아이스크림 집으로 진출해 알려져 있다. 상호명이 달라서 눈치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34] 사도 파울로스가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35] 이스탄불의 전신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정식 명칭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여한 로마 노바(Roma Nova)이다. 의역한다면 제2의 로마.[36]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동로마의 제위 요구자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후,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자칭했다. 당연히 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인정받은 제2의 로마와는 달리 참칭이다.[37] 로마 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었다가 각각 멸망한 뒤, 여러 나라들이 서로마와 동로마의 후계자로서 제3의 로마라고 자칭했다.[38] 적백내전 당시 백군이 모스크바의 뒤를 이은 제4의 로마로 선포했는데, 얼마 안 가서 적군에게 점령되었다.[39]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에리트레아를 지배할 당시 작은 로마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