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

 




'''연
燕'''

'''(307년[1]~)337년 ~ 370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서진'''
'''전진'''
'''후연'''
'''별칭'''
'''전연'''(前燕), 모용연(慕容燕)
'''위치'''
중국 화북 동부
'''수도'''
(薊), 업성(鄴城)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성'''
모용(慕容)
'''국가원수'''
선우(337년) → 황제(352년)
'''주요 황제'''
모용황
경소제 모용준
'''언어'''
중세 중국어, 선비어
'''문자'''
한자
'''종교'''
불교, 도교, 유교
'''종족'''
선비족, 한족
'''현재 국가'''
중국
1. 개요
2. 한국사와의 관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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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호십육국 시대에 선비족모용부가 세운 국가.
실제 국호는 '''연(燕)'''이고 전국시대연나라와 훗날 전연을 부활시킨 후연(後燕)과 구분하기 위해 앞 전(前)자를 붙여 전연, 북연(北燕)이라 한다.
요서를 근거지로 발흥하여 모용외 재위 시부터 성장하기 시작하여 모용황 때는 칭제 건원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호십육국의 혼란을 틈타 중원 동부 관동을 차지할 정도로 강대국으로 거듭나 화북 통일 유력 후보 중 하나였다.
훗날에 전진의 황제였던 부견에 의해 멸망했으나,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인 모용수가 부견을 부추겨 비수대전을 일으켜 전진을 망하게 만들고 후연을 건국하기도 하였다.

2. 한국사와의 관계


한국에는 고구려 고국원왕 때 쳐들어와 환도성을 털고, 미천왕의 능을 도굴하며,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인질로 잡아가는 등 중기 고구려를 패배시킨 숙적으로 유명하다. 고구려는 미천왕의 시신과 고국원왕의 어머니가 고구려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연에 조공을 바쳤으나 모용황은 미천왕의 시신만 돌려보냈다. 오랫동안 조공을 바친 뒤에야 모용준에 의해 고국원왕의 어머니를 데려올 수 있었다. 다행히(?) 당대에 나름대로 복수는 할 수 있었는데 전진이 전연을 격파하자 고구려로 쫓겨 온 전연의 태부 모용평을 붙잡아 진나라로 넘긴 것이다. 이후 고구려는 광개토왕 시대 전연의 후신 후연에게서 승리하여 요동을 차지하며 복수를 성취한다.

3. 기타


무협소설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모용씨의 부흥을 꾀하는 모용세가라는 세력의 모티브이다.

4. 역대 황제


<rowcolor=#fff>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고조(高祖)
선무황제(宣武皇帝) [2]
모용외
-
-
-
1대
태조(太祖)
문명황제(文明皇帝) [3]
모용황
-
337년 ~ 348년
용평릉(龍平陵)
2대
열조(烈祖)
경소황제(景昭皇帝)
모용준
원새(元璽) 352년 ~ 357년
광수(光壽) 357년 ~ 360년
348년 ~ 360년
용릉(龍陵)
3대
-
유제(幽帝)[4]
헌무황제(獻武皇帝) [5]
모용위
건희(建熙) 360년 ~ 370년
360년 ~ 370년
-
[1] 모용외가 대선우를 자칭. 이때는 선비 모용부였을 뿐 연이라는 중국식 국호는 없었다.[2] 경소제 추증[3] 경소제 추증[4] 서연의 모용홍이 추존.[5] 남연(南燕)의 모용덕이 추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