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프로젝트

 


1. 개요
2. 상세
3. 결과


1. 개요


1999년 4월 부터 2003년까지 대구광역시의 낙후된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섬유사업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김대중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이다. 대구광역시를 이탈리아밀라노처럼 국제 섬유패션 도시로 키운다며 시작한 조단위의 대형 국책 과제다. 이후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더 지원했다. 지역 클러스터사업 시초 격이라 더 기대를 모았던 사업이나 '''결과는 만신창이'''다.

2. 상세


대구는 1950년대 이래로 값싼 인건비와 경부선이 지나가는 비교적 편리한 교통망으로 인해 섬유산업이 급속히 발달했는데 1960년대 이후로 수출을 위해 경공업을 집중육성하면서 대구에 경공업 중심의 염색산업단지가 만들어졌고, 섬유산업은 1990년대까지 대구를 먹여살리는 산업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구의 인구도 매년 급속히 증가하여 1955년에 48만이었던것이 1970년에 106만, 1985년에 202만으로 15년에 한번씩 인구가 두배씩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섬유산업이 저임금에 의존했던 산업이었던지라 1990년대에 소득수준의 상승에 따라 섬유업체들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와 중국 등으로 이전하였고, 중국 섬유산업의 발달에 따라 내수시장에서도 중국제 섬유제품이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하향세로 접어들었는데, 섬유를 대체할 다른 산업의 발달이 미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1990년대 초반부터 대구의 경제성장률은 전국에서도 하위권으로 쳐지기 시작했고 침체되기 시작한 섬유산업 지원도 수천억원의 예산투입에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급속히 증가하던 대구의 인구도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IMF 외환위기로 해외로 이전하지 않은 섬유기업들도 있다라 연쇄도산해서 침체되던 섬유산업이 더욱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자민련과 연정을 꾸리던 상태였고 레드 콤플렉스로 각종 공격을 당하던 상황을 몸소 겪어봤기때문에 대구 살리기에 꽤나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 시키자는 의견이 수립되었다.
당시 대구의 섬유패션도시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2000년에 '패션이'라는 마스코트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 '패션이'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구시에겐 일종의 흑역사가 된 캐릭터이다.
[image]

3. 결과


그러나 각종 비리로 인해 자금은 떼먹히고 대기업 유치도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밀라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진보적인 패션과 보수적인 지역정치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 결국 대구의 인구는 인천에게 밀리기 시작하여 전국 제4의 도시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건진게 있다면 섬유산업단지 이시아폴리스 정도이다.
밀라노 프로젝트 전면 재검토(2005.03, YTN)
대구 FC 관련 짤방 "쉬메릭 선수"가 이 밀라노 프로젝트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