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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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몬 왕국의 초대 국왕. 마카베오기에서 그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
칼데아제국에 의해 남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 갔는데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그후 칼데아페르시아제국에게 멸망당했고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왕은 유대인들이 귀향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린다. 키루스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고,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금 정착한다. 하지만 민족 국가를 세워 독립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정복 당해 멸망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의 유력 장군들은 저마다 알렉산더의 후계를 자처해 세계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의 결과 제국은 3~4의 왕국으로 쪼개졌는데 그 중 하나인 셀리우쿠스 왕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다. 초기에 셀리우쿠스 왕조는 이스라엘을 강력히 제재하기보다는 정통 신앙을 지키고 일정한 자치를 허용하는 등 회유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헬라제국끼리의 거듭되는 전쟁 속에서 불필요하게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것은 셀리우쿠스 왕조에게도 좋을 게 없었고, 지정학적으로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차지한 이집트와의 접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셀리우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의 정통 신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있어서 셀레우쿠스 왕조에 협조적인 정책을 지지하거나 헬레화(化)를 지지하는 무리도 있었고, 유대교의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래도 안티오쿠스 4세 이전에는 이러한 갈등과 파벌이 어느정도 균형을 유지했으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급격히 헬레화가 진행되어 유대교 회당에 우상을 세우고, 율법책을 태웠으며, 심지어 성전 기물까지 약탈해 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저항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이 된 것이 '마타디아'였다. 마타디아는 정통 신앙에 반하여 헬라식 제의를 지내려는 유대인들을 죽였으며, 나아가 왕의 사신까지 살해했다. 이 후 다섯 아들들과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모아 의병을 구성하여 광야에서 항전한다. 이듬해인 B.C 165년 마타디아는 사망했고, 뒤를 이어 아들 유다 마카베오가 뒤를 이어 항전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