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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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림사'''(少林寺)는 중국에서 오악 중 중악이라 불리는 허난 성(하남성)의 쑹산(숭산)에 위치한 절이다. 무술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무협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고 중요하게 다뤄진다. 중국인으로 무술을 사용하는 대머리 캐릭터는 다 소림사 출신이거나 소림사 스님이라고 할 만큼 무술의 아이콘이다. '''중국 100대 명사[3] 중 하나였다.'''
2. 역사
서기 495년 천축(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서기 520년 천축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수련하여 돈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유명하다. 실제로 도교의 중심 도관 중 하나인 무당파와 마찬가지의 케이스인데, 스케일 면에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다. 북송 대에는 이미 승려가 7천 명이 넘어서 이미 숭산에 수많은 말사나 암자를 두어서 공부와 수련 등을 행했고, 소림사 자체는 중앙 총괄본부 정도의 위치로 모여서 회의하는 기능밖에 없었다고.
설화에 의하면 소림 무술이 처음 창시된 시기는 당나라 때로 전설에 따르면 이세민이 왕세충과 싸울 때 13명의 소림사 승려들이 도왔다고 한다.[5] 이후 명나라 초기 사료에 따르면 원나라 말기에 소림사를 홍건적들이 습격해서 불상의 금박을 벗기고, 복장유물[6] 을 찾기 위해서 불상을 파괴해서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불목하니로 있던 긴나라왕이 불쏘시개 들고 홍건적을 다 때려잡았다고 하는데 전설은 전설일 뿐.[7]
실제로 소림 무술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시기는 명나라 가정제 때부터로, 이때 유대유의 '정기당집', 하양신의 '진기' 등 일부 사료에 소림 무술이 등장하며, 정기당집에 따르면 유대유가 소림 곤법이 창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소림사를 방문하니 이미 소림사의 무술이 크게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승려 2명을 군대로 불러서 3년간 곤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소림 무술이 이전에도 존재한 건 사실이나, 이전 사료에는 나오지 않았던 소림 무술에 대한 사료들이 이 시기에 들어와서야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볼 때, 실제로 소림 무술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가정제 때부터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 무술의 원류라는 이야기도 명확한 근거는 없고 현대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소림사 봉술도 이때 이후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림사의 대표무술이 곤법이 되었고, 소림사는 외부의 무술들을 받아들여서 양적 성장을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림사가 총괄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각 말사에서 알아서 수련하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잡아서 수련했다. 당연히 소림사 사내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무협소설에서 소림사만 72종 절예 운운하면서 양으로 때우는 경향이 보여주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기 때문.
소림사가 초창기에 무술로 유명해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와중에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걸인, 맨주먹으로 살인을 하고 현상수배당한 범죄자, 낙오된 도적패, 멸망한 나라의 장수 등등 온갖 부류의 무술인들이 숨어 살거나 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곳에 유입되었고, 그들의 노하우가 소림사에 점점 쌓이게 되어 오늘날의 소림사 무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쇠퇴하고 다시 재건되었다. 이렇게 흘러들어간 사람들 중 유명한 것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난징군구 사령관을 지낸 쉬스유가 있다.
그나마도 1928년 1차 장풍전쟁 중에 장제스 편을 들어 참전했다가 펑위샹의 부하 스여우싼에게 승려들이 학살당한 후 소림사가 불타버린 사건이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 완전히 박살이 나서, 현재 소림사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무당파와 마찬가지로 99% 다른 곳에서 끌어온 무술이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림무술의 시조는 소림사 2대 주지인 초우선사라고 한다. 달마 당시에는 소림사란 절은 없었다고.
남소림사 문서도 참고할 것. 이쪽은 아예 전설이라고 보면 된다.
숭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은 절이 있는데, 숭산의 소림사를 따라한 것은 아니고 단지 이름이 같은 것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복건성 천주의 소림사는 숭산의 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남소림사라고도 불린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3. 현재
홈페이지
현재는 중국 정부의 공인 체육 교습 기관이다. 그것도 최고 담당자인 주지스님이 정부와 바로 닿아있는 탓에 생각보다 파워가 세다.
중국 각지에서 학생을 받아서 3가지로 문파를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통적인 방식의 승려 양성 코스. 다른 하나는 무술 수련 코스, 나머지 하나는 바로 무술 시범단이다.
이중에서 흔히 말하는, 무술을 할 줄 아는 소림사 승려가 2번과 3번 부류다. 이들은 체력유지 차원에서 고기도 먹을 수 있는 데다 기본적으로 승려 생활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복장만 승복이다. 3번의 경우도 대체로 화려한 동작이나 시범용 기술들을 주로 수련하기에, 실제로 격투기로서 무술을 배우는 쪽은 2번 부류다.
중국 절이라 중국 무술만 배울 것 같지만, 소림사를 취재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면, 하룻동안 수업시간에 따라 중국무술도 배우고, 그 다음엔 복싱을 배우고, 그 다음엔 태권도를 배우고, 가라데를 배우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무술을 배우기 때문에 실은 종합무술 수련반이다. 무에타이나 유도나 삼보 같은 그래플링도 배우긴 배우는데 이것은 2번의 무술수련 코스만 배운다. 무술 시범단은 태권도, 공수도까지는 배우지만 무에타이나 그래플링류 격투기는 배우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릉선수촌 비슷하게 엘리트 체육인 양성코스라 졸업생들은 대개 스포츠계(주로 격투기 종목)나 군인, 공안(경찰), 사설 경호업체, 영화배우 등으로 진출한다고… 영화배우가 되면 주로 액션 장르에서 맹활약하게 된다.[8] 그래서인지 무술 이외에도 와이어 액션도 가르친다.
해외여행을 가도 체험할 수 있다. 소림사찰 주변의 수많은 무술도장에서 달러 기준 3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2시간 정도의 인스턴트식 교육을 통한 공인 4급 무술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으면 근처 무술도장에서는 2015년 현재 월 60만 원 정도 (숙식 포함) 정도가 들어간다.
봉술과 검술은 보험 작성으로 인해 1시간 더 시간을 끌며 무기대여료가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형의권 계통 코스를 밟길 추천한다. 가격대가 싸고 시간도 비교적 적게 먹으며 증명서라고 오는 패와 카드가 제법 폼난다.
또한 근처에는 각종 무기를 팔고 있다. 없는 게 없다. 단, 세관에서 걸리니 주의.
소림사 근처를 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면 그럴듯한 옷차림을 한 지역주민이 갑자기 나와서 "비장의 소림 무술을 가르쳐주겠다..."라고 무술 강습 삐끼를 하는 경우가 가끔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영어로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따라가지 말자. 사기다.
2009년, 금녀의 공간인 절 내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모델들이 세계관광대사 선발대회를 위해 모이고, 또 2007년에는 9명의 여성 무림고수가 탄생했다. 여기 여기로.
"뭐야? 지금까진 세계유산이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들지만, 2010년에 들어서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고 한다.
2010년 12월 14일 이룽이라는 소림사 고수가 중국 허난성 방송국의 주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무림풍 무술대회에 나갔다가 북미 해병대 출신 복서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KO로 뻗은 것 때문에 소림사는 전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제법 요란하게 열린 행사였으나 떡밥급의 상대에게 관광을 당했고, 급기야 소림사 측에서도 '이룽은 정식 승려가 아니다'라는 식의 뻥으로 수습에 진땀을 뺐다. 이룽은 2013년 8월 10일에 열린 쁘아까오와 매치를 벌였는데, KO 패배를 안겨주었다고 유튜브를 통해 알려졌지만 '''페이크다'''. 매치는 이룽을 띄워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무에타이 파이터는 쁘아까오도 아니다. 더불어 경기 분위기도 코믹이었다. '''쁘아까오가 정말로 산타의 고수와 싸우는 경기에서는, 쁘아까오가 산타 고수를 보기 좋게 작살냈다. ㅎㄷㄷ''' 결국 2015년 6월 6일에 두 선수가 경기했고, 쁘아까오가 판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의외로 꽤나 접전인 경기였다. 이룽은 2015년 10월 기준 25승 1무 7패로 제법 괜찮은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선수 몇 명도 꺾은 경험이 있고, 본인에게 굴욕을 안겼던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판정승하면서 리벤지에 성공했다.
소림사는 대부분의 다른 권법들을 교습하는 방식과 전통 단련법들을 지도하곤 하는데 무당산처럼 그 전래의 권법이라고 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 꼽자면 소림 심의파와 소림72예라는 단련법, 그리고 소림곤법천종 정도. 소림72예는 신체를 단련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은 공법이 72가지라서 붙은 이름인데 요즘 헬스클럽에서 하는 웨이트 같은 방식부터 일지선 같은 초능력 같은 공법, 건강체조에 눈 좋아지는 수련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수영도 있다. 뭐 옛날에는 군사훈련 때 무술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이 수영이었다는 카더라도 있으니. 서림 문화사에도 나온 책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출판된 적이 있다. 소림 일지선의 경우는 만화 권아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공법.
소림 심의파의 경우는 해당 문서로. 소림72예와 심의파, 소림곤법천종 정도가 소림의 원류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뭐 사실 소림 72예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철비박, 쌍쇄공 처럼 다른 유파에도 있는 수련법들도 많긴 하지만...
소림사는 백두산에 사찰건립을 검토 중이다.
소림곤법천종의 곤법 같은 경우도 유대유에게 다시 배운 것이 확실하나 그 후 세월이 오래 흘렀고 새롭게 손도 본 만큼 소림사의 것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
후술할 주지스님의 추문과는 별개로, 허난성의 소림사가 축구선수 양성에도 나섰다고 한다. 중국 정부와 허난성은 소림국제축구학교를 건립하는 등 20억 위안(4710억여 원)을 투자하여 소림사를 무술의 메카이자 축구의 메카로 만들어 중국판 메시를 발굴, 양성하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2015-08-05 "2000명 소림사 메시가 몰려온다", 국민일보
현재 소림사라는 이름은 브랜드로 등록되었다. 하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소림사가 등장하려면 저작권료를 내거나, 다른 이름으로 개명해서 내야 한다.
여담으로 만화가 채지충이 2020년 11월 17일 소림사에서 머리를 깎고 석연일(釋延一) 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해 사미가 되었다. 출저
3.1. 주지스님
이른바 'CEO 주지'로 불리는 스융신(釋永信)이 1999년부터 현재까지 소림사의 방장을 맡고 있으며, 전폭적으로 소림 무술을 세계에 알리고 사업화하고자 노력을 기하고 있다. 소림사 자체를 브랜드화하여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9] 주지스님의 정책에 따라 인근의 잡상들과 무술 도장들이 많이 사라졌으며, 순수하게 수련생들을 받는 추세라고 한다.
2015년 8월 스융신의 성추문 의혹으로 인해 상당한 파장이 일고있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에 따르면 8월 1일 성추문 의혹을 받고 있는 방장이 관련된 '재산·치정 사건 진술서'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점차 초심을 잃고 세속화되는 소림사의 모습을 성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중. 2015-08-02 소림사 방장 성추문 확산…일부언론 "간통진술서 존재" (서울신문)
소림사에서 무려 666개나 되는 상표권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있다. 상표권 666개·소시지 광고…속세 못 버린 中 소림사
4. 대중매체
소림사 무술학교들, ‘공산주의 노선’을 취하도록 강요받아 - 비터 윈터
5. 관련 문서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3] 중국전역에 있는 사찰들 중에서 명나라때 사액을 내렸던 120개의 사찰중 100군데의 사찰에만 주었던 칭호이다. 그러나 현재 이 사찰들 중 단 25군데만 잘 남아있으며,나머지 사찰들은 중일전쟁과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모두 소실되었다. [4] 중국에서는 전세계 무술의 원류가 쿵푸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소림 무술이 인도 승려들이 세운 것으로 요가에서 무술이 전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도의 반론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소림 무술의 창시자는 전설과 달리 달마대사가 아닌 초우선사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5] 관련 사료에 의하면 원래는 승려들이 성에서 내응해 공성전을 도운 정도였지만, 후대에 가면서 승려들이 감옥에 갇힌 이세민을 구출했다는식으로 와전되었다.[6] 불상 내부에 공간을 마련하고 넣어두는 예물. 불경이나 조각들이 흔하다. 그리고 이름 있는 고승이 열반하면서 남긴 사리도 포함된다.[7] 여담으로 량치차오는 이 일화를 당나라 때의 일화랑 슬쩍 짬뽕하였다. 당시 중국은 열강들의 침공으로 안습한 상황이라 이런식으로 무술 전통을 강조하여 국민들이 무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하고 싶어서라고...[8] 대표적인 배우가 소림사 32대 무승으로 10년을 수련했던 석행우. 용호문을 통해 그 까다롭다는 견자단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도화선, 일개인적무림, 엽문 등에 함께 출연했다.[9] 스융신 스님은 MBA를 마칠 정도로 경영학에 관심이 깊은 몇 안 되는 스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선(禪)과 무술의 순수성을 상업화시키려는, 장사치에 불과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시각 또한 상당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