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Александра Михайловна Коллонтай'''
''' 본명 '''
Aleksandra Mikhailovna Kollontai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 출생 '''
<colbgcolor=white,black>1872년 3월 31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52년 3월 9일, 소련 모스크바 주
''' 매장지 '''
노보데비치 묘지
''' 국적 '''
[image] 러시아 제국[image] 소련
'''학력'''
취리히 대학교
'''직업'''
혁명가, 정치가
''' 정당 '''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
1. 개요
2. 생애
3.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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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혁명적 연애관을 주장해서 독특한 이력을 남긴 러시아의 혁명가, 정치인, 소설가, 마르크스주의 여성 해방 이론가 및 운동가. 세계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붉은 사랑》,《날개 달린 에로스》,《성의 관계와 계급 투쟁》,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 등이 있다.

2. 생애


러시아 제국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핀란드인. 그 때문인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의 독립을 지지했다가 독일로 망명한 적이 있다.
당대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고등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3. 사상


러시아의 혁명가들 중에서도 매우 급진적이고 자율적인 주장들을 많이 펼쳤다. 노동조합이 모든 경제를 관리해야 하고 당과 국가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크론슈타트 반란 때도 수병들을 진압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때문에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두 사람 모두의 눈 밖에 나서 권력의 중심에선 좀 거리가 있었다. 외교관으로 주로 국외로 나가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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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2월의 인민위원평의회. 치체린, 레닌 등이 보인다. 레닌의 왼쪽(사진에서는 오른쪽)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콜론타이이며, 레닌과 콜론타이 사이에 서있는 사람은 스탈린, 콜론타이 왼쪽(사진의 오른쪽) 뒤에 서있는 사람은 콜론타이의 남편이었던 파벨 디벤코. 이 인민위원 중 디벤코를 포함해 다섯 명이 대숙청 때 죽었다.
이렇게 완고한 사회적으로 굉장히 진보적 스탠스를 취했으며 볼셰비키 원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오시프 스탈린 체제에서는 의외로 잘 살아 남았는데, 일단 권력의 핵심에서 이미 밀려났던 것도 있고, 스탈린 눈 밖에 나지 않게 행동했기에 진보적이고, 양성평등적인 소련이란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줄 수 있는 쓸모 있는 간판이라 판단되어 스탈린이 별로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이 생존이 얼마나 특기할 일이었냐면,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의 최고 원로이자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중앙 위원 중 스탈린과 그 지지자인 무라노프를 제외하고 '''유일한''' 생존자였다. 러시아 혁명 때 수많은 사회주의 정파가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이 정도 거물은 거의 없었다. 사회혁명당 좌파의 수장이자 한때 볼셰비키의 동맹이었고 지지까지 받았지만 결국 스탈린에게 죽은 마리아 스피리도노바, 레닌의 아내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백군에 가담했다 체코로 망명 간 예카테리나 브레시콥스카야 등은 '''레닌의 바로 옆자리에 앉던''' 콜론타이만큼의 유명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주장은 혁명적 연애에 대한 주장이다. 물론 사회주의 자체에서도 성개방, 자유 연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 보았다. 하지만 콜론타이의 주장은 그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급격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 관계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경제적 단위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콜론타이는 가족이 혁명적 사회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연애라는 감정을 통해서 서로를 소유하려는 부르주아적 연애관은 약탈적이고 불건전하다고 주장했다. 서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일부일처제를 넘어서는 연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날개 달린 에로스' 개념이다.
봉건제적 연애는 기사와 귀부인의 사랑처럼 정신적인 사랑이 강조된 나머지 육체적인 부분이 간과되고, 자본주의적 연애는 그와 반대로 정신적인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예가 성매매이다. 콜론타이는 따라서 사회주의적 연애는 정신과 육체가 공존하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육아의 완전한 사회화가 필요했다. 또한 성욕은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성욕의 충족은 물 한 잔 얻는 것처럼 간단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한다. '물 한 잔 이론'이라고 블라디미르 레닌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저 주장 때문에 회의장이 난리가 나자, 레닌이 "그렇다고 아무 물이나 마실 수는 없잖아!"라고 외치며 모두 버로우시켰다.
인간이 인간 그 자체의 존재로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것, 또한 질투라는 감정을 부르주아적 감정으로 규정하고 자유로운 급진적 연애관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후대의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1]나 좌파들에게 많은 영감을 남긴다.

[1] 다만 콜론타이 본인은 어떤 노선이 되었든 부르주아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한 바 있다. 클라라 체트킨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