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무기)
矛
1. 개요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된 창과 유사한 장병기. 우리말로는 투겁창이라고도 한다. 이 이름이 붙는 무기 중 유명한 것으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의 장팔사모가 있다.[1]
좁은 의미의 창과 마찬가지로 주로 적을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며, 후대의 창(槍)과 별다르지 않아 뚜렷한 구분점을 찾을 수가 없다. 국내에서는 창은 칼처럼 슴베가 있어 날이 자루 안으로 들어가지만, 모(矛)는 날에 주머니처럼 달린 투겁식의 소켓에 나무 자루가 들어간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창이나 모나 소켓식, 슴베식이 둘다 존재하므로 정확한 구분이라 할 수 없다.[2]
양자의 구분은 형태상의 특징보다는 시대와 용법에서 차이가 난다고 보는 게 맞는데, 창은 주로 양손으로 사용하지만, 모는 대체로 방패와 함께 한손으로 사용한다. 모가 짧다는 말이 있지만 수나라의 모는 한손으로 사용함에도 4.5m정도의 길이를 가졌으며, 그리스 아테네의 이피크라테스 군제개혁 당시의 한손창은 3.6m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피크라테스 군제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창대 길이를 늘리는 것이었다.
대체로 모와 방패의 조합에서 양손으로 쓰는 창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7~13세기의 기간 동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기병이 카우치드 랜스 전법과 등자의 보급 완료 등으로 전투력이 크게 향상된 시기이고, 양성 자체도 쉬워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기병이 전쟁에서 일약 주역으로 나서게 된 시기인 것이다. 보병이 방패를 버리고 창을 양손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기병의 전투력 강화와 맞물려 기병에게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변화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에선 2세기 후반~4세기까지 경상도 지역에서는 판상철모라 하여 단면이 판상이고 날의 길이가 긴 철모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도검류 무기들 중 후대의 협도처럼 찌르기와 베기를 동시에 담당하는 장병기였다.(참조:이뮤지엄)
또한 광형동모라는 것도 있는데, 주로 일본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모처럼 생겼지만 날이 지나치게 넓고 얇아 실용성은 없는 구리 합금제 의례용 장식품이다. 한반도에서는 일본과 자주 교류했던 김해, 고성 등 구 가야 지역에서 조금 출토된 바가 있다.
2. 관련 문서
[1] 관우가 실제로 쓴 무기도 청룡언월도가 아닌 모였을 거라 추측된다. 월도가 후한 시대에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2] 정확히는, 그런 구분은 일본식의 구분이다. 야리(槍)와 호코(矛)의 차이에서 나온 말.[3] 해당 고사성어의 모가 바로 이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