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익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상익은 1893년 7월 3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아버지 문구락(文龜洛)과 어머니 숙부인 광산 김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송산면의 서기로, 1919년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사강 장날인 3월 28일에도 홍면(洪冕)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해산을 명령했지만 군중이 듣지 않자 시위를 주도한 홍면 및 2명에게 꿇어앉을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홍면이 갑자기 일어서며 독립만세를 외치자, 노구치 순사부장은 권총을 발사했고 총알이 홍면의 어깨를 관통했다.
군중은 홍면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서 자신에게 발포한 순사를 죽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보고 분노를 터트렸다.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 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했다. 이에 문상익은 일경을 죽이라고 외치며 홍면의 동생 홍준옥, 장인 김명제(金命濟), 김교창, 왕광연, 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추격하여 끝내 노구치를 때려 죽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요죄, 살인죄, 보안법 위반죄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화성시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60년 10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문상익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 헌납공파-세윤공 경국파 2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