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오댐 붕괴 사고

 



'''반차오댐(板橋壩) 붕괴 사고'''
'''1975 Banqiao dam failure'''

'''발생일'''
1975년 8월 5일~8월 9일
'''발생 위치'''
중국 허난성 주마뎬시
'''유형'''
''' 붕괴'''
'''원인'''
'''태풍 니나'''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
'''댐 자체의 재질'''[1]
'''인명 피해'''
'''17만 ~ 23만 명 이상 사망
(중국 정부 발표: 2만 6천 명)'''

'''피해'''
'''재산 피해'''
'''12억 달러 이상(1975 USD)
62개 댐 붕괴
도시 30곳 침수
주택 680만 채 붕괴'''
'''이재민'''
'''1100만여 명 이상'''
1. 개요
2. 배경
3. 태풍 니나 상륙
4. 붕괴
5. 결과
6. 이후
7.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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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5년 8월 중국에 상륙한 태풍 니나가 반차오댐에 기록적인 강수를 뿌려 댐이 못 버텨 무너진 사고.

2. 배경


본래 반차오댐은 1951년 4월경에 소련 기술진의 자문을 받아 여강(汝江; Ru River) 상류에 짓기로 결정되어 착공이 시작되었다. 이는 1949년 및 1950년에 발생한 화이강 홍수 때문에 댐의 필요성이 생겨 짓기 시작한 것으로, 1952년 6월 완공되었다. 헌데, 1954년에 다시 화이강을 중심으로 크게 홍수가 발생하자, 개보수를 통해 더 크게 지어졌다.
이때 반차오댐의 댐마루 표고는 117.64 m, 댐의 높이 자체는 '''24 m'''였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횡성댐보다도 높이가 낮다. 저수용량은 4억 9200만 톤이었다.
본래 지어졌을 때 흙댐(clay dam)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후 균열이 발견되었고, 이는 소련 기술진의 자문을 받아 새로 개보수를 했는데 당시 새로 보수된 반차오댐의 별명은 '철댐'(Iron dam)이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반차오 댐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975년 8월, 악몽이 찾아온다.'''

3. 태풍 니나 상륙


태풍 니나는 최성기에 1분 최대풍속 '''69 m/s''', 최저기압 '''900 hPa'''를 기록한 SSHS 4등급의 슈퍼태풍이었다. 크기도 꽤 커서 1975년 8월 초에 먼저 대만을 2등급의 세력으로 상륙해 관통한 후 열대폭풍의 세력으로 중국에 상륙했다. 이후 8월 6일에 온대저기압화하여 태풍으로서는 소멸했으나, 그 잔해가 1975년 8월 8일까지 계속 북상하다가 마침내 8월 8일에 최종 소멸했다.
문제는 태풍 니나의 잔해가 허난성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이때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내렸다. 당시 반차오댐에는,
  • 6시간 동안 830 mm
  • 24시간 동안 1,631 mm
라는 기록적인 수준의 폭우가 내렸다. 참고로 2002년 대한민국에 태풍 루사가 상륙했을 때 기록한 최대 강수량이 24시간 동안 880 mm(강릉)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강수량을 반차오댐에서는 불과 6시간만에 기록한 셈. 그때 강릉에 있던 오봉댐이 한계치를 넘어서는 바람에 무너질 뻔했다.[2] 그런데 이건 1975년에 댐 하나에 비가 퍼붓다시피 내린 것이다. 가히 물폭탄이 따로 없다. 저 24시간 동안 1,631 mm는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의 연평균 강수량[3]이 하루에 쏟아진 것'''이라 보면 된다.
이후 그 빈도를 계산한 결과 '''2천 년에 1번''' 내릴 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차오댐은 1천 년에 1번 내릴 비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수준의 비가 내려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4. 붕괴


결국 현지시각으로 1975년 8월 8일 1시, 반차오댐의 저수 수위가 댐마루표고였던 117.64 m를 30 cm 넘겨버렸고, 그 기반이 흙댐이었던 반차오 댐은 '철댐'이라는 현지에서 부른 별명이 무색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 초당 78,800 m3(초당 7,880만 리터)의 물이 흘러넘쳤으며, 6시간 만에 저수량의 1.5배를 넘는 7억 1백만 m3의 물이 쏟아졌다. 이를 시발점으로 셔먼탄댐도 무너지고, 연쇄적으로 총 62개 댐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수준의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댐에서 쏟아진 물은 시속 50 km의 속력으로 45분 만에 수이핑 시를 덮쳤다. 물이 만든 파도의 높이만 3~7 m에 달했는데 이건 쓰나미와 다를 바가 없다.
때문에 중국 인민해방군은 주마뎬시에 있던 Suya호 댐(당시 12억 m3 저수)을 보호하기 위해, 8월 9일 공군이 출격해 공습까지 단행했다.

5. 결과


중국 정부는 30년간 해당 사고를 국가기밀로 취급했고, 2005년에야 기밀해제하여 반차오댐 붕괴 사고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었다.
댐의 붕괴로 인한 직접 사망자수는 총 '''17만 명 '이상''''에 달했다. 680만 채의 가옥이 무너졌고, 30개 지급시와 현급시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재만 수만 해도 1100만여 명에 달했다.
재산 피해는 1975년 미국 달러 기준 12억 달러로 기록되었다.

6. 이후


이후 중국에서는 반차오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어떠한 댐도 사고를 당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과 경각심이 생겼다.
이 사고가 이후 중국에서 싼샤 댐을 지을 때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싼샤 댐은 중국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100만 년에 1번 빈도의 폭우로 유입량이 초당 7만 m3이어도 끄떡없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중국 폭우 사태 때, 싼샤 댐으로의 물 유입량은 한때 사상 최대인 '''7만 5천 m3'''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0년 중국 폭우 사태로 싼샤 댐의 수위가 165 m(7월 20일 기준)에 달하면서 이 사고가 재조명되고 있고, 가능성은 적어도 붕괴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만약 싼샤 댐이 붕괴할 경우 인명 피해는 '''최소 반차오댐 붕괴사고의 3배 이상, 최악의 경우 100배 이상'''일 것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싼샤 댐 문서를 참조할 것.

7. 참고 문헌


[1] 현재의 철근 콘크리트 방식이 아니라 '''흙'''으로 건설되었다. 이 때문에 다른 재질보다도 폭우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2] 천만다행으로 당시 오봉댐이 한계치를 넘었지만 기적적으로 버텨서 무너지지는 않았다. 만약 당시에 오봉댐이 무너졌다면 강릉 시가지가 그야말로 싹 쓸려가서 일시적으로 지도에서 지워졌을 것이라고.[3] 약 1,600 mm/년