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스의 대화

 

1. 개요
2. 배경
3. 전개
4. 여담


1. 개요


그리스 세계의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 제국과, (사실상) 중립국이었던 멜로스 사이의 외교 일화.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려 후세에 전해졌다.

2. 배경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장기간의 전쟁에서 쉽사리 승리하지 못하고,[1] 만방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걸 매우 불명예스럽게 여겼다. 더군다나 내정이 매우 불안했고, 아테네의 시민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낀 상황에서 돌파구로 찾은 것이 멜로스[2]를 손봐주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혼란한 내부상황을 규합하는데 가장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멜로스는 아테네가 공격하기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멜로스는 섬 국가였는데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육군이 매우 강력하였지만 해군은 아테네의 위엄돋는 함대를 따라갈 길이 없었다.[3] 한 마디로 아테네가 맘껏 멜로스를 조지기 시작해도, 스파르타는 멜로스를 원활히 돕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아테네는 해양 국가의 맹주로서, 같은 해양 국가인 멜로스를 자신의 밑으로 굴복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4] 또한 과거에 아테네가 멜로스를 한 번 살짝 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멜로스가 아테네에게 복속할 것을 거부한 것도 아테네 제국의 권위를 손상시킨 면이 적지 않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만한 멜로스를 정복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아테네 시민들에게 승리의 영광을 고양시켜줄 수 있었다.

3. 전개


마침내 아테네는 동맹군을 소집하여 멜로스로 향한다. 아테네는 멜로스를 직접 무력으로 쳐부수려 하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무력시위를 하여 항복을 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항복도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정벌할 생각은 없었던 것. 이 때 상륙한 아테네 사람과 멜로스 사람의 대화를 재구성 한 것이 멜로스의 대화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투키디데스의 원문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의 주석을 단다.

* 아테네인: 이제 우리는, 우리가 페르시아인들을 무찔렀기 때문에 제국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는 식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5]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에게 비록 당신들이 스파르타를 돕지 않았다거나 우리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식의 말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말 것을 요구할 것이다.[6] ... 당신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잘 알겠지만 이런 문제들이 실제적으로 논의될 때 정의의 기준은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의 질에 달려있다. 사실상 강자는 그들이 할 힘이 있는 것을 하는 것이며, 약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7]

* 멜로스인: 당신들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득실에 관해서만 논의하자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정한 처우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그대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귀국이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심하게 보복하는 것인지 당신들이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날이 올 것이다.[8]

* 아테네인: 우리는 우리 제국이 당신들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들이 당신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한다.

* 멜로스인: 그렇지만 우리가 노예가 되는 것과 당신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어떻게 똑같이 좋은 일일 수 있는가?

* 아테네인: 당신들은 항복함으로써 재난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고, 우리는 당신들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당신들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다.

* 멜로스인: 우리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호의적인 중립국으로 남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가?

* 아테네인: 용인할 수 없다. 당신들의 호의가 당신들의 적대감보다 우리에게 더 위험하다. 당신들의 호의는 우리가 무력하다는 징표로, 당신들의 증오심은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속국들에게 받아들여질 테니까.[9]

* 멜로스인: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제안에는 당신들을 위한 안보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서 다시 당신들은 우리에게 정의를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당신들의 이익에 승복하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지 말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대들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합치된다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현재 중립적인 국가들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게 되면, 당연히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 당신들이 그들도 공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 당신은 그들 모두를 적으로 만들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 그러나 우리는 전쟁에서 운명은 가끔 약자에게 좀 더 많은 여지를 준다고 알고 있다.[10]

* 아테네인: 그런 생각이 위험 속에서 위안이 되기를!

* 멜로스인: 우리들은 그릇된 것에 반하여 옳은 편에 서 있으므로 신이 당신들과 동등한 행운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은 우리와 스파르타인과의 동맹으로 채워질 것이고, 그들은 다른 이유보다도 명예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선린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도우러 올 것이라 믿는다.

* 아테네인: 신의 호의에 관한 한 우리도 당신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신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의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한 것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일반적으로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후 우리가 처음으로 그에 따라 행동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발견했고, 이것을 우리 이후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영원히 존재하도록 남겨둘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우리는 당신과 다른 이들도 우리와 동등한 권력을 갖는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에 관한 한 우리가 불리한 편에 서 있다고 걱정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스파르타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명예를 고려하여 그들이 당신을 도우러 올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당신의 단순함이 놀라울 뿐이지만 당신의 어리석음을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임을 말해두겠다.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 스파르타인들은 명예롭다거나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 정의롭다고 믿기에는 가장 의심스러운 자들이다.

* 멜로스인: 그러나 이는 바로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들의 이주민인 멜로스인[11]

들을 배반하지 못할 것이다.

* 아테네인: 당신들은 만약 어떤 이가 자신의 이익을 따른다면 자신이 안전하기를 바랄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반면 정의와 명예의 길은 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 ...... 잘못된 명예의 감각으로 인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 당신이 만약 올바른 견해를 취한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전쟁과 안전 중에서 선택을 하도록 허용되었을 때 잘못된 선택을 할 만큼 무감각하게 오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헬라스의 가장 거대한 도시가 당신에게 조공에 기초를 둔 동맹과 당신 자신의 부를 즐기는 자유를 허용할 정도로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했을 때 그에 승복하는 것은 불명예가 아님을 알 것이다. 동등한 자에게 대항하고, 우월한 자에게 존경심을 갖고 행동하고, 약한 자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안전의 법칙이다.

* 멜로스인: 아테네인들이여, 우리의 결정은 처음과 똑같다. 우리는 우리 도시가 탄생한 이후 700년 동안 누려온 자유를 짧은 순간에 포기할 마음이 없다.

* 아테네인: 당신은 단순히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것을 현실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아테네가 단순한 협박이 아닌 근거를 들면서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근거는 아테네의 힘. 누구나 이 정도 힘을 갖게 되면 응당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얼마든지 정복 가능하지만,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피해는 불가피 하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여유롭게 해결하는 편이 양쪽에 이득이 된다는 것. 이에 대해 멜로스는 외교적 문제, 신에 대한 믿음, 스파르타의 지원을 들어 설득해보려 했으나 셋 다 아테네는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특히 스파르타의 지원에 대해서는, 대놓고 그런걸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깐다.
결국 멜로스는 아테네와 전쟁에서 패배하고 남자는 몰살 당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려나가, 폴리스는 괴멸했다. 위의 내용에서 멜로스는 스파르타에 큰 기대를 건 모양인데[12], 스파르타는 지원을 하지 않고 멜로스와의 느슨한 유대를 인증한다. 아테네 말마따나 스파르타 입장에서는 굳이 아테네와 전쟁을 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멜로스를 지켜낼 전략적 가치가 없었거나, 그 전의 멜로스의 미온적인 지원에 대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4. 여담


이 일화에 대하여 정치학적으로 풀어 해석한 기사가 있다.
이 일화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적 관점, 즉 힘의 논리를 잘 설명하는 가장 고전적인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이 힘의 논리는 근대의 정치현실주의로 발전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저술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아테네의 힘의 논리가 당연한 승리를 거두고 있지만 후반에는 패전한 아테네가 멜로스에 대해 자행한 인종청소행위를 자신들이 돌려받게 될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와 연관지어 보면 저자는 멜로스인의 입을 빌려 선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 전쟁이 업보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즉, 이 부분만 발췌해서 보면 명분론의 완패이지만,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힘의 논리와 대의명분이 교차하는 것이 이 대목이라는 뜻이다. 현실주의든, 자유주의나 구성주의든간에 스스로 지지하는 정치적 패러다임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아테네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란 권리를 가진 자들의 평등이고,[13] 이 권리는 살리미스 해전을 통해서 유산층에서 빈곤층까지 확장했으나 아테네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제국을 만들고 다른 폴리스를 삥 뜯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즉 이 정도 힘이라면 다른 폴리스 좀 삥 뜯어도 되겠다고 민주적으로 결정'''한 것이 제 2차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기까지의 아테네였다.
여담이지만 멜로스의 대화 이후 다음 장이 아테네가 대패하고 전쟁에서 지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인 2차 시칠리아 원정이다.

[1] 끝내 제압하지 못하여 결국 평화를 맺는다.[2] 스파르타의 동맹이긴 했지만 사실 느슨한 동맹 관계에 있었다.[3] 해군력을 어느 정도 보유한 폴리스들이 있었지만, 아테네 해군이 너무 강력해서 2·3·4위의 폴리스들를 더해야 겨우 따라잡을 정도. 그 폴리스들이 전부 펠로폰네소스 가맹국인 것도 아니고.[4] 아테네는 해양국가인 멜로스가 아테네에 간섭없이 계속 생활하게 된다면, 아테네 제국내의 다른 폴리스들이 제국과 델로스 동맹의 지배체제 하에서 이탈할 우려가 있었다. 즉 델로스 동맹, 아테네 제국내의 다른 해양 폴리스들이 " 쟤는 왜 그냥 둬요? " 하면 할 말이 없어질 게 두려웠단 얘기.[5] 아테네는 줄곧 스파르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 우리가 팽창한 것은 우리가 페르시아를 혼내주니까 페르시아에 인접한 식민 도시들과 폴리스가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해서 이렇게 커졌다 " 라는 식의 변명을 사용해왔다. 이 상황에서는 아테네가 우위이니 이제 그딴 거 개나 주란 얘기. 한마디로 '항복하거나 죽거나 선택하라.'[6] 위에 잠깐 언급했듯이 스파르타와 멜로스간의 유대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아테네 또한 스파르타를 지원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침공해 온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을 쉽게 말하면 '''니가 나한테 뭐 아무것도 안했다고 해서 내가 널 때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집어치워!'''[7] 해석 = 국제 관계에서는 힘이 짱이고, 내 일은 너를 조지는 거고 네 일은 그 조짐을 당하는 거야.[8] 아테네인의 심기를 거슬리게도 하는 부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쉽게 이기지 못하고 굴복한 상황에서 멜로스를 치러 온 것인데. "지금 우리에게 하는 행동이 곧 너희들에게 돌아올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건 알지?"라고 돌려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9] 아테네는 이미 출병 때부터 사실상 멜로스를 정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었다. 동맹 전부 소집해서 와글와글 몰려 왔는데, 중립을 지킨다고 해서 돌아가면 아테네의 위신은 다시 한 번 손상 되는 셈이다.[10] 멜로스가 자신들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테네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최대한으로 설득하고 있는 장면.[11] 멜로스는 스파르타계 이주민이 건설한 식민도시다.[12] 그리스 최고의 강대국 vs 평범한 섬나라의 구도, 단순히 오지 않을 스파르타의 이름을 팔아 잠시 평화를 사려는 거였으면 알아서 항복했겠지만, 결국 전투를 개시하여 전멸한 것을 보면 정말 스파르타의 지원을 기대한 듯하다.[13] 아테네도 신분제 사회였고, 민주주의 또한 자국 성인 남성의 투표권만이 인정되었다. 그나마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타 폴리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비록 성인남성에 한하긴 했지만 노예 빼고 빈부격차는 상관없이 모두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