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인

 

慕容仁
(? ~ 336)
전연의 인물. 모용외의 아들.
319년에 정로장군에 임명되어 요동 지역을 진무해 관부, 시가지 등을 예전처럼 안정시켰으며, 고구려가 요동을 여러 차례 공격하자 모용한과 함께 고구려군을 공격했다가 미천왕이 맹약을 맺자고 하자 모용한과 함께 귀환했다. 321년에도 고구려가 요동을 공격하자 맞서 싸워 격파했으며, 평곽을 진수해 백성들과 이민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모용한에게 버금갔다고 한다.
325년에 석륵이 우문걸득귀를 시켜 공격하게 하자 우문걸득귀를 공격하면서 우문실발웅을 참수했으며, 모용황과 함께 우문걸득귀를 격파했다.
333년에 모용황전연을 건국했는데, 모용황이 모용한, 모용소 등과 함께 모용인을 시기하면서 모용한이 단부로 피신하자 모용인은 모용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모용인은 모용소에게 자신들이 평소에 교만해 사군(모용황)에게 무례하게 군 것을 걱정했는데, 모용소가 군사를 일으키자고 하자 이를 수락했다. 평곽으로 돌아간 후에 모용소와 모의한 것이 탄로난 것을 알고 사자를 죽였으며, 모용황이 고후, 모용유, 모용치, 모용군, 모용한[1], 동수 등을 파견하자 문성 북쪽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모용유, 모용치, 모용군을 붙잡고 동수를 항복시켰다.
손기가 요동성에서 호응해 요동성을 함락하면서 요동을 전부 차지했으며, 334년에 평주자사, 요동공이라 칭하고 모용외동진 조정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왕제가 모용황에게 관직을 임명하려는 조서를 가지고 오는 길에 억류했다. 전연군의 공격으로 거취, 신창 등이 함락당하자 군사를 파견해 신창을 습격했지만 격파당했다.
335년에 억류했던 왕제를 돌려보냈고 336년에 모용황이 군사를 일끌고 공격하면서 모용군이 부대를 이끌고 전연에 항복했는데, 이로 인해 무리들이 동요하면서 전연의 군사에게 격파당하자 달아났다가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1] 단부로 도망간 모용한과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