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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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2014년 4월 16일 (향년 22세)

1. 개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의사자이다.
세월호 승무원이었던 박지영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우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인 학생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 당시 10명이 함께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모자라 승무원 누나/언니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양보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누나/언니는 왜 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덕분에 그녀와 함께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고 전해진다. 보건복지부는 5월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그녀를 (김기웅, 정현선 포함 3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그녀는 지금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시안추모공원에 영원히 잠들어있다.

2. 대중 문화


그녀를 소재로 한 시도 있다. 작가는 백무산. 참사 100일(2014년 7월 24일)을 기해 나온 시집인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에 실려 있다.
'''<세월호 최후의 선장 박지영>'''
보기
최초에 명령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만있으라, 지시에 따르라, 이 명령은
배가 출항하기 오래전부터 내려져 있었다
선장은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말라, 재난대책본부도
명령에 따르라, 가만있으라, 지시에 따르라
배가 다 기운 뒤에도 기다려야 하는 명령이 있다
목까지 물이 차올라도 명령을 기다리라
모든 운항 규정은 이윤의 지시에 따르라
침몰의 배후에는 나태와 부패와 음모가 있고
명령의 배후에는 은폐와 조작의 검은 손이 있다
이 나라는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걸 기억하라
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 입신출세와
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는 자들의 국가,
선장은 단순 잡부 계약직, 장관은 단순 노무 비정규직
그들이 내릴 줄 아는 명령은 단 한 가지뿐
가만있으라, 명령에 따르라
저 환장하도록 눈이 부신 4월 바다를 보면서
아이들은 성적 걱정이나 했을까
지시를 어기고 멋대로 뛰쳐나간 너희들 반성문 써야 할 거야
물이 목에 차올라오는데, 이러면 입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했을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해훼리호가 침몰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불타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슬픔은 장마처럼 지나가고
아, 세상은 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재난 따윈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저들
촛불시위와 행진과 민주주의가 더 큰 재난이라 여기는
저들이 명령을 하는 동안은, 결코
뒤집어라, 뒤집힌 저 배를 뒤집어라
뒤집어라,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탐욕으로 뒤집힌 세상, 부패와 음모와 기만으로 뒤집힌 세상
이게 아닌데, 이럴 순 없어, 뒤집지 못한 우리들
가슴을 치며 지켜만 봐야 하다니,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우리가 너희들을 다 죽이는구나, 뒤집어라,
폭력과 약탈로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저 죽음을 뒤집어라
뒤집지 않고서는 살리지 못해 저 죽음의 세력을 뒤집어라
뒤집힌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그들
돌아앉아 돈이나 세고 있는 그들
자살 행렬은 내 알 바 아니다 약속을 뒤집고
경제 민주화에서 뛰어내려 저만 살겠다고 달아난 그들
이미 구원받은 사람만 구원하는 정치
아이들과 약자들을 외면하고 가진 자들과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만 구출하는 구원파 정부
자기 패거리만 구원하고 나머지는 연옥에 밀어 넣는
구원파정당들, 새나라구원당들
아, 뒤집히고 나서야 보이다니
저들과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배를 타지 않은 자를 선장으로 뽑다니!
뒤집어라, 그들의 명령과 지시를
그리고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르라,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 주며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스물두 살
4월을 품은 여자 박지영, 그가 최후의 선장이다
그 푸르른 정신을 따르라, 뒤집어진 걸 바로 세우게
죽음을 뒤집는 4월의 명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