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륜태자

 


'''작위'''
'''왕(王) / 태자(太子)'''
'''별호'''
동륜왕 / 동륜태자[1]
'''성씨'''
김(金)
'''이름'''
동륜(銅輪)
'''아내'''
만호부인 김씨
'''아들'''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부왕'''
진흥왕
'''생몰연도'''
음력
? ~ 572
1. 개요
2. 생애
3. 같이보기


1. 개요


신라왕족. 신라 24대 왕 진흥왕사도태후의 장남이자 25대 진지왕의 형, 26대 진평왕의 아버지. '''진평왕 이후 모든 신라 왕들의 직계 조상이다.'''[2]
이름은 4명의 전륜성왕 중 하나인 동륜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동생 김사륜(진지왕)의 사는 순우리말 를 음차한 것, 즉 동륜왕 다음인 철륜왕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신라는 불교에서 왕족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흔했다.

2. 생애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를 확장해 포석을 닦아두고 장남으로서 태자에 책봉되어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해버렸다. 이 때 진흥왕은 아직 겨우 30대 후반이었는데,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이나 진흥왕 본인도 몇년 못 가 요절한 것도 태자를 너무 빨리 보낸 충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어린 자신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잠시 동생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온 셈.
위서인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있는 내용으로는 위 사망 과정에 좀 더 내용이 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3. 같이보기



[1] 삼국유사 왕력편에서의 명칭.[2] 진흥왕 사후 잠깐 남동생 진지왕에게 왕위가 돌아가기는 했으나, 진지왕이 폐위되자 동륜의 장남인 진평왕이 왕위에 올랐고, 이후 두 손녀인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재위했으며, 또 다른 손녀인 천명공주의 아들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신라 중대에는 무열왕 남계, 신라 하대에는 무열왕 여계가 왕위에 올랐다. 선덕왕 김양상은 성덕왕의 외손자이고, 원성왕 또한 증조모가 태종 무열왕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