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병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박일병의 동생이다.
2. 생애
박순병은 1901년생이며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이다. 그는 1921년경 상경하여 경성부에서 조선고학생갈돕회 간부로 활동했다. 조선고학생갈돕회는 1920년 6월에 창립된 단체로 남녀 고학생들의 연학상조(硏學相助)를 도모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주로 고학생들의 학비 및 기숙사 마련을 위한 후원금 모집, 각종 강연회 개최 등을 전개했는데, 사회주의 단체인 서울청년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그는 고려공산당 선전부원으로 활동하며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1922년 10월 경성무산청년회 결성에 참여했으며, 이듬해에는 조선청년당대회후원회 결성에 참여했고 3월 대회에 대종교중앙청년회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1924년 2월 신흥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이와 함께 경기도청년연맹(京畿道靑年聯盟) 상무집행위원, 한양청년연맹(漢陽靑年聯盟) 상무집행위원, 화요회원, 혁청당(革淸黨) 당원 등을 역임하는 한편 무산자신문(無産者新聞) 경성지국장, ‘청년대중(靑年大衆)’ 조선지국장 등으로 활동하며 언론활동을 벌여 나가기도 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회에 참가해 중앙위원 후보로 선임되었고, 그해 11월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결성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사상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고, 박헌영, 심훈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경성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1926년 8월 25일에 사망했다. 그와 같이 체포된 후 공판에 회부된 박헌영은 공판 과정에서 "박순병을 살려내라"고 외치며 재판장에게 달려들었다가 헌병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박순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