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셰비키
1. 개요
러시아어로 소수파(少數派)라는 뜻이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조직론을 둘러싸고 당이 양분되었을 때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다수파)와 대립하던 소수파를 말한다. 지도자는 율리 마르토프이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러시아가 후진국이며 전제적인 차르 정권을 무너뜨리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했다. 멘셰비키들은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을 성공시켜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이룩하기 위해 그 이전까지는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하고 합법적인 방법만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볼셰비키는 부르주아 혁명이 우선적으로 일어나야함에는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정당과의 협력과 합법적 투쟁 노선은 혁명을 위한 움직임에 제한을 가할 뿐이라고 주장했고 둘의 노선은 평행선을 그리게 되었다.
'실제로는 '다수파' 라는 뜻의 볼셰비키가 절대적으로 숫자가 적었고 ''''소수파' 라는 뜻의 맨셰비키가 훨씬 숫자가 많았다.''' 둘의 이름은 결국 스스로의 세력을 과장하고자 했던 레닌의 프로파간다로 붙었을 뿐이다.' 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대립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둘 사이의 분열이 절대적이지는 않았고 사회민주노동당 내에 둘 사이에 속하지 않는 제3지대의 인물들도 있었고 둘 사이를 왔다갔다한 인물들[2] 도 있었다. 2차 당대회에서도 처음에는 멘셰비키가 다수였으나 표결이 반복되면서 볼셰비키가 다수파가 되었고 4차 당대회에서는 멘셰비키가 다수파를 유지했다. 피의 일요일로 촉발된 혁명이 혁명가들의 패배로 마무리되자 멘셰비키 일부는 합법적 투쟁에 의문을 품고 볼셰비키로 돌아서거나 아예 전향하며 세가 약해진다. 1912년 멘셰비키/볼셰비키 양파(兩派)는 정식으로 인연을 끊었다.
멘셰비키는 1차대전에서 반전파에 속했지만 당내 우파 일각은 찬전측에 서며 분열되었고 또 세가 약해졌다. 1917년 3월 혁명(구력 2월 혁명)이 일어나자 임시정부와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내각을 지지했고 케렌스키에게 끌려서 찬전론을 지지했다. 케렌스키는 대중의 지지가 높았던 멘셰비키를 끌어들여서 찬전론 때문에 나빠진 자신의 지지도를 끌어올려보려했지만 오히려 멘셰비키의 지지율까지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유일하게 전쟁 중단을 외치는 정당인 볼셰비키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지지를 끌었고 11월 혁명(구력 10월, 러시아 혁명)이 터지며 케렌스키와 함께 실각했다.
2.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와는 대립되는 포지션에 있었지만 의외로 적백내전에서도 선뜻 백군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당내 우파는 백군에 가담했고 캅카스의 멘셰비키들은 독자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시도했지만 당 대표 율리 마르토프 등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적군을 지지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꾼 볼셰비키는 내전 과정에서 승리를 위해 농촌에서의 공출을 허용하는 전시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했으나 멘셰비키는 이를 비판하며 다시 둘 사이의 균열이 시작되었다.
1918년 러시아의 영토 대부분을 포기하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맺어지자 사회혁명당의 파니 카플란은 레닌을 암살하려 시도하나 미수에 그치고만다. 공산당에서는 사회혁명당에 복수의 칼날을 꺼내들었고 이 과정에서 멘셰비키 역시 탄압되기 시작한다. 병 치료를 이유로 독일로 출국하는 마르토프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주요 인사는 이때 망명했는데 공산당 측에서는 가볍게 출국을 허용했다. 멘셰비키 조직 자체가 거의 무너지기도 했고 멘셰비키와 공산당의 골이 아직은 그렇게 깊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전의 최후 시점에 아나키스트 등을 주축으로 크론시타트 반란이 일어나자 결국 멘셰비키 역시 불법화가 내려졌다.
멘셰비키의 일원들은 볼셰비키로 전향하거나 정치를 포기하고 소련에 정착하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그러나 1930년대 불어닥친 대숙청의 광풍으로 소련에 남았던 옛 멘셰비키 가담자들은 대규모로 숙청되었다. 그나마 해외 망명자들이 세운 멘셰비키계 정치단체가 1970년대까지 외국에서 활동했다.
[1] 본래 성씨는 '체데르바움(Цедербаум)'이다.[2] '''레프 트로츠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