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유
"할아버지는 대체 왜 자결하지 않으셨는가. 왜 후손들을 이다지도 욕되게 하는가."
1. 개요
박승유는 1924년 인천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성악가이다. 그리고 '''을사오적 중 하나인 박제순의 손자이자 박부양의 아들이다.'''[1] 본관은 반남 박씨
2. 생애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제의 고위관료로 지내던 아버지의 권유로 1944년 일본군에 입대하여 중국 저장 성 이우에 주둔한 횡정부대에 배속되었으나 을사오적이었던 할아버지의 행적에 부끄럽고 괴로워하여 이듬해 바로 탈영하여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광복군에서 여러 공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음악에 소질이 있어 광복군의 모집이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한 선전활동 및 심리전에 활약하였다. 이 시절 박승유는 "할아버지는 대체 왜 자결하지 않으셨는가. 왜 후손들을 이다지도 욕되게 하는가"라고 자책하며 가명을 쓰고 활동했다고 한다.
광복 후 서울대음대를 졸업하였으며 성악가로 활약하다가 강원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평생 할아버지의 과오에 죄책감을 가지며 살다가 66세에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독립운동가로써의 면모가 잘 알려지지 않은채 그동안 할아버지 때문에 친일파 가문이 잘된 사례로만 알려져 있다가 1999년에서야 언론을 통해 을사오적의 후손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그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 친일반민족행위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저 두명이 박승유 본인에게는 크나큰 굴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