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부순
勿部珣
생몰년도 미상
백제와 당나라의 인물. 일본계 백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1]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이 판독되기 전까지 '순장군(珣將軍)'으로 알려져 있었다.
707년 조성된 대당물부장군공덕기(大唐物部將軍功德記)에 따르면 그는 본래 동해(東海)의 한 가문 출신으로 선조 대대로 벼슬을 지내왔다고 한다. 그는 나라가 망하기 전 고국을 떠나 당으로 들어갔다.[2]
당에 들어간 그는 '''흑치상지'''의 둘째 딸과 결혼해 4남 1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에 이르렀다.
흑치준의 여동생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흑치씨는 백제부흥군 관련 인사로 추정되는 물부순(勿部珣)과 결혼했다.
2006년, 마멸된 글자가 '勿'로 밝혀지면서 그가 '물부씨(勿部氏)'인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에 고대 일본의 성씨인 모노노베씨(物部氏)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대 일본에서 모노노베씨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라는 신의 후예로 여겨진 유력한 호족이었다. 김영관 박사는 이러한 점을 들어 물부순은 백제 유민이 아니라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한 일본인으로, 포로가 되어 당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3]
또는 흑치준의 여동생[4] 과 결혼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귀화한 일본계 백제인일 가능성도 있을 듯. 물부순 외에도 성왕(백제) 시기의 모노노베씨로 관산성 전투에도 등장한 시덕(施德) 모노노베노 마가무(物部 麻奇牟),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요가타(物部 用奇多),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가히(物部 奇非), 상부나솔(上部奈率) 모노노베노 카쿠(物部 烏) 등이 백제의 관료로서 등장하는데, 즉 모노노베씨는 꽤 오래 전부터 아예 백제에 눌러앉아 대를 이어온 귀화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물부순은 이들과 혈연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백제와 당나라의 인물. 일본계 백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1]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이 판독되기 전까지 '순장군(珣將軍)'으로 알려져 있었다.
2. 대당물부장군공덕기
707년 조성된 대당물부장군공덕기(大唐物部將軍功德記)에 따르면 그는 본래 동해(東海)의 한 가문 출신으로 선조 대대로 벼슬을 지내왔다고 한다. 그는 나라가 망하기 전 고국을 떠나 당으로 들어갔다.[2]
당에 들어간 그는 '''흑치상지'''의 둘째 딸과 결혼해 4남 1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에 이르렀다.
흑치준의 여동생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흑치씨는 백제부흥군 관련 인사로 추정되는 물부순(勿部珣)과 결혼했다.
3. 사실은 일본인인가?
2006년, 마멸된 글자가 '勿'로 밝혀지면서 그가 '물부씨(勿部氏)'인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에 고대 일본의 성씨인 모노노베씨(物部氏)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대 일본에서 모노노베씨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라는 신의 후예로 여겨진 유력한 호족이었다. 김영관 박사는 이러한 점을 들어 물부순은 백제 유민이 아니라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한 일본인으로, 포로가 되어 당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3]
또는 흑치준의 여동생[4] 과 결혼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귀화한 일본계 백제인일 가능성도 있을 듯. 물부순 외에도 성왕(백제) 시기의 모노노베씨로 관산성 전투에도 등장한 시덕(施德) 모노노베노 마가무(物部 麻奇牟),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요가타(物部 用奇多),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가히(物部 奇非), 상부나솔(上部奈率) 모노노베노 카쿠(物部 烏) 등이 백제의 관료로서 등장하는데, 즉 모노노베씨는 꽤 오래 전부터 아예 백제에 눌러앉아 대를 이어온 귀화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물부순은 이들과 혈연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