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

 


武陔
(? ~ 267년 이전)
서진의 인물. 자는 원하(元夏). 무주의 장남.
패국 죽읍 사람으로 동생인 무흠, 무무와 함께 소년 시절부터 칭송 받았고 한결같이 명망이 있었지만 향리의 어른들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지 못했으며,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 같은 군의 유창이 무주를 찾아갔다. 유창이 세 아들이 모두 나라의 준재라면서 무해가 기량이 가장 뛰어나 재상의 기풍이 있어 벼슬길에 힘쓰면 삼공 다음 가는 작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무해는 진태와 교우를 맺었고 사마소가 진태와 아버지인 진군을 비교하면 어떻냐고 묻자 국가의 위엄과 교화를 펼치는 것은 진태가 진군만 못하지만 통솔력을 가지고 간략하게 해 공을 세워 일을 완성하는 것에서는 진태가 진군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위나라 명제 시기에 여러 차례 승진해 하비태수가 되었다가 사마사의 종사중랑을 지냈으며, 여러 차례 승진해 사례교위가 되었다가 태복경으로 옮겼다.
태시 연간[1]에 상서가 되고 인사를 담당했다가 좌복야, 좌광록대부, 개부, 의동삼사가 되었으며, 벼슬을 지내던 도중에 사망해 시호를 정(定)이라 했다. 267년에 산도, 사마목, 유우와 함께 관전을 함부로 점탈했다는 이유로 이희가 탄핵했는데, 이희가 이미 죽은 무해의 시호를 폄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무제는 하지 않았다.

[1] 265 ~ 27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