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부인
萬呼夫人
(537년경[1] ~ 579년 이후[2] )
신라 중기의 왕족. 지소태후와 입종 갈문왕 사이의 딸로, 남자 형제로는 진흥왕과 숙흘종이 있다. 만내부인(萬內夫人) 또는 만녕부인(萬寧夫人)으로도 불리기도 하며 이름은 김행의(金行義)라고 하는데 이쪽은 화랑도의 강령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인다.
조카인 동륜태자와 혼인하여[3] 백정(후의 진평왕), 김백반, 김국반을 낳았다. 천명공주와 선덕여왕, 진덕여왕의 할머니.
정사에선 그녀가 아들 진평왕의 즉위 후에 살아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선 태후가 되었고 후에 출가하여 비구니로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고 나온다.
화랑세기에선 지소태후와 이화랑 사이의 딸이며 진흥왕과 숙흘종의 이부 여동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륜태자가 요절하자 오빠인 숙흘종에게 재가하여 만명부인을 낳았다고 나온다. 여기선 숙흘종이 아니라 만호태후가 만명부인과 김서현의 사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진골정통인 만호태후로서는 진골정통의 인통을 이은 자신의 딸을 대원신통의 인통을 이은 김서현과 결혼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 하지만 후에 딸과 화해했다고 한다.
(537년경[1] ~ 579년 이후[2] )
1. 개요
신라 중기의 왕족. 지소태후와 입종 갈문왕 사이의 딸로, 남자 형제로는 진흥왕과 숙흘종이 있다. 만내부인(萬內夫人) 또는 만녕부인(萬寧夫人)으로도 불리기도 하며 이름은 김행의(金行義)라고 하는데 이쪽은 화랑도의 강령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인다.
2. 생애
조카인 동륜태자와 혼인하여[3] 백정(후의 진평왕), 김백반, 김국반을 낳았다. 천명공주와 선덕여왕, 진덕여왕의 할머니.
정사에선 그녀가 아들 진평왕의 즉위 후에 살아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선 태후가 되었고 후에 출가하여 비구니로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고 나온다.
화랑세기에선 지소태후와 이화랑 사이의 딸이며 진흥왕과 숙흘종의 이부 여동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륜태자가 요절하자 오빠인 숙흘종에게 재가하여 만명부인을 낳았다고 나온다. 여기선 숙흘종이 아니라 만호태후가 만명부인과 김서현의 사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진골정통인 만호태후로서는 진골정통의 인통을 이은 자신의 딸을 대원신통의 인통을 이은 김서현과 결혼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 하지만 후에 딸과 화해했다고 한다.
[1] 진흥왕의 생년이 534년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입종 갈문왕의 사망년도를 역산해 추정한 년도이다.[2] 아들 진평왕의 등극후 살아 있었다.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600년 경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랑세기의 내용을 포함하면 612년 이후에도 생존 한 것이 된다.[3] 신라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남조카와 고모의 결합이다. 본래 다른 사람과 혼인했다가 재가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