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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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길이 1,161m, 너비 35m의 8차선 다리이다.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16일[2] 최초로 준공하였다. 개통식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3]
성수대교는 영동#s-3의 신도시 개발에 따른 서울 동부권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서울의 부도심으로서의 기능을 촉진하며 인구 분산과 교통 혼잡 해소를 위해 건설되었다.
2. 구조
성수대교의 상부 구조는 강재로 구성되어 있고 하부 구조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특히 이 교량은 종래 기능 위주의 교량과는 달리 미관을 최대한 살리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형미 면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국내 최초의 게르버 트러스교 형식으로 설계되었으며 당시에는 파격적인 하늘 색상의 디자인도 적용한 교량이다. 성수대교 이전에 세워진 교량들은 공법이나 구조상 별 특징이 없이 기능 및 경제성 위주의 교량이 주종을 이루어왔으나 성수대교 건설을 계기로 구조물의 외관에 대한 고려가 본격적으로 강조되었다.[4]
3.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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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 다리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m가 내려앉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1995년 2월 8일에 붕괴 사고로 무너진 상판을 철거하고 같은 해 4월 26일에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다. 구 교량의 트러스 잔해들은 고철로 넘겼으며, 이듬해 3월부터 기존 교량을 철거하고 새로 교량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인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1997년에 남•북간을 연결하는 직결 왕복 4차로의 형태로 임시 재개통 하였는데,[5] 추후에 왕복 6~8차선으로 확장할 계획 때문에 왕복 4차선 교량 상태에서 연결 램프를 이을 수 없기에 주변 도로와 단절된 형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6][7]
붕괴 사고 이후 새롭게 복구된 성수대교는 종전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실질적으로는 새 교량이라고 할 수 있다. 붕괴 사고로 인한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기존 교량의 색상이 하늘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하부 기초 또한 폭 10m, 길이 27m의 타원으로 묶어 크게 보강하였고 상부 구조는 새로운 자재로 가설되었다. 특히 사용된 자재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진에도 대비할 수 있게 설계하는 등 종전의 교량에 비해 안정성이 대폭 개선되었다.
1998년 12월 31일에 본선 교량 1,160m을 폭 19.4m의 4차선에서 35m의 8차선으로 확장하고 강남 지역의 언주로 및 올림픽대로와 강북 지역의 고산자로 및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와 이어지는 남•북단 진, 출입 램프 3.175m를 신설하는 공사를 착공하여 2004년 9월에 최종 완공하였다.
4. 성수대교를 경유하는 버스 노선
이외에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여 호남 방향으로 가는 시외, 고속버스들이 서울 출발에 한해 이 다리를 경유한다. 동서울행은 한남대교 경유.
5. 참고 문서
[1] 오른쪽 아래 도로(강동 방면)의 아스팔트가 꽤 닳아 있고, 교각도 매우 가늘었다. 여담이지만, 남단 램프가 개통 당시 모습과는 달랐는데, 85년 경 현재의 올림픽대로를 건설하면서 남단 램프를 한번 뜯어 고쳤다.[2] 이 날 준공 및 개통 기념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였는데, 이 날로부터 정확히 10일 뒤에 10.26 사건으로 서거한다.[3]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일에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MBC 뉴스데스크에서 준공 당시의 성수대교 개통식을 다룬 대한뉴스의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하였다.[4] 성수대교는 유심 부구간에 최대 경간 120m를 갖는 기존의 한강에 있는 교량의 경간 30~40m의 3~4배가 되는 장경간 교량으로 중앙 점에서 양방향 0.5%씩의 종단 경사를 갖고 있으며 기하학적 조형미를 갖춘 한강 상의 아름다운 교량 중의 하나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에 개통한 성산대교가 성수대교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그 이후 지어진 올림픽대교, 서강대교, 신행주대교 및 제2신행주대교, 가양대교, 방화대교 등은 미관이 상당히 강조되었다. 강동대교와 김포대교는 고속도로 교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설 11년만에 확장을 해야 했으니 제외.[5] 이 당시 성수대교의 교량을 자세히 보면 교각이 교량 상판보다 넓직하게 시공되어 있고, 교량 상판 양측 가장자리가 내부 철근들이 연장되어 튀어나와 노출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성수대교가 재시공시 당초 왕복 6~8차선의 교량으로 설계 및 시공이 계획되었으나, 교통 불편 최소화를 위해 4차선 교량의 형태로 우선적으로 임시 개통했다는 의미이다.[6] 기술적으로 연결 램프를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으나, 확장공사시에 왕복 4차선 교량에 만들었던 램프를 철거하고 확장 교량에 맞게 다시 시공 해야 하는 이중 일이 되기 때문에 연결 램프를 부득이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7] 게다가 1994년 당시 성수대교 북단은 강변북로가 아닌 용비교와 연결되는 현재의 뚝섬로와 입체교차하는 형태였는데(현재 올림픽대로 대신 노들로와 접속하는 성산대교, 양화대교 남단 교차로와 유사), 1996년 용비교를 재시공하면서 램프를 강변북로 쪽으로 이설할 필요가 있었기에 당시 가설 자체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