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늬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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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사용 용도 및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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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無文土器
청동기 시대한반도요동 반도 일대에서 등장한 토기의 한 종류. 시대적으로 보자면 빗살무늬 토기의 뒤를 잇는 유물이다. 민무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토기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

2. 역사


민무늬토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기원전 19세기에서 기원전 16세기 무렵이다. 한국에서 청동기는 기원전 16세기 무렵에 처음 전파됐지만 이때의 청동기는 부족장과 같이 높으신 분들이나 쓰는 물건이었고 전반적으로는 반달 돌칼과 같이 석기가 훨씬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였다.[1]
이후 기원전 9세기 무렵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민무늬 토기 역시 남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초창기 민무늬토기가 주로 한반도 북부와 요동 반도 일대에 집중된 것과 비교해 이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는데, 특히나 충남 부여군 일대에서의 발견된 다량의 민무늬토기가 유명하다.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서의 민무늬토기 문화는 일본의 야요이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줬는데, 큐슈 일대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 고인돌, 독무덤 등이 그 증거.
민무늬 토기는 이후 기원전 3~4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 철기가 전래됨에 따라 서서히 사라져간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원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 토기가 발굴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기원전 2~3세기 무렵부터 그 발굴빈도가 확연히 줄어든다.

3. 사용 용도 및 여담


  • 주로 곡식을 담거나 저장[2]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물론 평민들이 사용하였다. 그 외에 사용 용도는 빗살무늬 토기와 같지만, 무늬가 없고, 끝 부분이 뾰족하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 기존까지 학계에서는 민무늬 토기를 청동기 시대의 범주에 속하는 문화적 특징의 하나로 설명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민무늬 토기가 이미 한창 리즈시절을 맞이할 때 한반도 일대에서 청동기는 사회 상층류나 쓰는 레어템이었다는 점을 근거로,[3] 기원전 19세기부터 기원전 2~3세기 무렵을 '청동기 시대가 아니라 민무늬 토기 시대로 부르자!'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고조선 [4] 파트를 배울 때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내용이다.[5] 혹시 지금 고조선 관련된 내용을 배우고 있다면 기억해두도록 하자. 알아선 손해볼 것은 없다.
  • 현재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1단원에서 빗살무늬 토기 이후의 토기로 나온다.

4. 둘러보기




[1] 여담으로 한반도에서 청동기가 실질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기원전 8~7세기 무렵이다.[2] 민무늬 토기와 함께 발굴된 민무늬 토기 안에 들어있는 곡식 덕분에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특정한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3] 심지어 민무늬 토기가 청동기보다 더 빨리 한반도 일대에서 등장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모로 민무늬 토기를 청동기 시대의 범주로 묶기에는 곤란해진 상황.[4] 최근 한국 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8~9세기 무렵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즉 민무늬 자체는 고조선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등장한 유물이라는 것.[5] 토기 자체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이다 보니 수능에서도 단골로 출제되는 파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