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현동은 1886년 10월 1일 전라도 광주목(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광주군 와곡면 상촌리(현 광산구 오산동 상촌마을)로 이주하였다.
그는 1906년 4월 최익현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각지에 띄운 "근고팔도민서(謹告八道民書)"라는 격문을 보고 최익현 의진에 가담할 것을 결심하고, 그에 호응하기 위해 의병 200여 명과 총 20~30정으로 무장하 광주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할 목적으로 공주를 떠났다.
이어 전라북도 임실에서는 의병 80여 명과 총 50정을 추가하였고 곧 최익현의 근거지인 순창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다.
그해 4월 7일부터 8일 사이에 광주·전주·공주 등지로부터 최익현 의진을 저지하기 위해 집결한 대한제국군 진위대와 일본군 수비대를 상대로 순창면내에서 교전하였으나, 의진의 형세가 정비되기 전이었으므로 패퇴하고 말았다.
그러한 일련의 의병활동이 일본에 발각·체포되어 1910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내란죄로 유배형 5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경술국치로 일제의 밀계가 이루어지자 석방되었다.
출옥 후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이후 1962년 1월 20일 별세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