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선사

 

無色禪師. <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 소림사의 승려로 나한당(羅漢堂)의 수좌.
지금은 몇십년간 불문에 몸을 담아 정통한 고승이 되었으나, 청년 시절에는 한때 녹림에 가담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호연지기가 있어 양과와도 절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조협려>에서는 양과의 부탁을 받아, 곽양의 생일선물로서 다른 여러 고수들과 함께 몽골군의 군량과 마초를 불태워 없애고 화약고를 폭파하는 일에 가담했다. 또 곽양에게 철나한 상을 인편으로 전해주었다. 다만 신조협려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나한당 자체가 소림사의 명성에 도전하는 외래 고수들을 접대하는 처소인 만큼, 그 수좌인 무색선사의 무공 또한 소림사에서 손꼽을 만큼 고강하다. 게다가 무색선사는 소림사의 명예뿐 아니라 젊은 시절의 호승심 또한 남은 사람이라, 무림 각 파의 무공들을 두루 연구하고 철저하게 분석하며 소림사에 도전해 오는 무림인들을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탓에 곽양각원대사와 관련한 오해로 나한당 제자들과 시비가 붙자 '십 초를 겨루는 동안 아가씨의 사문 내력을 알아내겠다'라고 대뜸 내기를 걸기도 했다. 곽양의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무색선사의 견문으로 십 초 동안 무공의 내력을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 그런데 하필이면 곽양이 기연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당대 무림의 독창적이거나 심오한 상승무공들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구사할 수 있는 인재였던지라(...) 십 초를 다 겨루고도 곽양의 사문 내력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상태였다.[1] 하지만 우연히도 무색선사가 곽양이 떨어뜨린 철나한상을 보고 그녀의 신분을 알아맞춘 덕에 곽양과 화해하게 된다.
장군보가 나한권으로 하족도를 물리쳤을 때, 규율을 어긴 것을 변호하기도 했다. 각원대사장군보곽양을 데리고 도망치자, 그들이 걱정되에 뒤를 쫓아왔다가 각원대사가 원적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구양진경을 일부 듣게 된다. 각원대사에게 게송을 읊어주고 소림사로 돌아왔다. 원래 낡은 계율에 얽메어서 공을 세운 장군보를 몰아세우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으므로, 소림사에서는 장군보가 도망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서 찾게 하는 식으로 장군보를 도와주었다.
후에 각원대사가 입적 전에 낭송한 구양진경의 내용을 소림신공에 접목시켜 소림구양공의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각원대사의 낭송을 들은 세 사람 중 가장 무공의 수위가 깊었기에, 소림구양공은 아미구양공, 무당구양공과 장단을 비교할 때 가장 강맹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2]

[1] 곽양은 십 초 모두 다른 문파의 무공으로 공격했는데, 전진파 검법이나 철장공처럼 유명한 무공부터 옥녀검법, 타구봉법처럼 무림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공 등이 섞여 있어 무색선사의 견문으로도 내력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구사한 것은 소림파의 나한권(...).[2] 곽양의 경우 다양한 무학을 일신에 익혔기에 아미구양공을 정묘한 형태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무림의 각종 무공에 통달한 무색선사가 곽양보다 반드시 견문이 낮다고 볼 일은 아니나, 무색선사 본인은 무공을 구사함에 있어 순수하게 소림파의 무공만을 숙달해 구사하는 정통파 고수였기 때문에 소림신공의 단순하면서도 강맹한 장점을 심화시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곽양의 경우 낭송을 들을 당시 무공의 수위가 깊지 않기도 했지만, 이미 어린 나이에 온갖 고수들과 함께하며 타구봉법, 공명권 등 무색선사조차 몰라볼 희귀한 무학을 다수 알아둔 상태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아미구양공이 정묘하고 다양한 발전을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