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1. 개요
구약성경 제2정경 내지는 외경에 수록되어 있는 책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아시아 진출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이 유대인들을 탄압하자, 유다 마카베오(יהודה המכבי)라는 인물이 마카베오 전쟁을 통하여 제국에 대항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하스몬 왕국을 건국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토빗기, 유딧기와 마찬가지로, 히브리 성서에는 없지만 그리스어 성서인 70인역(Μετάφραση των Εβδομήκοντα) 몇몇 사본에 실려 있으며,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권과 2권만이 불가타의 정경(正經)에 속한다. 이에 따라 가톨릭 성서에서는 불가타를 따라 1, 2권만 정경으로 인정했고, 히브리 성서를 중시하는 개신교에서는 정식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되, 일부 종파에서 신학 연구에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 정교회에서는 70인역을 따라 3권까지 인정하고 있으며[2] , 4권은 조지아 정교회에서만 인정한다. 5권부터는 어떤 교회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2. 상세
2.1. 마카베오기 1서/마카베오기 상권[A]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는 분명치 않고 다만 유대인의 전통을 존중하고 하스몬 왕조를 지지했던 유대인 혹은 하스몬의 궁중 역사가로 추정된다. 로마에 대해 호의적이고 대사제 요한 힐카누스(BC 134~104)에 관한 기사로 끝나는 것을 통하여 기원전 120년에서 기원전 100년 사이에 히브리어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다의 내란에 대한 당대의 유일한 자료이며, 안티오코스 4세 통치 이후의 유대-시리아 관계에 대한 유일한 자료로 남아 있다. 공식 문서자료, 구전 전승, 목격자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편찬한 이 책은 서술 내용에서 상투적인 그리스어식 과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후에 유대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정확하다고 인정받는다.
2.1.1. 내용
- 1장 - 프롤로그
또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전국의 백성들이 헬레니즘 문명만을 수용해야 한다고 여겨 각 민족에게 자신들의 고유 풍습을 버릴 것을 강요하고, 온 백성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파견하여 율법서를 태우고, 안식일을 지키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아들에게 할례를 하는 등 율법대로 행동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 2장 - 마타티아스의 반란
감독관들과 변절한 유다인들이 모데인에 가서 그곳의 지도자인 마타티아스에게 헬레니즘식 제사를 강요하고 희생 제물을 가져오자, 마타티아스는 그것을 옮기던 변절자를 죽이고 민중을 선동하여 성읍을 버리고 산으로 피해 그곳에 주둔했다. 그곳에서 마타티아스 세력은 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전통을 지키려고 안식일에 쳐들어온 군대를 막지 않아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식일에라도 침략을 받으면 맞서 싸우기로 서로 정하였다. 그때 유다 율법에 헌신하는 하시드인 한 무리가 그들과 합류하여, 군대를 조직하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변절자들을 몰아내고 할례를 안 받은 소년들에게 할례를 강제하고 헬레니즘식 제단도 모두 헐어버렸다. 하지만 마타티아스는 곧 사망하게 되고, 죽기 전에 아들들 앞에서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는 약해지지 않으며 죄인들의 영광은 거름더미와 구더기로 변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율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힘센 용사 유다 마카베오를 장수로 임명한다. 때는 기원전 166년 봄이었다.
- 3장~9장 27절 -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
이에 자극받은 이두매아인들과 암몬인들이 침공하자 유다 마카베오의 군대는 이를 막아냈으며, 길앗과 갈릴래아의 유대인들이 핍박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이민족들을 물리쳐 유대인들을 구했다. 또한 필리스티아인들의 땅 을 쳐 우상들과 제단을 부수고 전리품을 얻어 갔다.[5] 페르시아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다인들이 자기 계획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화병에 걸리는데, 죽기 전에 동무인 필리포스에게 자기 아들 안티오코스(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BC 163~161)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필리포스에게 섭정을 맡긴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필리포스는 안티오쿠스가 이끌었던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고, 소식을 들은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와 리시아스는 유다와 화친하기로 결정한다.[6] 하지만 화친을 위해 시온 산으로 간 임금은 약속을 어겨 시온 산 둘레의 성벽을 헐어 버리고, 그가 없던 사이 수도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필리포스도 그냥 무력으로 진압한다.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BC 161 ~150)가 정변을 일으켜 안티오쿠스와 리시아스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유다인 변절자들의 대표 알키모스가 그에게 붙어 예루살렘을 치고 자신을 유다인들의 지도자로 세울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임금이 바키데스를 시켜 알키모스를 도왔으나 역시나 유다 마카베오가 그들을 몰아내었고, 이에 데메트리오스 1세가 다시 장수 니카노르를 보냈으나 유다는 카파르살라마 부근에서 니카노르를 전사시키고 그의 군대를 무찔렀다. 이후 유다는 로마 제국이 강력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과 우호 조약을 맺었으나, 어느새 데메트리오스 1세가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파견하여 대군을 이끌고 유대 지역을 침공하고, 이에 놀란 아군 상당수가 달아나자, 마카베오는 남은 군사 800명을 이끌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다가 전사했다. 이후 이스라엘에는 다시 변절자들이 득세하였고, 율법을 고수하던 유다인들은 이들에 의해 바키데스 앞으로 끌려가 고난을 겪었다.
- 9장 28절~12장 - 요나탄의 유다 마카베오 계승
한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을 자처하던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8] 가 프톨레마이스를 점령하고 왕을 자처하자, 데메트리오스 소테르는 그가 요나탄과 동맹을 맺기 전에 선수를 치려고 사병 통솔권을 주고 성채의 유다인을 해방시킨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요나탄에게 편지를 써 그를 유대인 대사제이자 '임금의 벗'으로 임명하는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데메트리오스도 그걸 알고 각종 세금의 면제권과 율법을 지킬 권리, 프톨레마이스 지역의 통치권 등 더 좋은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미 유대인을 여럿 죽이고 약탈한 그를 요나탄과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 요나탄은 알렉산드로스와 손잡고 데메트리오스를 무찌른다. 알렉산드로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사위가 되자 요나탄도 둘에게 예물을 주어 '임금의 벗'의 자리를 굳혔고, 유다인들은 본격적인 평화를 누리는 듯 했다.
그러나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가 크레타에서 돌아왔고, 부하 아폴로니우스를 시리아 총독으로 세웠다. 아폴로니우스가 요나탄에게 시비를 걸고 털렸기에 알렉산드로스는 잠깐 걱정은 덜었지만, 얼마 후 프톨레마이오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데메트리오스와 손을 잡았다![9]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달아나고, 아라비아에서 잡디엘이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도 사흘 만에 죽고 그의 부하들도 현지인들에게 살해당해 데메트리오스 2세(BC 146~138)가 어부지리로 셀레우코스의 임금이 된다. 요나탄은 당시 변절자들의 주둔지였던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임금의 분노를 살 만한 짓을 했는데, 이때 데메트리오스 2세를 찾아가 뇌물을 주어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는 은근슬쩍 선왕들이 자신에게 줬던 권리를 다시 보장받는 데 성공한다. 데메트리오스는 나라가 평화로워지자 외국에서 모집한 부대를 제외한 군대를 해산시키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된 군인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데메트리오스는 요나탄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대신 예루살렘 성채를 포함한 유다 지방 요새의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하지만[10] 진압에 성공하자 그걸 어겼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디오도토스 트리폰이 이 소식을 듣고는 아라비아인 이말쿠에의 보살핌을 받던 안티오코스 6세 디오뉘소스(BC 145~140)에게 가서 즉위를 권유하였다. 디오뉘소스가 동의하자 트리폰은 반란군들을 모아 데메트리오스를 몰아내고, 요나탄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가 데메트리오스의 잔당들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이후 요나탄은 로마와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데메트리오스의 잔당들과 자밧인(아랍인)들을 물리치고 유다의 요새를 수리하였다. 그러나 트리폰이 안티오코스를 배신하고 자기가 임금이 되어, 자신의 왕위 찬탈을 반대할 요나탄을 없애기 위해 벳 스안에 주둔하여 요나탄을 회유했다. 프톨레마이스 성읍 양도 등의 혜택을 약속받은 요나탄은 소수의 호위병만 남기고 벳 스안으로 들어갔지만, 트리폰이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시전해 그들을 전멸시키고 요나탄은 붙잡힌다.
- 13장~16장 - 시몬의 하스몬 왕조 수립
시몬은 유다를 평화롭게 하였고 로마와 스파르타와 맺은 동맹도 갱신했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시데테스는 기원전 139년에 트리폰 축출에 성공하자 시몬을 배신하고, 자신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트리폰을 쫓으며 부하인 켄데베오스를 시켜 유다를 침략했다. 시몬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가 이를 시몬에게 보고하여 군대 통솔권을 얻고 켄데베오스르르 무찔렀다. 그러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왔다. 예리코 장수였던 시몬의 사위 아부보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가 시몬의 대사제직 겸 왕직을 탐하여 기원전 134년 2월에 그와 그의 아들들을 자신의 요새 독으로 데려와 술을 잔뜩 먹이고는 부하들을 시켜 암살했고, 안티오코스 7세에게 자신을 유다의 왕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고 요한 힐카누스를 죽이러 병사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앞질러 요한에게 이 사실을 모두 고하였고, 요한은 병사들을 모두 죽인다.
2.2. 마카베오기 2서/마카베오기 하권[A]
마카베오기 2서는 기원전 160년[12] 에서 기원전 124년[13] 사이에, 다시 말해 마카베오기 1서보다 앞선 시기에 이집트에서 그리스어로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카베오 2서의 연대기는 1서의 연대기와 일치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편집자는 키레나이카 출신 유다인 야손이 유다 마카베오에 관해 수집한 기록과 전설 등을 모아 5권으로 저술한 내용을 1권으로 요약하고 편찬했다. 이 책의 어휘와 문체로 미루어볼 때 원래 그리스어로 씌어진 듯하며, 저자는 그리스어 수사법에 매우 능숙하면서도 하스몬 왕조에 비판적인 정통 유다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부터 시몬까지의 일대기를 대룬 반면 하권은 대사제 오니아스 3세 때부터 니카노르의 패배까지 약 십여 년만 다루고 있으며, 상권은 왕조의 정통성에 초점을 뒀지만 하권은 예루살렘 성전에 초점을 맞췄고, 상권이 하스몬 왕조를 찬양할 때 하권은 비판한다.
2.2.1. 내용
- 1장 1절~10절 -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
- 1장 10절~2장 18절 -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 2장 19절~32절 - 저자의 머리말
- 3장~4장 - 대사제직의 타락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4세에 이르러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예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군사적 능력은 별로였던 그의 대에 이르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이 틈을 노린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결국 기원전 200년, 안티오코스 3세가 파네이온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격파하여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3세는 여기저기 정복전쟁을 벌이다가 패배했고 결국 거액의 전쟁배상금만 남긴 채 기원전 187년에 암살되었다. 이후 안티오코스 3세의 동생인 셀레우코스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그는 안티오코스 3세의 전쟁배상금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한 끝에 예루살렘 대신전의 금고를 탈취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셀레우코스 3세의 생각에 대해 시리아 총독 헬리오도로스는 이건 미친짓이라면서 예루살렘 대신전 금고약탈을 중단했고 결국 셀레우코스 3세를 암살하기에 이른다. 로마에 머무르고 있던 안티오코스 4세는 이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헬리오도로스를 격파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 5장~7장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전국민 헬레니즘화 정책
- 8장~15장 -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와 성전 재봉헌.
2.3. 마카베오기 3서
영어 번역본 (위키문헌)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과 달리 다른 3권의 마카베오서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 대항한 유대 반란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BC 221~205)의 통치 아래 있던 이집트 유대인들이 당한 압박과 기적적인 구원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 못 들어가게 하자 이집트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빼앗겠다고 위협했으나 천사가 유대인들을 위해 개입한 뒤에야 마음을 돌이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2.4. 마카베오기 4서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서 설명했다시피 조지아 정교회에서만 인정받는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다만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게 고통을 받기 시작하는 부분을 다루었다는 이유 때문에 마카베오서에 속하게 되었다. 칼리굴라 황제(AD 37~41) 시절에 집필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초대 교회 시절에는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집필한 것으로 간주되었었다.
이 책의 신앙적인 주제는 '유대인 전체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순교자들의 고난'이다. 이 때문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서 <하느님의 도시(신국론)>에서 순교자들을 다루는 마카베오 4서를 가장 높이 평가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높이 평가하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불가타와 히브리 성서에 없다는 이유로 마카베오 4서를 배제한 반면, 상대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저평가하는 조지아 정교회는 4서를 인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2.5. 그 외
마카베오기 1서~5서 본문 및 해설서 (영어)[14]
관련 논문[15]
마카베오기는 가톨릭에서는 2서까지, 정교회에서는 3서까지, 조지아 정교회는 4서까지만 인정하지만, 그 외에도 5서, 6서, 7서, 8서로 불리는 문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문헌들은 전부 어떤 교회에서도 정경이나 제2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마카베오기 5서 (아랍어 마카베오기 2서)
전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 및 기록 연대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기원후 70년 이후에, 어느 유대인이 썼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아랍어 문헌으로만 남아있지만, 문헌 내에 여러 히브리 문화가 담긴 것을 보면, 원문은 히브리어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히브리어 단어의 흔적은 없기에 일부 학자들[18] 은 히브리어의 기록을 아랍어로 옮긴 것으로 추정한다.
1832년에 Henry Cotton이 이 문헌을 '마카베오기 5서'라고 이름 붙혔으며, '아랍어 마카베오기 2서', '아랍어 마카베오기'라고도 불린다. #
- 마카베오기 6서
- 마카베오기 7서
- 마카베오기 8서
3. 의의
가톨릭 측에 의하면 마카베오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신학적 특성은 철저한 유일신 사상과, 자비하시고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도와주시며, 그 때문에 다신교를 믿던 셀레우코스가 하느님을 믿는 마카베오와 그 형제들에게 연전연패하였고, 마카베오와 유다 군단이 거둔 놀라운 승리는 그들의 용맹이나 군사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뤄주신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도 마카베오기 2서의 6장에 나오는 엘르아잘의 순교와, 7장에 나오는 한 어머니와 일곱 형제의 순교에서,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순교의 의의와 의인의 부활과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으며, 12장 44절의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연옥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현대 성서주석학적 관점에서는 창조론 관련으로 매우 중요한 책인데, 바로 '無로부터의 창조' 교의 때문이다. 흔히들 창세기에서 '無로부터의 창조'가 나온다고 인식하지만, 성서주석학적으로 이는 부정된다. 가령 창조 이전의 땅이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The Revised New Jerusalem Bible의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서, 히브리 성경과 신약에는 '無로 부터의 창조'가 적혀있지 않다.The Hebr. is ''tohu'' and ''bohu''. It is not '''creation out of nothingness, a formula which first occurs in 2 M 7:28''', but a sense of bringing order out of chaos, or shape and form to that which had none. Not to have shape or form amounts to non-existence.
(번역: 히브리어로 tohu와 bohu. 이는 2마카 7,28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가져온다는 관념이거나, 혹은 비어있는 것을 모양짓고 꼴짓는다는 관념이다. 모양과 꼴이 없는 것은 비실존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설화들은 창조가 질서로 소개된 것과 일치한다. 하느님의 개별적인 창조행위에서는 피조물의 물질적 기원보다는 나누고 구분하고 배분하고 배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창조는 일차적으로 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빛과 어둠이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구분되지 않은 것을 정돈하는 일이 창조가 이야기하는 핵심인 것이다. 구약성경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초기 유다이즘의 시기(2마카 7,28)에 와서 비로소 하느님께서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이런 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약성경의 관점으로는 무엇보다도 질서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기 이사야서에 벌써 등장하는 "새로운 창조"도 무엇보다 이미 현존하고 있는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1》 447쪽
2마카 7,28은 순교자와 부활신학의 틀을 바탕으로 성경에서 처음으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호세 모랄레스, 《창조론》 62쪽
흔히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고백된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는[a]
이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로는 주전 2세기 후반에 쓰여진 마카베오 하서를 들 수 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에 나타난 우주와 세상 창조에 대한 이해〉
'''The Bible[a]
does not affirm creatio ex nihilo. Instead biblical authors consistently say that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When exploring options for how Christians might best think about God as creator, it’s difficult to overemphasize this biblical point: '''According to Scripture, God creates from something.'''Biblical writers offer various descriptions of the “something” out of which God creates. In Genesis, the Spirit works with tohu wabohu (formless void), or what is often translated “primordial chaos” or “shapeless mass” (1:2). God creatively transforms chaos and shapelessness into something new: the heavens and the earth (1:1).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even if the “something” is initially vague, disordered, or messy.
Genesis also speaks of the tehom, the “face of the deep,” over which God hovers when creating (1:2). The “deep” is a something, not literally nothing. Many biblical scholars believe tehom signifies the presence of primeval waters as God creates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New Testament’s most explicit theory of initial creation, 2 Peter 3:5, supports this view: “Long ago by God’s word the heavens came into being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 Water, of course, is something not nothing. … In sum, we search Scripture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that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Thomas Jay Oord, 《God Always Creates Out of Creation in Love,》 in Theologies of Creation, pp. 109-110
따라서 현대 성서주석학적으로 보자면, 개신교에서 '성경에 적혀 있지 않은' 無로부터의 창조를 교의로 고백한다는 매우 아이러니한 결론이 나온 상태다.A large number of Bible scholars reject the idea that Genesis describes creatio ex nihilo. Terrence Fretheim says, for instance, “God’s creating in Genesis 1…includes ordering that which already exists…. God works creatively with already existing reality to bring about newness.” ...... The New Testament also does not support creatio ex nihilo. We’ve already seen that the most explicit initial creation passage – 2 Peter 3:5 – says God brings the earth into existence by means of water. ... In sum, we search Scripture[a]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4. 참고 문헌
해설 (굿뉴스)
마카베오서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