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혁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승혁은 1893년 11월 14일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 하농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음력 6월부터 8월 사이에 중국 서간도 일대에서 단천군으로 귀향한 최석희(崔錫熙)ㆍ이홍용(李洪容)의 권유로 강명환, 방주익(方周翼) 등과 함께 비밀결사 자립단(自立團)을 결성했다. 이들은 단원으로부터 입단금(入團金) 1원 및 월 회비 20전씩을 징수해 기금으로 적립하거나 상업을 하는 등으로 자금을 증식하여 청년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 계몽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15년 음력 9월 15일 밤, 단천군 파도면 외문리에서 열린 모임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맹약서(盟約書), 자립단규칙서(自立團規則書) 등을 작성하고 동지 규합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최태형(崔泰亨)ㆍ심항기ㆍ김수현(金洙現)ㆍ전성익(全性翊)ㆍ김율봉(金栗鳳)ㆍ전주익(全周益)ㆍ최만종(崔萬宗)[1] 등이 자립단에 가입하였다. 또 1915년 음력 11월 5일 수하면 하농리 장암촌 서당에서 열린 모임에서 방주익을 단장, 전성익(全性翊)을 부단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총무에 선임되었다.
이후 그는 수하면에 광복청년연성소를 설치해 대한독립군에서 배속한 교관의 지도 아래 독립군을 양성할 계획도 세우는 등의 활동을 하다 단원 19명과 함께 단천헌병분대에 체포되었고,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그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17년 10월 17일에 출옥했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한 그는 의군단(義軍團)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 왕청현 함마당에 거주하던 1921년 9월 1일에는 의란구분서 경찰관에게 집에 은닉하고 있던 장총과 탄환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후 장백현으로 이주했지만 1922년 가을 다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2년 12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7년 5월 13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박승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